오늘날 시네마란 무엇인가, 《아이리시맨》으로 본 현 주소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6 14:00
  • 호수 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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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과 넷플릭스 그리고 《아이리시맨》

“마블 작품은 시네마(cinema)가 아니다.” 영국 영화매체 《엠파이어》와 가진 인터뷰에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남긴 말이다. 인터뷰에서 감독은 마블의 수퍼히어로 영화들을 ‘테마파크’에 비유했다. 이 발언은 즉각적으로 화제가 됐다. 박스오피스 성적과 문화 현상 전반에 신드롬에 가까운 파급력을 미치는 MCU에 대한 거장 감독의 정면 비판이기 때문이다. 이어 지난 10월12일 신작 《아이리시맨》으로 BFI 런던영화제에 참석한 스코세이지 감독은 “테마파크에 영화가 침략 당했다”는 표현을 썼고, 이후 11월 초 뉴욕타임즈 지면을 통해 ‘마블 영화는 왜 시네마가 아닌가(I Said Marvel Movies Aren’t Cinema. Let Me Explain)’라는 글을 기고했다.

스코세이지의 신작 《아이리시맨》은 넷플릭스 제작 영화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의 특징으로 보자면, 이 역시 전통적인 방식의 시네마라고 부르긴 어렵다. 그러나 《아이리시맨》은 최근 등장한 그 어떤 작품보다 예술적 성취가 뛰어난 영화라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넷플릭스와 마블의 시대에 촉발된 ‘시네마’의 의미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영화 《아이리시맨》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영화 《아이리시맨》의 한 장면 ⓒ 넷플릭스

가장 영화적인 작품, 《아이리시맨》

영화를 지칭하는 용어 중 필름(film), 시네마(cinema), 무비(movie) 중 ‘시네마’는 가장 관객 친화적인 용어다. 필름이 생산자들의 예술 창조 행위 자체를 강조하는 단어이고 무비가 단순히 활동사진(moving picture / motion picture)의 뜻이 강하다면, 시네마는 완성된 영화의 유통과 관객의 소비에 의해 완성되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소비되는 공간인 영화관을 ‘시네마’라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필름이 사라진 디지털 시대에 부쳐,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강조하는 단어로도 쓰인다.

시네마의 의미를 어떻게 보존하고 지속할 것인가. 극장이라는 전통적 플랫폼 대신 실시간 온라인 스트리밍 등 새로운 관람 환경이 제시되고, 대형 블록버스터들이 극장을 잠식하다시피 하는 오늘날에는 새삼스러운 질문일지 모른다. 흥미로운 건, 《아이리시맨》이 오늘날처럼 영화 환경이 급변할수록 전통적인 영화적 체험으로 그 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찰스 브랜튼의 논픽션 《아이 허드 유 페인트 하우시즈 (I Heard You Paint Houses)》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실존 인물인 미국의 청부살인업자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을 통해 바라본 전후 미국의 조직 범죄에 대한 대서사시다. 영화는 범죄 카르텔이 정부, 노동조합, 거대한 사업 등 구석구석 손을 뻗친 결과 각종 부정부패가 난무했던 비정한 시절을 209분의 러닝 타임 안에 차곡차곡 담는다. 프랭크 시런을 포함해 1940~50넌대 미국의 막강한 권력이었던 국제 트럭 운전자 조합 ’Teamsters’의 수장이었던 지미 호파(알 파치노), 범죄 조직의 조용한 실세 러셀(조 페시) 등이 극의 주축이 된다.

194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를 아우르는 대장정은 그 자체로 미국 근현대사의 한 단면이다. 존 F 케네디 암살, 워터게이트 등 미국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은 세 인물이 휘말리는 역사적 소용돌이의 일부다. 어둠의 조직에 몸담았던 개인의 연대기를 다뤘다는 점에서는 21세기의 《대부》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다. 스코세이지 감독, ‘배우들의 배우’인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등의 의기투합은 연출 및 연기 교본 그 자체로 불러도 좋을 정도다.

신의와 배신의 드라마인 《아이리시맨》에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비극이 새겨져있다. 모순 가득한 인간의 삶을 해석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연기, 촬영, 음악, 의상 등 영화의 모든 요소가 잘 조율된 오케스트라처럼 세트 피스로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서 기술은 그 자체로 주가 아니다. 영화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방식이다. 이미 노인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50대 남성을 연기하는 배우들을 위해 그들의 얼굴을 젊게 만드는 새로운 그래픽 기술을 쓴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제시하는 시네마적 체험의 핵심은 ‘시간’이다. 인물들이 길 위에서 지나간 시대를 반추하는 구성으로 이뤄진 《아이리시맨》은 끊임없이 시간이라는 장치를 상기시키고, 이는 의심할 바 없이 삶의 비가역성과 닮아있다. 다시 앞으로 되돌릴 수 없음. 한 시대에서 비정한 방식으로 가장 중요하게 지켜졌던 무언가가 세월이 흐르면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한다는 무상함. 인간의 삶과 시간에 대한 이 ‘일깨움’은 영화 예술의 중요한 덕목이다. 스코세이지 역시 글을 통해 이 점을 강조했다. 그는 시네마를 구성하는 요소로 일깨움, 미스터리와 진심 어린 감정 고조 및 위기 등을 언급하며 “마블 영화에선 진정한 위험을 느낄 수 없으며, 한정된 개수의 테마와 스토리라인의 변주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진정한 ‘시네마’는 넷플릭스에서?

물론 이미 언급했듯 《아이리시맨》은 넷플릭스의 작품이다. 오리지널 제작 작품의 온라인 유통만 주장했던 넷플릭스는 명장 감독들과의 작업과 관객들의 반응을 통해 극장 동시 개봉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지금은 일정 기간 극장 개봉 후 넷플릭스에 서비스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다만 국내와 같이 짧게는 일주일, 북미 기준 길게는 4주 정도의 홀드백(영화가 극장 외 다른 플랫폼에 공개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여전히 극장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아이리시맨》의 경우에도 AMC를 비롯한 주요 극장 체인에서 상영을 거부당했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아이리시맨》은 11월20일 일부 극장에서 제한 상영하고, 11월27일부터 넷플릭스에 공개된다. 따라서 누군가는 이 영화를 상영관에서 체험하는 대신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일시정지, 혹은 앞으로 감기 등의 기능을 쓰며 볼 것이다. 그렇다고 개별 관람의 방식이 이 작품이 지닌 예술적 성취 자체를 떨어뜨리진 못한다.

중요한 건 오늘날 전통적 의미의 ‘시네마’를 가장 잘 이해하는 콘텐츠들을 내놓는 스튜디오 중 하나가 넷플릭스라는 사실 자체다. 유저들의 폭넓은 만족도를 위해 다양한 콘텐츠 제작이 가장 중요한 넷플릭스는 어느덧 거대 자본, 창작자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기반으로 명장들과의 작업을 가장 성공적으로 해나가는 스튜디오가 되어가고 있다. 올해 초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을 가져간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는 넷플릭스 작품이었다.

이는 유니버설 픽쳐스의 전 임원이며 2년 전 넷플릭스에 합류한 영화 책임자 스콧 스투버의 핵심 전략이자 넷플릭스의 자구책이기도 하다. 마블 스튜디오, 루카스필름, 픽사 등을 소유한 디즈니가 11월 ‘디즈니 플러스(Disney +)’ 서비스를 시작했고, 워너미디어는 워너 브러더스와 MGM의 스트리밍 플랫폼이 될 HBO Max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따라서 넷플릭스는 현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콘텐츠의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넷플릭스의 대응은 최고의 필름 메이커들과의 협업이다. 수준 높은 작품 라인업을 통해 진정한 스튜디오로 인정받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지난 9월 《왕좌의 게임》 제작자들과 새로운 작품 계약을 체결한 것 역시 그 일환으로 보인다.

넷플릭스가 처음 등장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이런 흐름을 예상하지 못했다. 영화계는 새로운 플랫폼과의 전쟁만을 우려했으며, 관객들이 더 이상 영화관을 찾지 않는 날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지금 시장 상황이 흘러가는 그림은 예상과는 다르다. 약간의 비약을 섞자면, MCU로 대변되는 거대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들이 독식하다시피 한 전 세계 시장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시네마’의 새로운 수호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시장의 상황이 만들어낸 아이러니. 스코세이지 감독이 쓴 글의 한 단락을 떠올려 보면, 다음 대답은 스코세이지 감독의 발언에 대한 우려와 마블 영화에 대한 옹호의 입장들이 아닌 극장이 내놓을 차례다.

“내가 문제 제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과 전 세계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최우선의 선택지는 프랜차이즈 영화다. 오늘날은 영화 상영이 위태로운 시기이고,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적은 수의 독립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다. 배급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이젠 스트리밍이 제일 큰 배급 방식이다. 그럼에도 나는 스트리밍이 아닌 극장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상영하는 영화를 찍고 싶어 하지 않는 감독을 만난 적이 없다. 알려졌듯 나는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찍었다. 넷플릭스, 그리고 오직 넷플릭스만이 우리가 《아이리시맨》을 원하는 방식대로 찍을 수 있게 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중략) 하지만 당신이 어떤 회사와 영화를 찍든, 대부분의 멀티플렉스에서는 프랜차이즈 영화만 주로 상영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왼쪽부터)영화 《결혼 이야기》|영화 《두 교황》|영화 《6 언더그라운드》 ⓒ 넷플릭스
(왼쪽부터)영화 《결혼 이야기》|영화 《두 교황》|영화 《6 언더그라운드》 ⓒ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또 다른 야심작

《프란시스 하》(2012), 《미스트리트 아메리카》(2015) 등으로 독립영화계의 총아에서 주목받는 감독으로 떠오른 노아 바움백의 신작 《결혼 이야기》. 오는 12월 초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공개된다. 스칼렛 요한슨, 애덤 드라이버 주연작으로 이혼 과정을 겪는 커플을 통해 부부와 가족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자진 사임으로 화제가 됐던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그 뒤를 이은 교황 프란치스코의 실화를 그린 《두 교황》 역시 12월에 공개된다. 《눈먼 자들의 도시》(2008)를 연출한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감독작으로 앤서니 홉킨스, 조너선 프라이스가 주연을 맡았다. 마이클 베이 감독과 라이언 레이놀즈가 손잡은 《6 언더그라운드》 역시 연내 공개된다. ‘고스트’가 된 무적의 정예 요원들의 작전을 담은 액션 블록버스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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