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과 유승민, 보수통합보다 더 소중한 건...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8 14:00
  • 호수 157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창선의 시시비비] 탄핵 교훈 망각한 채 무조건 뭉치고 보자는 식으론 공감 얻기 어려워

보수는 다시 뭉칠 수 있을까.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변혁’(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 대표였던 유승민 의원이 보수 통합을 위한 대화를 시작했다. 마침 ‘조국 대전’을 치르면서 우리 정치에서 진영 간 대결구도가 다시 강화되는 흐름이 만들어진 직후라, 보수 정치세력의 통합 여부는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의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황 대표의 전격적인, 하지만 예상되었던 통합 제의가 있은 것은 역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보수 정치세력 공통의 인식 때문이었다. 11월9일 대구에서 있은 당원 결의대회에서 황 대표는 “지난 총선에서 한국당이 진 것은 보수가 분열한 데 원인이 있고, 오는 총선은 반드시 똘똘 뭉쳐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자”고 말했다. 실제로 보수층 내에서는 한국당, 바른미래당의 유승민계, 우리공화당으로 나뉘어 있는 상태에선 보수의 총선 승리가 불가능하니 어떻게든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더욱이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크게 흔들리는 상황을 지켜본지라, 보수가 하나로 통합하기만 하면 총선 승리까지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고무된 분위기가 읽히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황 대표와 유승민 의원이 통합 논의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내년 총선의 결과가 보수 정치세력은 물론이고 각자의 정치생명과도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제1야당 대표로 선출된 황 대표는 정치 초년생임에도 불구하고 야권 대선주자 가운데 지지율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대안 부재의 한국당 상황에 힘입은 바 크지만, 대표직에서 내려와야 할 결정적인 내상은 입지 않은 상태로 대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의 한계 또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조국 사태 기간 동안 어부지리로 당 지지율의 상승이 이루어져 한때 민주당을 바짝 추격하기도 했지만, 그런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한 것은 황교안 체제의 근본적인 한계 때문인 것으로 지적된다.

(왼쪽)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오른쪽) 유승민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변혁 전 대표 ⓒ 시사저널 박은숙
(왼쪽)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오른쪽) 유승민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변혁 전 대표 ⓒ 시사저널 박은숙

다급한 황교안, 더 다급한 유승민

그동안 전략 부재를 드러냈던 황 대표는 최근에도 인재 영입을 둘러싼 논란을 자초해 한국당 상승세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어 리더십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으로부터 마음이 떠난 중도층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박근혜 정부를 떠올리게 하는 ‘황교안당’의 손을 들어주고 싶지 않은 유권자들이 여전히 많다. 황 대표의 통합 제의는 이런 안팎의 녹록지 않은 상황을 돌파해 자신의 리더십을 안정시키려는 승부수로 보면 될 것이다. 어떻게든 총선에서의 선전으로 탄력을 받아 차기 대권 도전으로 가는 것이 그의 정치적 꿈일 것이다.

반면 유승민 의원은 처한 상황이 한층 열악해 보인다. 우리 정치에서 양대 진영 간 대결이 강화될수록 1당과 2당 이외의 다른 정치세력들은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조국 사태 기간 동안 한국당이 조국 사퇴 투쟁을 이끄는 야권의 구심이 되는 상황을 지켜보는 유 의원의 마음은 몹시 착잡했을 법하다. 그렇지 않아도 보수와 중도의 통합이었던 바른미래당의 실험이 사실상 실패로 귀결됨에 따라 바른정당 출신 유승민계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생존의 위기를 맞은 상태다. 현재의 지지율로는 바른미래당에 있든 신당을 창당하든 당선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을 꼽기가 쉽지 않다.

보수 통합을 선택하지 않고서는 함께하고 있는 의원들의 한국당행을 막기도 어려워 보인다. 이제까지처럼 한국당과 무조건 선을 긋는 방식으로는 총선 이후의 생존을 기약하기 어려운 것이 유승민계의 현실이다. 총선에서 유승민계의 집단적 고사(枯死)라도 있게 되면 그동안 개혁적 보수의 기치를 들고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던 유 의원의 정치생명도 흔들리게 되어 있다. 그러니 유 의원로서도 더 이상 한국당과의 통합 논의를 외면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그가 황 대표의 통합 제의에 예상 밖으로 신속히 화답하고 나선 이유일 것이다. 대신 유 의원은 “탄핵의 강을 건너자, 개혁보수로 나아가자, 낡은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자는 세 가지 원칙만 확실히 지켜지면 아무것도 따지지도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보수 통합의 원칙을 밝혔다. 보수 정치세력의 재건을 자신이 주도한다는 명분은 놓지 않겠다는 의미다.

 

“총선에서 이기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 건데?”

그런데 통합 논의에 발동이 걸리자마자 ‘변혁’ 신당추진기획단은 “한국당과의 통합은 없다”며 신당 창당 추진 방침을 밝혀 스스로 제동을 거는 광경을 연출했다. ‘변혁’ 내부에서도 한국당과의 통합에 대한 바른정당 출신과 국민의당 출신 간의 이견이 존재하고, 자칫 한국당으로의 흡수통합에 대한 경계심이 크기에 앞으로 통합 논의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유 의원이 밝힌 세 가지 원칙은 통합의 절박성이 공유된다면 조율이 그리 어려운 것들은 아니다. 통합의 성사를 위해 박근혜 탄핵에 대한 평가는 거론하지 않는 데 대한 공감대 형성은 충분히 가능해 보이고, 개혁보수의 정신을 반영한 새로운 중도우파 정당의 정체성 합의도 가능할 것이다. 새집을 짓는 일이야 헤쳐모여 식 신당 창당을 하면 어려울 것이 없는 문제다. 보수통합의 과정이 길목마다 여러 진통을 수반하기는 하겠지만, 뭉쳐야 산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한 어떤 식으로든 총선 전 통합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문제는 어떤 통합이 될 것인가, 묻지마 통합이 아니라 정치 발전에 긍정적 역할을 하는 통합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박근혜 탄핵으로 보수가 분열된 지도 이제 3년이 가까워오고 있다. 지금 추진하는 보수 통합이 단지 도로 새누리당이 되는 데 그친다면 지난 시간은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것이 통합의 장애를 피해 가려는 현실적인 생각임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박근혜 탄핵이 역사에 남긴 교훈마저 망각하고 무조건 뭉치고 보자는 것이라면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결국 보수가 다시 모이면 과거와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조국을 낙마시켰다고 함께 웃으며 표창장이나 주고받는 정당, 이해찬이 그러면 2년 뒤 죽는다, 전두환·노태우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막말이 거리낌 없이 나오는 정당의 사람들이 그대로 있는데, 보수 통합 선언문에 ‘개혁보수’라는 말 몇 마디 넣는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지금 여당은 야당을 믿고, 야당은 여당을 믿고 정치를 하고 있다. 제1야당이 저 모양이니 우리가 잘못해도 이긴다는 생각을 여당은 갖고 있고, 정권과 여당으로부터 민심이 떠나고 있으니 우리가 달라지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제1야당은 하고 있다. 그러니 서로가 겉으로는 싸우면서도 속으로는 의존하는 공생의 기득권이 되고 있다. 상대가 잘못해서 누리는 반사이익으로 자신들을 지키려는 양대 진영의 모습을 보는 국민의 마음은 참담하다. 그러니 촛불 시민혁명이라는 역사의 언덕을 넘고서도 우리 정치가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정치세력에게는 총선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전부일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들은 한 가지를 더 묻게 된다. “그들이 이기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 건데?” “보수 통합이 이루어져 보수가 승리하게 된다면 박근혜 정권 시절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은 아닐까?” 보수가 통합하겠다는 데 희망을 걸기보다는 그런 불안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보수 통합의 주체들은 무엇이 문제인가를 근본부터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자기 쇄신 없는 통합은 의미가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