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없어질 일자리’는 죄다 여성 노동자인가…톨게이트 노동자의 비밀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6 17:00
  • 호수 157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한국도로공사의 꼼수 노동탄압

한국도로공사라는 공기업이 있다. 전국의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관리하는 기업이다. 국토의 소위 망산업은 공공 서비스의 핵심이고, 그래서 절대로 민영화하면 안 된다는 바로 그 공기업. 국토교통부가 전체 주식의 약 86%를, 한국수출입은행이 약 10%를 소유하고 있다. 사장은 국토교통부 장관의 임명제청을 통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2017년 전임 사장이 잔여임기를 6개월여 남겨두고 사퇴하자 현 이강래 사장이 취임했다. 그러니까 정말로 공기업!

문제 될 일 없어 보이는 이 도로공사가 지금 물의의 한복판에 있다. 불법파견 노동자들을 직고용하라는 대법원 판결에 도로공사 측이 편의적으로 불복함으로써 발생한 문제다. 자회사라는 것을 만들어 거기에 정규직으로 고용하게 하겠단다. 물론 그 자회사를 도로공사가 영구계약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 듯하다. 일단 그런 의심은 제쳐두고라도, 직고용을 하라는 것은 대법원 판결이었다. 여러 건의 유사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첫 판결 이후 다른 판결들의 결과가 같으리라는 것은 당연한데도, 도로공사 측은 판결이 다 나와봐야 한다고 시간을 지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한 이래 상당수 비정규직이 정규직 전환을 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이런 꼼수가 있다.

11월11일 민주노총이 청와대 앞에서 톨게이트 노동자 직접고용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11월11일 민주노총이 청와대 앞에서 톨게이트 노동자 직접고용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기업이 대법원 판결도 무시

어느 회사에 다니든 정규직이면 되지 않냐고? 그런데 왜 사람들은 본사 직고용을 원할까. 자회사란 변형된 형태의 불법파견이거나 모든 하청업체들이 그러하듯 실제로는 회사 자체가 매우 불안정해진다. 나는 이미 1998년 이후 몇 년간 현대자동차 식당노조원 여성들에게 일어난 사건을 통해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자회사로의 고용전환 같은 방식이 얼마나 속임수인가를 깨달은 적이 있다. 한 직장 동료로서 정규직으로 고용해 달라는 요구가 사람 대접이 아니라 자리 보전으로 바뀌어 “같은 일을 하는 다른 회사로 이동하라”는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IMF 관리체제가 자본에게 가르쳐준 참으로 가혹한 고용 방식이다. 통째로 들어내기.

그래서, 대부분 여성이고 장애인 비율도 상당히 높은 이 노동자들이 본사 점거농성을 하다 못해 청와대 앞으로 갔다. 오체투지 시위도 했다. 세상이 좀 관심 가지고 들어주고 지켜봐준다면 문제 해결 책임을 지닌 사람들이 나서주지 않을까 기대해서다.

그런데 2라운드가 괴상하게 펼쳐진다. 이들을 향해 도로공사가 무려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민간기업도 이제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 하는 방식의 노동탄압을 공기업이 해낸 것이다. 앞서 청와대 경제수석이 톨게이트 수납업무는 “없어질 일자리”라는 말로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역할로 취급하는 것을 보고 경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나의 3라운드째 의심은 이런 것이다. “없어질 일자리”엔 뭐가 뭐가 있나? 톨게이트 수납업무가 스마트폰 시대에는 쉽게 없어질 자리란 것은 명백하다. 요즘은 마트의 계산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한때 노동집약적 산업의 핵심이던 자유수출지역 봉제공장들은 이미 없어지거나 제3국으로 갔다. 왜 이 모든 일자리들의 절대 다수는 여성노동자들인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구호가 무색하게도, 왜 거의 모든 최저임금 일자리는 여성노동자인가. 그래서 일자리를 없애는 일이 그토록 부담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말이 자꾸만 이상하게 변질되는 데는 성별분업적 노동질서의 아랫단에 주로 여성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다음 주에 계속)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