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대해부] 구시대 유물로 사라지게 될 포토라인
  • 박수빈 변호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8 10:00
  • 호수 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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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일부터 시행될 인권보호수사규칙이 바꿔놓을 검찰청 풍경

법무부는 최근 훈령 ‘인권보호수사준칙’을 법무부령 ‘인권보호수사규칙’으로 상향하면서 심야조사, 장시간 조사를 엄격히 제한하고 피의자를 비롯한 사건 관계인들의 출석조사를 최소화하는 등 수사관행을 개선하겠다는 방침이다. 오는 12월1일, 인권보호수사규칙이 시행된다. 시사저널은 12월1일 인권보호수사규칙,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 시행으로 변화될 검찰청사 주변 풍경을 허구적 사건과 가상 인물을 등장시켜 구성해 봤다.

ⓒ 일러스트 정찬동
ⓒ 일러스트 정찬동

전직 의원이 검찰 출석해도 포토라인 없어

국회의원으로 있을 당시 검사들의 비리에 대해 구체적인 증거와 실명 고발을 해 화제가 된 △△당 소속 김○○ 전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언론은 검찰이 보복수사를 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지만, 검찰 쪽에서 들리는 게 있어야 기사를 쓸 텐데 도통 알기가 어렵다. 예전 같으면 공보담당 검사가 티타임이나 지나가는 말로 흘려주기라도 했을 텐데 말이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관련 규정이 강화된다고 하더니 사실인 모양이다.

김 전 의원 수사는 예전 관행대로라면 수사가 시작됐을 때부터 참고인이 검찰에 출석하는 포토라인 영상, 수사를 받으면서 한 이야기, 수사를 받고 새벽에 귀가하는 모습까지 거의 실시간으로 방송을 탔겠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검사는 참고인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보내 조사를 진행하고, 제출해 주었으면 하는 자료를 알려준 뒤 한 차례 출석을 요구했다. 참고인들을 조사한 뒤 관련 계좌와 증거가 있음 직한 장소를 구체적으로 특정해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다.

압수수색 양상도 확연히 달라졌다. 문이 열리자마자 영장을 들이밀며 영장 내용을 고압적으로 읊던 과거와 다르게 수사관은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알려주었고, 영장을 제시하고 사유를 설명하는 정중함을 보였다. 압수수색은 영장에 기재된 장소와 증거에만 국한되었다. 추가적인 범죄 혐의를 발견하기 위한 무리한 압수수색은 없었다. 그래서 신속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 다른 장소들에 대한 압수수색도 마찬가지로 진행됐다.

언론에 공개되는 방식도 바뀌었다. 김 전 의원 수사에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자 검찰은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의 의결을 받아 수사 상황을 공개하기로 했다. 검찰 스스로 공개 여부를 결정할 수 없는 탓이다. 검찰은 김 전 의원이 국회의원 시절 입수한 자료를 부당하게 이용해 이득을 취했다는 내용의 고발장이 접수되어 수사가 개시된 사실과 현재 자택·사무실·차량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된 사실을 공개했다. 수사 막바지가 되어 언론에 알리게 된 것이다.

피의자에 대한 수사 방식도 달라졌다. 검사는 김 전 의원에게 출석에 앞서 혐의 관련 입장과 해명을 위한 자료 및 의견서를 제출해 달라고 했다. 김 전 의원은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하고, 유리한 증거를 최대한 제출했다. 검사는 김 전 의원이 제출한 자료와 의견을 검토한 뒤, 최종적인 입장을 확인하고 검사에게 직접 해명의 기회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한 차례 출석 요구를 했다. 이메일이나 전화 같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도 조사가 가능하면 이를 통해 하도록 인권보호수사규칙이 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과거처럼 10여 차례 이상 검찰에 불려 나가는 일은 없어지게 된 것이다.

가장 극적인 차이는 역시 피의자의 검찰 출석 풍경의 변화다. 김 전 의원은 변호인을 대동하고 아침 9시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했다. 검찰청에는 기자도, 포토라인도 없었다. 검사의 조사는 부패방지권익위법 위반 혐의에 집중되었을 뿐, 먼지털이식 질문 공세는 없었다. 조사는 오후 9시 전에 마무리되었다. 종전 자정까지 가능하던 수사시간이 오후 9시까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인권보호수사규칙은 대기시간·휴식시간·식사시간 등 모든 조사시간을 합산한 총 조사시간이 12시간을 초과해서도 안 되고, 오후 9시부터 오전 6시 사이의 조사는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심야조사는 아주 예외적으로 피의자나 사건 관계인이 재출석이 곤란한 구체적 사유를 들면서 심야조사를 먼저 요청하거나, 공소시효 완성이 임박한 경우와 같이 형사소송법상 필요한 경우라야 가능하다. 그것도 검사가 소속 검찰청 인권보호관에게 서류를 제출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충분한 증거를 확보해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고, 김 전 의원이 도주할 염려도 별로 없다는 점을 감안해 검사는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기로 했다.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를 구속 상태에서 재차 소환해 자백을 유도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불구속 수사 원칙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검사는 이후 추가 증거를 수집한 뒤 신속하게 김 전 의원에 대해 공소를 제기했다.

조서 중심의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 풍경도 변할 수밖에 없다. 재판 과정에서는 공판중심주의가 보다 실질화되었다. 참고인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강화되었고 검사와 변호인의 공방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수사 과정에서 정보가 차단되다가 재판 과정에서 증거 및 진술이 쏟아지자, 언론의 보도 경향도 예전과 많이 바뀌었다. 기자들은 공판 과정에서 양측의 주장뿐 아니라 증인들의 진술과 공개되는 증거들을 함께 취재할 수 있었다. 법정에 제출된 증거를 단서로 후속취재가 진행되었고, 양측 주장의 허점에 대한 분석기사가 나왔다. 선고기일을 앞두고 여태까지의 재판 과정을 토대로 한 판결 결과에 대한 예측기사들이 쏟아졌다. 판결 결과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커지자 검찰의 수사뿐 아니라 법원 판결의 공정성에 대한 여론도 높아졌다.

 

자백 중심 수사 관행과 조서 중심 재판 진행에 제동

이렇듯 검찰 수사 관행이 앞으로 바뀌게 되면 소위 ‘자백’에 의존하던 기존의 수사 논란도 사라질 전망이다. 현재의 형사소송법 체제 아래, ‘자백’이 기재된 검사 작성 피의자 신문조서의 위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쉽게 그 증거 능력이나 내용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은 수월한 공소 유지를 위해 ‘자백’을 받아내기를 원한다. 인권보호수사규칙은 총 조사시간을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심야조사도 방지하고 있다. 거기에 재출석 요구에 대해서도 자제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검사는 기존 관행대로 수사하기가 매우 불편할 것이다. 기존의 조서 작성 방식 수사를 지양하라는 취지로 읽히기도 한다.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수사 관행은 피의자의 인권에 대한 잔혹한 칼날로 작용하기 십상이었다. 최근 화성 연쇄살인 사건 8차 범행의 범죄자로 지목돼 20년간 수감생활을 했던 윤아무개씨가 “무리한 강압수사에 의한 자백 강요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예가 대표적이다. 검찰은 때로 피의자 및 그 가족 내지 지인들에 대한 심야조사와 반복적이고 강압적인 출석 요구, 전방위적 압수수색영장 신청, 공격적인 구속영장 신청, 부당한 별건수사, 과도한 피의사실공표 등을 토대로 피의자를 압박해 왔다. ‘인권보호수사’를 하도록 행동준칙을 정하고 있었으나 여전히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피의자에 대한 인권보호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일들이 발생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강화된 인권보호수사규칙이 제정된 만큼, 이를 통해 수사 관행이 변화되고, 재판정에서의 공방이 강화되고, 언론보도가 수사 단계가 아니라 종국적인 판결 중심으로 옮겨가는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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