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게 나라냐’에 응답하는 권력기관 개혁은?
  •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0 18:00
  • 호수 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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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권력기관 제도 개혁을 이루지 못한 채 반환점을 돌았다는 것은 여야 공통으로 인정한다. 다만 제도 개혁의 방향과 개혁 지체 책임을 달리 보고 있을 뿐이다. 정부·여당이 말하는 권력기관 개혁의 제도적 과제는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여기에 자치경찰제까지 덧붙일 수 있겠다. 공수처 설치 등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쪽도 있다. 특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공수처 설치를 두고 오히려 개악이라고까지 하고 있다. 2016년 말 국정농단을 보면서 ‘이게 나라냐?’고 외쳤던 촛불시민들은 무엇을 개혁과제로 삼았을까?

당장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제대로 된 대통령을 새로 뽑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문제지만 제왕적 대통령제가 배경에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그래서 새로운 대통령과 더불어 제왕적 대통령제도 바꿔야 한다고 했다. 당시 강진 토담집에서 나와 7공화국을 열자고 했던 손학규 대표처럼 대통령제의 개편을 최우선 과제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개헌을 통한 대통령제 개편은 여러 여건상 대선 후의 과제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됐고, 조기 대선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압도적인 지지는 아니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과 대조된 문 대통령의 초기 행보는 청량한 기대감을 주었고 높은 지지도로 이어졌다. 약속대로 개헌도 추진했다. 그러나 개헌 추진 세력이 초점을 두었던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편과는 조금 다른 개헌 내용으로 결국 무산되었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편 의지는 별로 없어 보였다. 문 대통령은 제도보다는 대통령 나름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었다. 역대 대통령의 상당수도 그랬다. 하지만 대통령 나름이라고 생각했던 역대 대통령도 퇴임 무렵에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편 필요성을 토로했다. 국정농단 사태와 더불어 대통령제의 개편 필요성이 여기저기에서 제기되었으나, 2017년 대선의 주요 후보들이 개헌을 통한 대통령제의 개편을 전면에 내걸지는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 문제와 관련해 지방분권 강화와 감사원의 국회 이관 정도를 약속했다고 볼 수 있다. 홍준표 후보는 특별감찰관의 역할을 더욱 강화해 대통령 주변을 제대로 감찰해야 한다고 했다. 십상시나 문고리 권력이 횡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안철수 후보는 장관 인사의 국회 동의, 감사원의 국회 이관 등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축소와 분권화를 내세웠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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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집권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 이 중 어느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특별감찰관은 강화되기는커녕 지난 2년 반 동안 임명조차 되지 않았다. 제도가 아니라 운용의 묘와 리더십에 달렸다고 보기도 했지만, 기대했던 정부에서 오히려 ‘청와대 정부’라 불릴 정도로 대통령 권력 집중은 여전했다.

권력기관으로서 검찰 개혁이 당연히 필요하지만, 국가의 최고 권력기관은 검찰이 아니라, 대통령과 청와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게 나라냐’고 외쳤던 촛불민심이 던진 과제도 대통령을 둘러싼 국정농단에 대한 자괴감과 개혁 요구였다. 역대로 집권 후반기에 가면서 그랬듯이, 선의의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기대를 넘어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편하는 것이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 제도 개혁의 여전한 과제임을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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