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노동은 부업이 아닌데요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3 17:00
  • 호수 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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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톨게이트 노동자의 비밀 ②

왜 모든 ‘없어질’ 일자리들의 절대다수는 여성 노동자들인가. 그러자 어떤 독자가 항의하기를, 구조조정 당하는 중공업 노동자들은 남자들이었다고 한다. 현상적으로 맞는 말이다. 기계화·자동화는 중공업 일자리로부터 주로 고임금 남성 노동자들을 몰아내었고, 소위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AI 기술 때문에도 고임금 전문직 남성 일자리들이 직접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제3세계로의 공장 이전도 마찬가지다. 바로 그 때문에 고용노동부라는 곳도 머리를 싸매고, 산업통상자원부라는 곳도 머리를 싸매지 않는가. 이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너무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하지만 톨게이트 노동자들, 나아가 여성들이 일하는 대다수의 자리를 보장해 주고자 고민하는 정부 부처는 왜 저곳들이 아닐까? 그것이 알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보는 것 안에서만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나도 당연히 여성이니 여성의 관점에서만 보기 쉽다. 그런데 여성들은 또 다른 관점도 지니고 있다. 아내로 딸로 어머니로 며느리로 살면서 내면화하는 ‘남자가 먼저’라는 관점. 다 같이 직장에서 고생하고 오지만, 아내는 돈을 적게 버니 부업이다, 그러니 주업인 집안일은 여성이 다 해야 한다는 관점. 내가 동의한 적 없어도 어머니가 할머니가 유구하게 강요하던 관점. 남성이, 밥 차려주는 아내의 관점이나 오빠와 남동생 대학 보내려고 한일합섬 야간여상 다니던 누이의 관점이 될 필요가 없던 것과 참 대조적이다. 시장에서 손톱 빠지도록 채소를 다듬은 엄마들의 노동은 거룩함으로 퉁쳐버리고.

그러니 다시 생각해 보자. 중공업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당했을 때 그 가족, 즉 아내와 자녀들도 같이 구조조정 당했다는 사실을. 남성의 초과 노동과 고강도 노동을 가능하게 하려면 그 남성 노동 신체를 극진히 보살피는 여성의 돌봄노동(집안일)이 필요하다. 남편들이 해고되었을 때 아내들이 저임금 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하며 함께 투쟁한 슬픈 이야기는 이 남성 노동이 패키지라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의 노동은 부업이나 하찮은 일이 아니다. ⓒ 뉴스뱅크이미지
여성의 노동은 부업이나 하찮은 일이 아니다. ⓒ 뉴스뱅크이미지

여성 노동자의 ‘일할 권리’는 어디에 있나

원래 여성의 가사노동은 급여가 없는 노동이었기 때문에 가사노동을 닮은 모든 노동, 즉 돌봄이니 서비스니 하는 이름이 붙은 노동은 저임금으로 매겨진다. 이런 것을 고상하게 성별화된 노동분업이라고 부른다. 이런 구조 속에서 남성은 중요하고 힘든 일(대신 고임금)을 하고 여성은 쉽고 보조하는 일(해 보면 어렵고 고생스러운 일이라도 하여튼 저임금)을 한다. 그러니 다시 이야기하자. 왜 대기업 구조조정 당하는 노동자들은 다 남자인가? 그 노동을 남자들에게만 배정해서다.

이런 식의 성별화된 노동분업이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수많은 여성들이 군수공장의 전문적 기술노동자로 일했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남성들을 취업시키기 위해 여성이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기나긴 투쟁의 시기가 있은 이후 노동은 더 노골적으로 남성 일자리와 여성 일자리로 성별화되었다. 6·25 이후 폐허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출발한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일자리 자체가 다르게 배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이 빠르게 변했다. 성별분업의 토대가 된 가족이라는 사회적 기초가 달라지고 있다. 모든 노동자는 남녀 불문 가족을 먹여 살린다. 설령 그 가족이 자기 혼자라도. 그러니 ‘없어질 일자리’ 타령을 하기 전에,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사유해야 한다. 일할 권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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