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협상, ‘생존권’ 아니라 ‘발전’ 프레임으로 기준 바꿔라
  • 권신일 에델만코리아부사장 겸 갈등연구소 대표 (jongseop1@naver.com)
  • 승인 2019.11.26 07:30
  • 호수 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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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 제시하는 상대의 다급함 대비해야…결렬 시 대안도 필요

지난해 평창올림픽 이후 복구된 북핵 협상의 1라운드 종료시점이 연말로 다가왔다. 2년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남북 정상회담 3회, 북·미 정상회담 2회가 있었을 만큼 이번 협상 라운드는 최고책임자의 결단에 따른 톱다운(Top-down) 형식으로 추진되어 온 특성을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있어 더 이상 모호한 성과로 협상을 이끌어갈 수 없다. 무엇보다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 1:1 협상을 선언한 북한이 연말로 협상 종료시한을 여러 차례 공언한 만큼 올해 말은 톱다운 방식의 북·미 협상이 어떤 형태로든 결론이 날 것이다.

흔히 협상에서는 종료시점을 선언하는 것을 금기로 삼는다. 시한을 정하는 측은 그 시한 내에 어떤 형태든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자신의 패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팔 때라면 안 팔릴 것을 각오한 배수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국가 간 협상은 대개 2~3년 이상 걸리는 것이 상례다. 북핵 협상도 아무리 톱다운 방식이었다고 해도 한두 해에 결정 날 일은 아니라는 것이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의 견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북한이 협상 시한을 정한 것은 핵무기를 장거리미사일과 함께 이미 완성했다는 자신감이 밑바탕에 있다. 반면에 북한 주민 입장에서는 핵만 완성하면 잘살게 해 주겠다는 3대에 걸친 북한 지도자들의 공언이 있었던 만큼 그간의 희생에 대한 보상 요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한국은 이러한 북한의 급한 입장을 협상에서 수단과 대안 개발을 할 때 염두에 둔다면 보다 실효성 있는 안을 만들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나오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나오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기준’과 ‘노딜’이 ‘빅딜’ 될 수도

첫째, 연내 해결이 나지 않아 협상이 결렬됐을 때에 대비한 대안, 즉 바트나(BATNA·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 점검이 시급하다. 협상에서는 거래가 되지 않았을 경우 준비하는 수단을 ‘대안(BATNA)’이라고 한다. 만약 구매자의 입장이라면 판매자가 끝내 원하는 가격이나 조건을 제시하지 않을 때 더 이상의 거래를 중단하고 다른 가게로 가거나 대체재를 구하는 경우다. 이럴 경우 가게 주인이 추가로 할인해 주겠다며 손님을 잡거나 그냥 놔둔다. 때로는 손해를 보고 팔 경우 제 가격에 산 다른 손님들의 항의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경우 그간의 호언장담에도 북한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내부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서라도 핵실험이나 장거리미사일 발사 등 전쟁 위협 위기를 고조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에 대비한 대안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선 북한의 예상 활동에 대한 사전 공개와 대비책 등을 흘려 상대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도 그중 하나다. 그 안에는 위협에 대한 보복 시나리오 공개도 포함해 막대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경고와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북한에 영향력이 큰 중국이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게 할 수 있다.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은 필연적으로 일본과 한국의 핵무장, 나아가 대만의 핵 보유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와 국무부에서도 간혹 흘리고 있는 만큼 현실적인 방안이다. 중국으로서는 동서남북이 북한, 일본, 남한, 대만, 인도,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핵으로 포위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북핵 위협의 가장 인접국가인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이 3국 ‘북핵 방지 원포인트 안보협의체’ 구성을 통해 북한의 섣부른 판단을 견제한다면 세 번째 안전망이 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으로선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한편 중국은 남한과 일본의 핵무장을 견제하며 대만까지 확산되는 시발점을 차단하는 효과를 기대할 것이다.

두 번째로 협상이 원만히 진행되도록 하는 명분 또는 가교 역할을 할 수단을 개발해야 한다. 협상 현장에서는 어려울 때일수록 ‘기준’(legitimacy)과 ‘노딜(no deal)이 굿딜(good deal)’이 될 수도 있다는 조언을 한다. 먼저 ‘기준’은 상대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원칙 또는 잣대다. 아파트 판매자가 구태여 가격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구매자가 인터넷을 통해 최근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스스로 가격 상하한선을 정하는 것처럼 유사한 사례를 제시하는 것이다. 

 

협상의 진짜 목적은 파이를 키우는 것

북한의 인식과 달리 현실에서는 핵을 보유하면 망하고, 포기할 경우 선진국이 된 사례는 너무나 많다. 소비에트연방은 무너졌고, 이란도 핵 보유 망상으로 국제사회의 제재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핵을 가질 역량이 되면서도 갖지 않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본, 유럽의 국가들은 선진국으로 발돋움해 온 사례를 핵을 포기해야만 얻는 기준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활용해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등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이므로 북한의 정책 담당자들도 가장 명분 있게 대남 교류의 창구가 될 수 있다. 당장에 핵 포기가 쉽지 않으면서도 국제사회의 지원과 제재 완화가 필요하다면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나 국제사회와의 인도적 교류를 통해 제재 완화의 명분을 스스로 얻도록 해야 한다. 국제사회도 인도적 지원이나 연관 사업은 북한 경제제재에서 예외로 하고 있다. 이는 안보 위협 속에서도 숨구멍처럼 열려 있는 대화 창구가 될 것이다. 미국 역시 북한 제재를 완화하는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 미국이 제재 완화에 앞장서 북한 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경우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3%에 달할 것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경제 성장의 뿌리가 깊어진다면, 북한을 좀 더 예측 가능한 국가로 나오게 할 수 있고, 다른 나라들의 투자와도 연결되는 고리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기준에 맞지 않을 경우 과감히 노딜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협상 현장에서는 때때로 노딜이 굿딜이라는 조언도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 협상을 상대를 제압하거나 이겨야 하는 승부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협상의 진짜 목적은 파이를 키우는 것이다. 한쪽이 손해 봤다는 느낌을 남기게 되면 지속적으로 신뢰를 갖고 만나기 어렵게 될 것이다. 

남북 간에 쌓인 핵무기 불신의 골은 1953년 휴전협상 때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깊다. 맥아더 사령관의 만주 폭격론 등 핵무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중국은 소련의 방해에도 몰래 1964년 첫 핵실험에 성공했고, 북한은 중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사실상 핵실험을 실행해 왔다. 북핵 협상이 생존 차원에서 다뤄진다면 북한은 절대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북핵 협상을 성공시키려면 수십 년간 이어온 ‘생존권’의 프레임이 아니라 ‘발전’의 프레임으로 협상 기준을 바꾸어야 한다. 지난 2년간은 대화 창구 복구를 위해 정상 간의 결단과 때로는 시한도 제시하며 도박에 가까운 승부가 펼쳐진 톱다운 방식이었다면, 내년부터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구체적인 실행안을 내는 바텀업(bottom-up)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안팎으로 다급한 상황에 처해 오히려 큰소리로 위협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북한의 정책 당국자들의 속내를 읽고, 마치 시한에 쫓겨 성급하게 물건을 구입하는 우를 저질러선 안 될 것이다. 핵을 포기한다면 갖게 될 구체적인 북한 발전 계획과 인류에 대한 기여 항목들은 우리나라 협상가들이 미국과 북한에 앞장서 제시해야 할 협상 테이블의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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