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웃긴 유튜브, ‘TV 코미디’가 달라진다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30 12:00
  • 호수 157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계 없는 플랫폼이 선사하는 ‘한계 없는 웃음’

“제가 하는 코미디를 보고 저거 웃어야 해? 안 웃을 수도 없고. 안 웃으면 장애인 차별하는 것 같고, 웃지 않으면 장애인 비하하는 거 같잖아?” KBS 파일럿 2부작 《스탠드업!》 첫 회 무대에 오른 장애인 코미디언 한기명은 첫마디부터 도발적이었다. 그는 영화 《부산행》에서 자신을 부르지 않은 것에 대해 서운하다며 다들 ‘좀비’ 역할을 떠올리고 있을 때, “공유”라고 말해 우리가 가진 편견을 뒤집는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이런 장애인 소재가 《개그콘서트》 같은 무대에 세워졌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곧바로 ‘장애인 비하’ 논란이 터졌을 게다. 하지만 한기명은 스스로 장애인임을 하나의 유머 코드로 승화시켜 통쾌한 웃음 한 방을 날렸다. 《스탠드업!》에는 박미선이나 장도연 같은 익숙한 코미디언들도 무대에 올랐지만, 알파고 같은 터키에서 귀화한 기자도 무대에 올랐다. 그는 코미디언은 아니지만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국인의 특이한 문화를 콕콕 짚어 비트는 것으로 큰 웃음을 줬다. 귀화해 어느덧 한국인이 다 된 그가 ‘국뽕’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낼 때 웃음 가득한 풍자는 꽃을 피웠다.

《스탠드업!》의 시청률은 역시 예상대로 낮은 2%대였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그 이유는 현재 정체되어 있는 TV 코미디 프로그램에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새로운 장르를 시도했다는 점 때문이다. 사실 우리네 TV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너무 오래도록 ‘무대 개그’에 머물러 있었던 게 사실이다. 무대 개그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지만, 코미디라는 장르가 그것뿐인 것처럼 오인돼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는 건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 KBS
ⓒ KBS

기존 틀 깨고 호평받는 스탠드 코미디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드는 농담으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스탠드업 코미디 장르의 특성상 19금이라는 딱지를 붙였지만 《스탠드업!》의 그런 과감한 선택 역시 호평으로 돌아왔다. 19금 예능 프로그램이 되지 않기 위해 무수히 많은 제한들을 받아들이면서 코미디 자체가 너무 둥굴둥굴해졌다. 결국 소재나 형식에서도 뻔한 틀만 반복됐던 게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현실이었다. 홍보도 쉽지 않고 보편적인 접근성도 떨어지는 19금 예능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한계가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체된 TV 코미디 프로그램에는 충분히 자극제가 될 만했다.

그런데 어째서 하필이면 스탠드업 코미디 장르였을까. 여기에는 최근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스탠드업 코미디 장르를 한 분류로 세워두고 있는 넷플릭스가 단적인 사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코미디를 좀 봤다 싶은 사용자들은 에이미 슈머의 《성장 코미디》나 리키 저베이스의 《인간이 싫어》 같은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가 거대한 공연장에 세워진다는 사실에 놀라워할 것이다. 물론 켄정의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의 고백》 같은 스탠드업 코미디는 본래 이 장르가 그러하듯이 클럽에서 진행되었지만 말이다. 거대한 공연장이든 클럽이든 단 한 사람이 마이크 하나를 들고 그 많은 사람들을 빵빵 터트린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넷플릭스가 국내에 본격 상륙한 지금, 저들의 스탠드업 코미디 장르는 그래서 우리에게도 그 장르가 유용하다는 걸 보여주기 시작했다. 작년 공개됐던 유병재의 《블랙코미디》가 그 첫 시도였다면 최근 공개된 《박나래의 농염주의보》가 그 대표 사례다. 넷플릭스라는 세련된 채널이 부여하는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장르는 우리에게도 ‘힙’한 코미디 장르로 다가왔고, 실제로 박나래와 유병재의 무대는 국내 어떤 프로그램에서도 시도된 적 없고 또 시도될 수도 없었던 수위의 코미디로 채워졌다. 눈치 보고 머뭇대는 성적 농담이 오히려 더 음흉하게 보일 수 있다는 걸 당당하고 통쾌하게 보여주면서, 어쩌면 코미디는 금기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것에서 현실의 억압을 풀어내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는 걸 알게 해 줬다.

스탠드업 코미디 장르처럼 짧게 끊은 에피소드로 웃음을 주는 형식은 유튜브 같은 채널에서 무수히 많은 짤방이 생겨난 이유가 됐다.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이 여전히 무대 개그에 집착하고 있을 때 넷플릭스나 유튜브에 익숙한 세대들은 새로운 웃음의 지대가 있다는 걸 이들 채널을 통해 확인했다.

스탠드업 코미디 장르를 예로 들었지만, 사실 유튜브는 훨씬 다양한 코미디의 양상을 보여주는 채널이다. 유튜버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른바 ‘짤방’들은 그것이 현실 세계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점에서 TV 코미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현장에 뛰어들어 몰카 콘셉트로 만든 영상들을 주로 업로드하는 ‘희극인’이라는 채널에 올라온 ‘이게 나라냐?! 이러면 안 되는 것이야’ 같은 3분 남짓의 짤방은 ‘공인인증서’ 때문에 고생한 한 남자의 전화통화 내용으로 옆자리에 앉아 그 소리를 듣던 한 여성을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이런 현장성은 TV 코미디가 갖지 못하는 리얼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개그콘서트》가 최근 현장 영상을 가져와 무대 개그의 한계를 넘어보려 시도하곤 있지만, 거기 출연하는 이들이 보통 사람이 아닌 개그맨들이라는 사실은 공간만 바뀌었을 뿐 그 현장 또한 또 다른 무대로 만드는 한계를 드러낸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박나래의 농염주의보》의 한 장면 ⓒ Netflix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박나래의 농염주의보》의 한 장면 ⓒ Netflix

넷플릭스·유튜브가 열고 있는 새로운 웃음의 세계

유튜브 짤방의 또 다른 강점은 ‘정보’다. TV 코미디는 주로 코미디언이 하기 때문에 그 직업적 특성이 웃음을 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튜브 짤방에 등장하는 영상의 주인공들은 직업이 참 다양하다. 요리사도 있고 물리치료사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를 재밌게 알려주는 것으로 또 다른 코미디의 세계를 연다. 피지컬 갤러리는 체형 교정과 재활 정보를 알려주는 채널이지만 그걸 알려주는 이른바 ‘빡빡이 아저씨’ 캐릭터가 주는 웃음으로 빵빵 터지는 콘텐츠를 발견할 수 있다.

TV 코미디가 기존 플랫폼의 색깔에만 머물러 있는 사이,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새로운 채널을 알게 된 대중은 점점 그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무대 개그라는 형식적 틀에만 갇혀 있다가는 코미디라는 장르가 TV에서 고사될 판이다. 당장의 시청률이 문제가 아니다. 이미 개그맨들도 유튜브로, 넷플릭스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이 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나마 《스탠드업!》 같은 파일럿이 시도되고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지만, TV 코미디는 이제 변하지 않으면 점점 설 자리를 잃을 것이 분명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