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회의 고민 “의견의 자유,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나”
  • 이수민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05 16:00
  • 호수 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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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견도 자유롭게, 단 반대도 자유롭게

10월9일 독일 동부에 위치한 할레의 유대교회당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져 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용의자 슈테판 발리엣은 사건 이전 자신의 반유대주의적 사상을 드러낸 성명서를 공개해 범행동기를 밝혔다. 그의 사상적 배경은 독일 극우세력들이 퍼뜨리고 있는 음모론, 즉 유대인이 세계 지배를 노리고 독일을 망하게 하려 한다는 내용에 기반한다.

10월21일 괴팅엔에서는 전 내무장관이었던 토마스 데메지에르의 낭독회가 계획돼 있었다. 300명이 참석하기로 한 이 행사는 약 100명의 시위대가 사람들을 행사장에 못 들어가게 막는 바람에 무산됐다. 좌파 활동가들로 알려진 이 시위대는 시리아 북부를 공격하는 터키에 대한 일부 책임이 데메지에르에게 있다고 보기 때문에 낭독회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월30일 함부르크대학에서는 베른트 루케 교수의 ‘거시경제학2’ 수업 강의실 앞에 경찰들과 기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미 개강일인 10월16일부터 매주 이 강의는 학생회 및 지역 ‘안티파(파시즘에 반대하는 극좌파 모임)’의 반대 시위에 부딪혀 무산되기에 이르렀다. 대학 측에서는 루케 교수가 강의실로 들어가 수업을 할 수 있도록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고 기자들은 이를 보도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루케 교수는 왜 이런 반대에 부딪혔을까. 루케는 함부르크대학 경제학 교수이자 동시에 독일대안당(AfD, 이하 대안당)의 창립자다. 지금은 탈당한 상태지만, 극우세력 창립자라는 사실 때문에 좌파에게는 강의와 같은 공적 공간에서 발언의 기회를 주면 안 되는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2018년 8월18일 독일 베를린에서 아돌프 히틀러 최측근인 루돌프 허스 사망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신나치주의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 EPA 연합
2018년 8월18일 독일 베를린에서 아돌프 히틀러 최측근인 루돌프 허스 사망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신나치주의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 EPA 연합

‘의견의 자유’ 침해되고 있다는 국민 인식 높아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지금의 독일 사회 좌우 진영은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특히 ‘의견의 자유’(언론 보도에 대한 검열이 아닌, 개인들의 의견 개진과 표현의 문제이므로 ‘언론의 자유’ 대신 이같이 표현한다)라는 점에서 독일 사회에선 다음과 같은 여러 질문이 오가고 있다. 반유대주의를 비롯한 극우세력의 혐오 발언은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의견의 자유’에 속하는가. 연구와 강의의 자유가 보장된 대학에서 극우세력으로 분류된 인물은 발화의 자유가 있는가. 이를 반대해 강의를 무산시키는 이들의 자유도 보장돼야 하는가.

복수의 연구소에서 시행한 설문에 따르면 독일 내 ‘의견의 자유’는 현재 많이 침해되고 있다. 설문 결과를 보면 독일 국민의 3분의 2가 ‘특정 주제’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개진하면 안 된다고 느낀다. 여기서 특정 주제에 해당하는 내용은 난민, 이슬람, 나치와 유대인, 우익세력과 대안당 등 현재뿐 아니라 과거 독일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정치적인 사안들까지 포함된다. 젊은 층에서는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중요하게 배운 나치에 ‘질린다’는 반응이 나오지만, 이를 입 밖으로 내면 즉시 ‘나치’라는 낙인이 찍히기 때문에 침묵한다. 지역 신문에서는 난민 출신들이 성폭행 등 여성 혐오적 범죄를 저지르는 내용을 연일 보도하지만, 이슬람교의 여성 혐오를 지적하며 난민들을 문제 삼으면 이 역시 나치라는 낙인이 찍힌다.

독일 기본법 제5조에는 “누구든지 자기의 의사를 말·글 및 그림으로 자유로이 표현·전달하고,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정보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알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즉 법적으로는 의견의 자유가 보장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드러낼 때 받을 비난이 두려워 입을 닫는다. 사회적 분위기, 특히 ‘정치적 올바름’에 부합하느냐에 대해 내적인 검열을 거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강한 것이다.

이는 정치적으로 대안당이라는 독일 극우당의 높은 지지율과도 관련이 있다. 독일은 난민들로 인해 이슬람교가 확산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기독교적 바탕에 근거한 사회적 전통들이 와해되는 것에 대한 거부 반응 또한 적지 않다. 11월초 대안당에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이러한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안당 같은 극우당이 지지받는 이유

독일 남동부의 뉘른베르크는 크리스마스 마켓 전통이 깊은 것으로 유명한 도시며, 2년마다 크리스트킨트(아기 예수)를 선발한다. 크리스트킨트는 마켓이 시작되는 날 대표 연설을 하는 등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가 된다. 올해는 17세 소녀 베닝냐 문지로 정해졌다. 문지는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났고, 인도 출신 독일 국적의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를 두는 등 크리스트킨트의 여러 조건에 부합한다. 하지만 흑발에 비교적 어두운 피부색을 갖고 있어 ‘전통적인’ 크리스트킨트의 외양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대안당이 이에 문제를 제기했다. 대안당은 공식 페이스북에 “뉘른베르크가 새로운 크리스트킨트를 뽑았다. 언젠가 우리는 인디언(미국 원주민)들과 같은 운명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글을 올렸고 이는 독일 내에서 큰 반응을 낳았다.

대안당과 같은 극우당이 오늘날 높은 지지를 받는 이유를 이와 같은 사례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람들이 생각만 하고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들, 즉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믿었던 가치들이 틀렸다고 말하는 새로운 흐름에 대한 거부감을 정치인이라는 공인이 공개적으로 대변해 주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존 정치인과 다른 발화 스타일로 지지자들에게 호감을 산 것과 유사하다는 분석이다.

우익세력과 좌익세력의 충돌은 과거에도 늘 존재했다. 1950년대 독일에서 공인의 연설을 방해하는 시위대는 현재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었다. 그러나 현재와 과거의 차이가 있다면, 현재 매우 일상적인 차원에까지 정치가 침투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 간의 갈등의 장이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으로까지 확장된 것도 오늘날 충돌이 더욱 교묘하고 풀기 어려워진 이유로 볼 수 있다. 나치와 같이 금기였던 문제 또한 어느 순간부터 넘쳐나게 된 것 또한 이 같은 영향으로 읽힌다. 영국 역사학자 가튼 애쉬는 이에 대해 “그간 표현되지 않은 것들이 표면 아래에서 끓고 있다가 2010년 이후 이 같은 변화를 겪으며 급속도로 넘쳐나게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독일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할까. 뚜렷한 정답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 다수의 시각이다. 다만 극우파든 혐오 발언자든 개인의 의견의 자유는 법적으로 보장된 만큼 지켜져야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 반대 시위를 벌이는 것 역시 충분히 용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이 또한 의견의 자유에 속하기 때문이며, 표면화된 충돌을 경험하면서 개인이 성찰을 경험하는 것, 이를 통해 독일 사회도 한층 성숙해지는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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