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女帝’ 김연아의 후계자가 정해졌다
  • 기영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04 16:00
  • 호수 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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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수 최초 ‘트리플 악셀’ 구사하는 유영, 김연아와 비교해 봤더니...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유영(15)이 김연아의 뒤를 이을 유망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영은 10월말 캐나다에서 벌어진 2019 그랑프리 2차 대회에서 217.47점의 높은 점수로 동메달을 땄다. 217.47점은 김연아가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때 금메달을 따면서 기록한 228.56점에 이어 한국 선수 역대 2위에 해당하는 높은 점수다.

유영은 11월9일 중국에서 벌어진 그랑프리 4차 대회에서는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다가 잇따라 넘어지는 바람에 4위(191.81점)에 그쳐 세계 6강이 겨루는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했다. 유영은 원래 국제빙상연맹(ISU)으로부터 그랑프리 2차 대회만 초청받았지만, 여기서 동메달을 따면서 4차 대회까지 초청을 받았다. 한국 선수 가운데는 유일하게 그랑프리 대회에 두 번이나 초청받은 것이다.

1월13일 유영(과천중)이 ‘KB금융 코리아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9’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아름다운 연기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1월13일 유영(과천중)이 ‘KB금융 코리아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9’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아름다운 연기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유영, ‘김연아 키즈’ 5인방 가운데 선두 부각

김연아가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탄탄한 기본기에, 뛰어난 표현력 그리고 높은 점프력이었다. 김연아는 탁월한 점프력을 바탕으로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을 주무기로 삼았다. 굳이 트리플 악셀을 시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유영은 김연아의 라이벌이었던 아사다 마오(일본)의 트레이드마크 트리플 악셀을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성공시키고 있다. 그는 2016년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역대 최연소(11세)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유영의 플레이를 본 김연아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보다 훨씬 더 잘 탄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유영은 2019 동계아시아유소년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200점을 넘는 205.82점으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국제대회에서도 ‘일류 선수로 인정받는 200점대’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유영은 한국의 역대 여자 피겨선수 가운데 가장 스피드가 뛰어나고 점프력이 좋아 사상 처음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켰고, 남자 피겨선수들도 어렵다는 ‘4회전 살코’에 도전하고 있다. 조만간 아시아 최초로 4회전 점프를 실전에서 성공시키는 선수가 될 것이란 기대감에 차 있다. 다만 점프를 시도하다가 넘어지거나 회전수 부족으로 감점을 받기도 하는 단점을 극복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국내외 피겨스케이팅계에서는 이제 만 15세인 유영이 ‘15세의 김연아’를 이미 넘어섰다고 보는 전문가가 많다. 제2의 김연아를 다퉜던 유영·임은수·김예림·최다빈·박소연 등 5인방 가운데 아직 유영·임은수 외에는 세계선수권대회 수준의 그랑프리 대회에 초청받지 못하고 있다. 임은수(16)는 지난해 8월 그랑프리 5차 대회에서 김연아 이후 처음으로 동메달을 목에 건 데 이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등 처음에는 5인방 가운데 가장 앞서갔다. 그러나 미국에서 열린 2019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5위에 그치면서 세계 정상권과의 격차를 절감해야 했다.

2018년 5월20일 김연아가 ‘올 댓 스케이트 2018’ 공연에서 음악에 맞춰 연기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2018년 5월20일 김연아가 ‘올 댓 스케이트 2018’ 공연에서 음악에 맞춰 연기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고 난이도 4회전 점프 구사하는 러시아 선수들과 경쟁해야

유영이 김연아의 후계자로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아직 넘어야 할 높은 산이 많다. ‘세계 피겨스케이팅계의 절반’이라는 러시아에서 마치 봇물 터지듯이 좋은 선수들이 대거 배출되기 시작해, 무엇보다 그들을 우선 극복해 내야 한다.

러시아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과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평창 대회에서는 금메달(알리나 자기토바)은 물론 은메달(에브게니아 메드베데바)까지 휩쓸었다. 현재 러시아의 유망주인 안나 쉬체르코바는 유영과 같은 15세로, 세계 최초로 난이도가 가장 높다는 4회전 점프 ‘쿼드러플 러츠’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쉬체르코바 외에도 알리나 자기토바, 소피아 아모르토바, 엘리자베타 툭타미세바, 에브게니아 메드베데바 그리고 아직 14세로 주니어인 알렉산드루 투루세바 선수 등 러시아는 세계랭킹 10위 안에 5~6명이 포함될 정도로 피겨스케이팅 초강국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피겨 육성 시스템’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능성만 있으면 국가의 지원으로 경제적 부담 없이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했다. 유영이 김연아의 후계자로 자리를 잡는다고 해도 러시아의 ‘쿼드러플 기계’들을 넘어서야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메달을 바라볼 수 있을 전망이다.

 

피겨 최강국 러시아,

그러나 여자 싱글 금메달은 한국보다 늦어

세계 피겨 최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러시아지만, 사실 러시아는 ‘여자 피겨 싱글 올림픽 노 금메달 징크스’에 시달려 왔다. 피겨는 1908년부터 올림픽 종목에 포함되었으나, 러시아는 1908년부터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때까지 무려 102년 동안 ‘여자 피겨 싱글 올림픽 노 금메달’이었다.

1908년 런던올림픽부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까지 여자 피겨 싱글에서만 모두 23개의 금메달이 배출됐는데, 미국이 7번으로 가장 많았다. 노르웨이와 동독이 각각 3번, 영국과 오스트리아가 2번, 그리고 한국·일본·스웨덴·네덜란드·우크라이나·캐나다가 각각 1개의 금메달을 가져갔다. 러시아는 아이스댄싱, 페어, 남자 싱글에서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가장 많이 배출했지만, 유독 여자 싱글에서만 번번이 금메달 획득에 실패해 자국에서 개최되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을 터닝 포인트로 잡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당시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의 소트니코바는 224.59점으로 올림픽 2연패에 도전했던 김연아(219.11점)를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러시아의 올림픽 사상 피겨 여자 싱글 첫 금메달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해외 언론은 심판들이 개최국인 러시아 선수에게 지나치게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며 ‘편파 판정’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 당시 심판진 구성이 이미 소트니코바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뤄져 있었다. 모두 9명 중 4명이 전 소비에트연방공화국 구성체였던 러시아·우크라이나·에스토니아·슬로바키아 출신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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