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신 승리와 견강부회, 그리고 맥베스
  •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04 18:00
  • 호수 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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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쉰(魯迅)은 20세기 초에 활약한 현대 중국 문학의 거성이다. 골초였던 그는 결국 50대 중반에 결핵·천식 등 폐질환으로 세상을 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아큐정전(阿Q正傳)》일 것이다. 1921년 말부터 이듬해 2월까지 베이징의 한 신문에 연재된 이 중편소설은 9개의 장으로 되어 있으며, 이름도 잘 모를 최하층 농민인 ‘아큐’라는 사람의 전기 형식으로 쓰였다. 아큐는 힘 있는 자에게는 비굴하게 얻어맞고 모욕을 당하지만 자기보다 약한 자는 괴롭히는 하류인간이다. 하지만 그는 구타, 모욕, 무시를 당하는 순간에도 모멸감을 느끼기는커녕 마음속에서 모든 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자기합리화’해 이 상황을 정신적으로 모면하는 ‘정신 승리법’을 가지고 있었다. 도박에서 딴 은화 무더기를 도둑맞은 후 그는 자책하며 자기 뺨을 때린 순간에도 때리는 당사자가 자기임을 의식해 ‘흡족해하며 승리감에 젖어 자리에 누울’ 정도였다.

#2: 사자성어 견강부회(牽强附會)는 본딧말이 견합부회(牽合附會)라 한다. 12세기경 송나라의 역사가 정초(鄭樵)가 지은 《통지총서(通志總序)》라는 책에서 한나라의 유학자 동중서(董仲舒)가 일식 등 자연현상을 인간사의 길흉을 예측하는 데 ‘억지로 갖다 붙였다’고 비판하는 글 중에 나온 것이다. 사전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이라는 뜻으로 나온다.

#3: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는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다. 세 마녀와 야심이 가득 찬 부인의 충동질로 왕을 죽이고 왕이 된 맥베스는 자기가 죽인 사람들의 유령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이들 마녀를 다시 찾아간다. 이에 마녀들은 세 가지 예언을 들려준다. 첫 번째 예언은 그가 전 왕을 죽인 장소인 파이프 성의 영주 맥더프를 조심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 예언은 ‘여자가 낳은 자는 그를 해칠 수 없다’는 것이며, 세 번째 예언은 ‘버냄 숲이 그를 향해 다가오지 않는 한’ 그는 끄떡없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첫째 예언의 실현을 막기 위해 결행한 맥더프의 암살이 실패했지만 그는 ‘자신감’을 얻었다. 둘째·셋째 예언의 전제조건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맥더프의 휘하 반란군이 위장 목적으로 버냄 숲의 가지를 잘라 몸에 꽂고 쳐들어오자 셋째 예언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었다. 결국 맥더프와 맞서게 된 맥베스는 둘째 예언을 믿었건만 맥더프가 ‘제왕절개’로 태어난 것을 밝히면서 이 예언의 전제조건도 충족되며 죽음을 맞는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11월21일 오후 서울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3분기 가계소득 동향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11월21일 오후 서울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3분기 가계소득 동향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3분기 중 소득 최하위 20% 층의 소득이 1년 전보다 4.3% 늘어났다는 통계청 발표가 나오자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의 정책 효과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하위 20%가 일해서 번 근로소득은 7분기 연속 감소했지만 정부 보조금 등이 24%나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잇따랐다. 대통령은 취임 이후 경제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여러 번 해 왔다. “분명하게 나타난다” “확실히 좋아진다” “자신 있다” “장담한다”는 물론 “최저임금 긍정 효과 90%” 등 대다수 이코노미스트들의 시각과는 많이 다른 발언들이다. 

이번에도 대통령 발언 보도 기사의 댓글에는 ‘정신 승리’ ‘견강부회’라는 말들이 많이 보인다. 알고도 보고 싶은 쪽으로 ‘마음을 먹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강변한다는 말이다. 필자의 뇌리에는 세 번째 가능성도 떠오른다. 맥베스를 둘러싼 세 마녀처럼 대통령을 둘러싼 경제참모들이 사실을 왜곡하거나 축소해 보고하는 경우다. 만약 위의 어느 경우라도 사실이라면 내년도 경제에 대한 우려가 앞선다. 모두 올바른 현실 인식과 대응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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