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전략까지 손 뻗은 곳, ‘엘리엇’ 만이 아니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12.04 10:00
  • 호수 157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노린 글로벌 기업들…소비자 접근 방법 변화까지 기업에 요구

전자상거래 업체 이베이가 티켓 판매 사업부문인 스텁허브를 스위스 기업 비아고고에 매각한다고 11월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먼저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이베이의 스토리를 짚을 필요가 있다. 지난 1월 엘리엇은 이베이 주식 4%를 확보했다고 밝힌 뒤 이베이 경영진에게 부진한 경영전략의 전반적인 수정을 요구해 왔다. 엘리엇은 공개서한을 통해 “경영진의 실수와 불분명한 목표의식이 회사 가치를 훼손시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핵심 사업에 역량을 집중시켜 수익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자회사 매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했고, 이를 따르면 2020년 말까지 주식 가치를 주 당 55~63달러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베이가 전자상거래 부문에서 세계 최대 업체인 아마존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본업’에 집중하지 않아 시장 주도권과 점유율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 엘리엇 측의 분석이었다. 엘리엇의 요구 조건은 세 가지였다. 스텁허브와 유휴자산 매각, 이커머스 비즈니스 경쟁력 강화, 방만한 조직구조 개편과 비용 절감을 통한 효율성 증대 등이다. 이에 대해 이베이는 전략적 포트폴리오 검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9월, 데빈 웨니그 이베이 최고경영자(CEO)가 사임했다. 엘리엇 측 인사가 이베이 이사회에 합류한 이후다. WSJ는 웨니그의 사임 이유 중 일부가 스텁허브 매각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당시 웨니그는 “최근 몇 주 사이에 내가 새 이사회와 의견이 다르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런 일이 생길 때면 모두를 위해 페이지를 넘기는 게 최선”이라고 트위터에 밝힌 바 있다. 이베이의 임시 CEO를 맡고 있는 스콧 쉥켈은 성명을 통해 “지난 몇 달간 현재 전략과 포트폴리오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해 왔다”면서 “이것(스텁허브 매각)이 이베이와 스텁허브를 위한 최상의 길이었다”고 말했다.

ⓒ 일러스트 정찬동
ⓒ 일러스트 정찬동

사업 매각에도 관여…반대하던 CEO 사임하기도

대량 주식 매수를 통해 특정 기업의 주요 주주 지위를 확보한 후, 적극적인 경영 관여를 통해 기업 가치 증대를 추구하는 투자자를 행동주의 투자자라고 한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제동을 걸고, 2018년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무산시키면서 국내에 알려진 엘리엇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자나 파트너스, 트라이언 펀드 매니지먼트, 밸류액트 캐피털 매니지먼트와 빌 애크먼, 칼 아이칸 등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있다.

위에 언급한 이베이의 사례처럼,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기업의 경영 방식에 개입하는 것은 더 이상 생소한 일이 아니게 됐다. 미국에서 활발하게 전개됐던 주주행동주의가 전 세계에 퍼져나가면서 CEO가 교체되고, 이사회가 재편성되며, 기업의 지배구조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기업 분할이나 강도 높은 구조조정, 경영진 교체, 자사주 매입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면, 최근에는 기업의 경영전략에 깊이 관여하면서 적극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기업 운영의 효율성 증대 측면에 집중하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최근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활동사례와 시사점’ 보고서는 트라이언 펀드가 글로벌 기업인 P&G와 GE 이사회 의석을 확보한 것을 행동주의 투자자가 기업 운영에 개입한 대표 사례로 든다. 지난해 트라이언 펀드는 P&G와 위임장 대결을 벌이면서 “P&G가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밀레니얼 소비자들의 요구에 대응하고, 규모는 작더라도 목적이 있는 신규 브랜드를 육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P&G의 경우 수년 간 1~2%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었으나, 2014년 이후 수익성이 낮은 브랜드들을 100개 이상 매각하면서 몸집이 줄어든 상황이었다. 트라이언 펀드는 P&G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면서 이사회 의석 확보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고 결국 이사회 진입에 성공했다.

 

기업의 근본적인 변화 촉구

트라이언 펀드는 2015년 미국 최대 화학기업 듀폰을 공격하기도 했다. 칼 아이칸과 함께 대표적인 기업 사냥꾼으로 불렸던 넬슨 펠츠 트라이언 펀드 회장은 경영 효율성을 높여 주주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듀폰을 농업, 생명과학, 화학, 소재 등 여러 사업부로 쪼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듀폰은 당시 트라이언 펀드와의 위임장 대결에서 승리했고, 회사 측이 선임한 등기 이사를 모두 유지했다.

주주들이 쿨몬 듀폰 회장을 지지한 배경으로 ‘양호한 실적’이 거론되면서, WSJ는 “행동주의 투자자들로부터 회사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견고한 실적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5개월 후 쿨몬 회장은 주가 하락 등을 이유로 사퇴했고, 듀폰은 2017년 다우케미칼과 합병해 다우듀폰이 되면서 세계 1위의 화학회사가 됐다. 합병 후 다우듀폰은 트라이언 펀드가 조언했던 것처럼 농업, 재료과학, 특수화학제품 등 세 개 분야 독립회사로 분리됐다.

2013년 밸류액트 캐피털 매니지먼트가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 마이크로소프트의 이사회 의석을 확보하는 과정에서도 기업 경영 전반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밸류액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리테일 소비자 중심적인 기업이 아닌, 기업용 소프트웨어 및 비즈니스 서비스 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주문했다. MS는 밸류액트의 압박에 밀려 이들에게 이사 자리를 내줬다. 밸류액트가 매집한 MS 지분은 0.8%였다.

자나 파트너스는 2014년 미국 최대 약국 체인점인 월그린을 압박해 이사회 의석 2개를 확보했다. 자나 파트너스가 보유한 지분은 1.2%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자나 파트너스는 월그린의 기업 경영 변화를 이끌어냈다. 2018년 GE가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30개 최고 우량기업들의 주가를 평균해 산출하는 지수인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 구성 종목에서 퇴출되면서 월그린이 그 자리에 새롭게 편입됐고, 미국을 대표하는 주요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박종석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산업 내 경쟁 그룹과 비교해 저성과가 두드러지는 기업, 주주 이익 관점에서 다른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기업들에 관심을 가지며 공격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아무 문제가 없는데 기업이 행동주의 투자자의 공격을 받는 것은 아니며, 과도한 현금 흐름, 낮은 배당 성향, 비즈니스 모델의 주요 변화가 예상되는 사업 등이 포착되는 경우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타겟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행동주의 투자자 활동, 아시아에서 두드러지게 증가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투자 활동 사례는 최근 급속히 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2016년 행동주의 투자 사례가 280회로, 2010년 대비 2.5배 이상 증가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LG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8년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활동비용은 450억 달러 규모를 뛰어넘었다. 이는 2016년의 2배가 넘는 규모다. 타깃 역시 점점 더 덩치가 큰 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맥킨지 분석 결과, 행동주의 투자자의 공격을 받은 기업의 평균 시가총액은 2010년 250억 달러에서 2016년 460억 달러로 크게 늘었다.

북미에 쏠렸던 투자 활동은 이제 유럽을 지나 아시아 지역에서도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다. 2014년 《행동주의 투자전략》을 쓴 로널드 D. 오롤 마켓워치 기자는 “한 때 기업 상하 구조의 상에서 안락한 시간을 보내던 유럽 또는 아시아 기업의 임원들은 이제 투자자들로부터 나오는 회사 사업 전략에 대한 새롭고 어려운 질문들을 직면해야 한다”고 전망한 바 있다.

이는 현실이 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행동주의 투자자가 미국 이외 지역에서 발의한 안건 중 31%(106건)가 아시아 지역이었다. 2011년의 12%(10건)와 비교하면 3배에 달한다. 비중은 일본이 가장 높았으며 홍콩, 싱가포르, 중국, 인도, 한국 등도 안건 발의 비중이 높은 국가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이 행동주의 투자자에 대비해 기업 가치를 제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용진 맥킨지 한국사무소 시니어 파트너는 지난 7월 ‘더벨 M&A 포럼’에서 “기업들은 행동주의 투자자 활동에 대해 사전 점검과 사후적 대비에 나서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또 “미국 기업은 지난 10년 간 행동주의 펀드 방어를 위해 기업 가치 제고에 나섰다.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공격을 받기 전 수익 및 건전성을 확대하고 시나리오를 구성해 시뮬레이션을 시행하는 등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