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압승 불구, 여전히 먼 ‘홍콩의 봄’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9.12.03 10:00
  • 호수 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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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파, 구의원 선거 ‘싹쓸이 승리’...행정장관 직선제 관철은 사실상 요원해 보여

홍콩 크로스하버 터널이 11월27일 통행을 재개했다. 이 터널은 홍콩 시위대의 중심지였던 홍콩이공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홍콩 시위가 과격화된 이후 시위대에 의해 2주간 봉쇄돼 있었다. 크로스하버 터널의 정상화는 홍콩 시위가 비폭력-평화 시위로 변화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지난 24일 열린 구의원 선거에서 민주파가 압승을 거둔 데 따른 것이다. 홍콩 시민들은 선거라는 제도권 승리를 바탕으로 ‘홍콩의 봄’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시위대가 요구한 ‘행정장관(홍콩 행정수반) 직선제’는 전혀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간선제로 선출되는 행정장관은 제아무리 구의원 선거에서 홍콩 시민들이 민주파에 몰표를 주더라도 결국 ‘친중(親中)파’만이 당선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1월27일 저녁 8시30분경, 홍콩 도심 곳곳의 대형 쇼핑몰과 광장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기자가 홍콩 현지를 취재했던 18일에도 홍콩 도심 곳곳에 시위대가 모여들었고, 결국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폭력시위가 발생했다.(시사저널 11월25일자 “[홍콩의 눈물] 우리가 알던 홍콩은 이제 없다” 기사 참조)

11월20일 열린 ‘런치 위드 유(lunch with you)’ 시위에 참가한 직장인들이 5대 요구사항을 내걸고 행진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11월20일 열린 ‘런치 위드 유(lunch with you)’ 시위에 참가한 직장인들이 5대 요구사항을 내걸고 행진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당신과 함께 노래해요” 평화시위로 전환

그러나 그때와는 양상이 달랐다. 모여든 인파의 복장부터 차이를 보였다. 검은 옷과 검은 마스크 대신 일상복이었다. 보도블록을 깨거나 화염병을 만드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은 단지 노래를 부를 뿐이었다. ‘당신과 함께 노래해요(Sing with You)’ 행사가 열린 것이다. 이 행사의 성격은 주최 측이 밝힌 홍보 문구에서 정확히 알 수 있다. “공공기물을 파손하지 말고, 시위도 하지 마라. 우리는 단지 노래를 부를 것이다!(Do not vandalize, do not argue. We will only sing!)”

이와 같은 평화시위 분위기는 선거 직후에 확연히 나타난 변화다. 선거 다음 날인 11월25일의 경우 침사추이 분수대 광장에서는 민주파 당선자들과 시민들이 대거 모여 행사를 가졌는데, 이때도 노래 소리만 울려 퍼졌다. 금융가 등지에서는 ‘넥타이 부대’라고 불리는 직장인들이 참여하는 ‘함께 점심을!(Lunch with You!)’ 운동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홍콩이공대에 남아 있는 시위자를 지지하는 행사에서도 폭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찰 역시 달라졌다. 각종 행사장 인근에서 경찰을 찾아보기조차 힘들 뿐만 아니라, 과거 폭력진압에 대해 거세게 항의하는 시민들에게도 곤봉이나 최루 스프레이 대신 항변을 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배경에는 민주파의 구의원 선거 압승이 있다. 

11월24일 열린 구의원 선거 결과, 시위대의 주장에 찬성하는 민주파가 전체 452석 중 388석을 차지하며, 말 그대로 ‘싹쓸이’ 승리를 거뒀다. 친중파는 60석(중도파 4석)에 그쳤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단 한 번도 다수당 지위를 놓치지 않았던 친중파는 2015년 327석에 비해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투표율은 71.2%로, 지난 2015년의 47%를 훨씬 상회하는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선거혁명’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종석 홍콩 한인회 문화담당 이사는 “젊은 층을 필두로 한 시위대-민주파에게 새로운 동력이 생겼다”면서 “2014년 우산혁명 등 지금까지 여러 가지 반중 움직임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눈에 보이는 성과를 가져온 적은 없었다. 홍콩 시민들이 ‘뭉치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에는 가야 할 길이 너무나 멀고 험하다. 시위대-민주파가 결국 원하는 것은 행정장관 직선제다. 그러나 홍콩 정부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선거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사항(△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에 대해 “송환법 철회는 이미 받아들였으며, 이를 제외한 다른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정부의 입장을 이미 분명하게 설명했다”면서 시위대 요구 수용 가능성을 일축했다.

11월22일 오후 홍콩 침사추이 인근에 선거 벽보가 걸려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11월22일 오후 홍콩 침사추이 인근에 선거 벽보가 걸려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친중파만 당선될 수 있는 기형적 선거제도

민주파가 구의원을 장악했지만, 이 결과가 행정장관 선거에 미칠 가능성은 요원하다. 홍콩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행정장관’은 1200명의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로 선출된다. 2525명의 통일주체국민회의 선거인단에 의해 선출된 ‘체육관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1200명의 행정장관 선거인단은 입법회 의원(국회의원, 50%만 직선제), 구의회 의원,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대표, 38개 직능별 선거위원회에서 선출된 사람으로 구성된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직능대표인데, 대부분이 친중파다.

심지어 행정장관 입후보 역시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행정장관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행정장관 후보 추천위원회’에서 50%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추천위 역시 친중파가 장악하고 있다. 즉, 후보 추천위를 통해 친중파가 아닌 인물은 걸러지고, 겨우 후보에 오른다고 할지라도 중국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시위대-민주파는 계속 민주화 시위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선거 전인 11월21일 홍콩 현지에서 만난 한 시위자는 “구의원 선거를 치르기 위해 시위를 자제할 것이다. 그러나 선거 후에는 또다시 대규모 시위가 열릴 것”이라면서 “우리의 목표는 결국 홍콩의 민주화며, 이는 행정장관 직선제를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홍콩 시민들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시위대-민주파는 국제사회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월27일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는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에 서명했다. 홍콩 인권법은, 중국이 홍콩에 일정 수준의 자치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무역 등에서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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