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들 다 빠지면, 의장·대표는 누가 하나?”
  • 감명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19.12.02 14:00
  • 호수 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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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격전의 현장을 가다 - 중진 용퇴론] 좌불안석 중진들, 21대 총선 출마 명분 찾기 골머리

“호남 의원들께는 죄송하지만, 의정활동이 유권자들에게 굉장히 좋지 않은 평을 받고 있다. 과거에 (호남에서) 공천만 받으면 국회의원이 되고 거기서 엔조이하며 안주하는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20대 총선을 불과 한 달 보름여 남겨둔 2016년 2월25일, 광주를 방문한 민주당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당내 호남 지역구 의원들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지역정서에 안주해 온 기존 의원들을 공천하지 않겠다는 사실상의 선전포고였다.

당시 총선은 여당인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의 압승이 예상되고 있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였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 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결국 안 전 대표가 탈당해 신당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여기에 호남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졌다. 이미 박지원·주승용·장병완·유성엽 등 호남 중진 의원들이 국민의당으로 옮겨간 뒤였다. 얼마나 더 추가 탈당이 이어질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국 문 대표는 한나라당 비대위원,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지낸 김종인 전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위촉해 공천의 전권을 안기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당시 김 위원장의 권력은 무소불위였다. 김 위원장이 먼저 칼을 댄 곳은 당연히 당내 중진들과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 지역이었다. 그리고 대대적인 공천 물갈이가 이뤄졌다.

역대 총선마다 중진 용퇴론, 공천 물갈이론은 뜨거운 이슈로 부각됐다. 내년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의 정치권도 다르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20대 총선에서 최고 중진인 이해찬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키고, 호남 텃밭을 대부분 갈아엎으면서 큰 홍역을 치렀던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지역 텃밭 중진들이 별로 없어 상대적으로 쇄신 요구의 목소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반면 지난 총선 때 높은 지지율에 도취해 안주했던 한국당의 내부 사정은 지금 꽤나 시끄럽다. 

ⓒ 시사저널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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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 하기 위해” 총선 출마 명분도

일하지 않는 국회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일각에서는 대통령이나 지방단체장은 모두 연임이 제한되어 있는데, 왜 의원은 무제한이냐는 목소리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실제 검찰 출신으로 내년 총선 때 부산에서 한국당 공천을 노리고 있는 곽규택 변호사는 “지역 국회의원도 연임을 3선까지 제한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이뤄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나서 주목을 끌기도 했다. 지역과 상관없이 5선 이상 중진들은 이제 후진들을 위해 물러서야 한다는 국회 안팎의 주문도 강하게 제기된다.

20대 국회에서 현재 5선 이상 다선 의원은 16명이다. 이 가운데 불출마를 선언했거나 불출마가 예상되는 의원은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원혜영 의원, 한국당 김무성 전 대표 그리고 무소속인 문희상 국회의장 등 4명뿐이다. 현재 8선으로 최다선인 무소속 서청원 의원은 한국당으로 복귀할지, 우리공화당에 입당할지, 아니면 무소속으로 남을지 의견이 분분할 뿐 총선 도전을 포기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당선돼 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총리, 박준규 전 국회의장과 함께 헌정 사상 최다선(9선) 반열에 오르는 꿈을 꾸는 듯하다.

민주당 정세균 의원은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냈음에도 총선 출마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국회의장을 하기 위해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의원도 있다. 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10월23일 7선 도전 의사를 분명히 하며 “21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에 도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5선의 박병석 의원 역시 국회의장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해 6선 도전이 예상된다. 이종걸 의원과 추미애 의원도 불출마를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 다만 추 의원의 경우 12월2일 오전 현재 이미 새 법무부 장관으로 낙점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의원실 주변에서는 “당 대표까지 지냈는데, 총리가 아닌 장관은 좀 그렇지 않으냐”며 오히려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국회의장에 더 미련을 두는 듯한 분위기다.

“의원들 너무 자주 바뀌어 OECD 국가 중 톱” 

한국당의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은 좌불안석이다. 특히 영남 지역구 의원은 더 그렇다. 최근 단식투쟁으로 리더십을 회복한 황교안 대표가 곧 과감한 공천 칼날을 들이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내에서 쇄신론이 한창 들끓었던 11월14일 황 대표가 영남 지역 4선 이상 중진 의원들과 오찬을 마련했을 때, 중진 용퇴론에 대해 뭔가 방향이 나올 것으로 기대됐다. 당시 그 자리엔 김무성·정갑윤·이주영·유기준·조경태·주호영·김재경 의원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무성 의원을 제외한 모든 참석자들은 획일적인 중진 물갈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진들은 용퇴론에 맞서 저마다 출마 명분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영남 중진 용퇴론이 거론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울산 지역 5선 정갑윤 의원은 “전쟁에 장수와 부하가 필요하듯이 정치에는 신구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말로 출마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경기 지역 5선 심재철 의원과 영남 지역 4선 유기준, 3선 강석호 의원은 12월 원내대표  출마를 시사하고 있다. 총선을 불과 5개월여 남겨두고 있지만 오는 12월10일로 임기가 끝나는 나경원 원내대표 후임 경선을 총선 전에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유 의원은 한 유튜브 방송에서 “(쇄신)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 맞지만 국회의장이나 당 대표, 원내대표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주호영 의원 역시 “우리 한국 정당들은 늘 총선 때마다 거의 50%에 육박하는 초선들이 나왔다. 너무 자주 바뀌어 OECD 국가 중에선 단연 톱 수준”이라는 말로 에둘러 중진 퇴진론을 비판했다. 민주당에서 당적을 옮긴 조경태 의원 측은 민주당 소속으로 험지였던 부산에서 3선(17~19대)을 한 경력은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구 지역 초선 곽상도 의원이 조건부 불출마 선언을 했고, 경남 창원의 재선 김성찬 의원과 비례대표 초선 유민봉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당내에선 3~4선 이상 중진 의원들이 나서줘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런 점에서 최근 부산 지역 4선 김정훈 의원이 다시 주목받는다. 그는 당초 지난해 6·13 지방선거 참패 당시 불출마를 시사한 바 있었으나, 최근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주변에선 불출마 선언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전하고 있다. 

막말 논란 등 물의를 일으켰던 의원들이 공천에서 배제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음주 회의’에 이어 막말 논란을 일으켰던 김재원 의원과 역시 상임위 회의 진행 도중 막말 논란을 일으킨 여상규·이종구 의원 등이 해당된다. 이종구 의원 역시 한국당 텃밭으로 치부되는 서울 강남 지역구 3선 의원이다. 

민주당은 현재 호남 지역에서 3선 이상 중진으로는 이춘석 의원이 유일하다. 하지만 호남 지역이 지난 총선 때 녹색바람(국민의당)에 의해 초토화됐다는 점에서 공천 물갈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당내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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