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근하면 휴가 처리”…스타트업 ‘병역특례 부실 복무’ 실태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12.02 07:30
  • 호수 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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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진 병특 ‘몸값’ 탓에 복무 위반에도 ‘쉬쉬’…“개발업무 특성 고려해야” 반박도

국내 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A씨. 그는 미국 한 유명 대학에서 이공계 석사를 마치고 스타트업에 합류했다. A씨는 사내 AI(인공지능) 프로젝트를 총괄했다. A씨는 열정적으로 연구했고 때론 밤을 새웠다. 대신 다음 날 오전엔 쉬었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스타트업에선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가 이른바 ‘병특(병역특례)’으로 들어온 전문연구요원이라는 것. 병역법을 따르는 군인 신분으로 ‘하루 8시간 근무’를 지켜야 했다. 결국 직원 몇이 A씨가 ‘불법 특혜’를 누린다며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돌아온 인사 담당자의 답은 간결했다. “병특 모시기가 얼마나 힘든데, 눈 좀 감아줍시다.”

최근 스타트업 업계가 병역특례를 둘러싼 잡음으로 시끄럽다. 이른바 ‘병특’으로 불리는 대체복무자의 복무 관리가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시사저널이 지난 11월6일부터 26일까지 구글의 설문조사 시스템을 이용해 ‘병특 제도 악용 사례’ 제보를 받은 결과 50여 건(중복 포함)의 응답이 모였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만난 스타트업 각 사 대표 및 인사 담당자들은 대체복무자의 편법·탈법 행위가 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실토했다.

ⓒ 일러스트 김세중
ⓒ 일러스트 김세중

‘억대’ 연봉 받고, 출근은 ‘프리하게’

병역법상 대체복무 대상자는 전문연구요원, 산업기능요원, 예술체육요원, 승선근무예비역(선원), 공중보건의(의사) 등으로 나뉜다. 이들은 병역을 대체하는 대신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게 된다. 병특의 경우 하루 8시간을 근무해야 한다. 또 법인의 이사·감사·상무·전무 등 임원으로 겸직할 수 없으며, 일반 사무관리나 영업업무 등 다른 직무를 맡을 수 없다.

이 중 전문연구요원과 산업기능요원 등 대체복무 요원으로 뽑히면 중소·벤처기업이나 국공립 연구소에서 근무할 수 있다. 스타트업으로선 전문연구요원 1명의 합류가 ‘큰 재산’이다. 전문연구요원은 이공계 석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가 대상이다. 또 산업기능요원은 정보처리 분야 자격증 소지자 중 대학이나 관련 업계에 2년 이상 몸담은 사람이 지원할 수 있다. 즉 이들은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분야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재들이다. 최근 AI나 앱(App) 개발이 회사 서비스의 질을 좌우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관련 분야에서 실력이 보장된 병특의 ‘몸값’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있다.

어렵게 모셔온 인재니만큼, 스타트업에서 병특은 군대의 이등병과는 급이 다르다. 입사와 동시에 사내 핵심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기에 사실상 간부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회사가 병특자들의 편의를 과도하게 봐주는 과정에서, 이들의 복무 위반 행위를 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IT 스타트업 선두권에 있는 B사의 경우 전문연구요원인 ㅊ씨가 본부장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며 ‘자율 출퇴근제’로 일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제보 내용에 따르면 ㅊ씨는 프로그램 개발업무를 진두지휘하며, 출퇴근 시간을 임의대로 정했다. 명백한 병역법 위반이지만, 법망을 피해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출퇴근 기록이 회사 출입문 보안장비와 연동돼 자동으로 엑셀 파일로 저장됐는데, 문제가 될 만한 근무 기록을 인사팀이 직접 수정했다. 실제 익명을 요구한 B사 관계자 역시 이 같은 사실을 인정했다. 관계자는 “병무청이 엑셀 파일 등으로 근태를 감독하는데, 하루 8시간 근무를 충족하도록 기록을 조작했다. 결근의 경우 임의로 휴가 처리하는 식으로 문제를 숨겼다”고 귀띔했다.

이 외에 또 다른 유명 IT 스타트업인 C사의 경우 전문연구요원 ㄱ씨의 대표 겸직 사실을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C사는 이 같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회의 시간에 직원들에게 “대외적으로 대표님을 대표님이라 부르면 안 된다”고 지시했다는 게 제보의 내용이다. C사는 이 외에도 개발자로 편입된 산업기능요원에게 개발이 아닌 디자인 업무를 총괄하게 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이에 대해 C사 관계자는 “ㄱ씨가 (전문연구요원으로) 편입된 초반에는 회사 경영과 관련된 일 일부를 챙긴 사실이 있지만, 현재 다른 대표가 회사를 맡은 이후에는 경영에서 손을 뗀 상황”이라며 “(병특자의) 겸직은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왜 스타트업은 병특의 비위를 방관하는 것일까. 최근까지 유통 관련 스타트업 대표로 재직했던 최진명씨(가명)는 “기술인력 수요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병특자는 군대의 장군 같은 지위를 누리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AI나 딥러닝(기계학습) 분야에서 유능한 인력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며 “억대 연봉을 불러가며 데려온 전문연구요원의 경우 근무 태도 등을 회사가 나서서 지적하기 어렵다. 병특자들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최선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회사가 궂은일을 알아서 처리해 주는 게 현실”이라고 귀띔했다.

2년 전 석사 전문연구요원으로 대체복무를 마친 김화평씨(가명) 역시 “스타트업 특성상 임원이랄 게 따로 없고, 기술 노하우를 보유한 전문연구요원이 대기업의 임원 같은 지위를 누릴 수밖에 없다”며 “다만 병특자가 나서서 복무 규정을 위반하는 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회사에서 ‘그런 룰(rule)에 갇혀서 연구를 쉴 필요가 없다’며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 주곤 했다. 만약 불법행위가 걸려 전문연구요원이 아웃되기라도 하면 손해는 회사가 지기 때문에, 인사팀이 나서서 결근 사실 등을 숨겨줬다”고 말했다.

구혁채 과기정통부 미래인재정책국장이 11월20일 오후 세종시 과기정통부 기자실에서 ‘대체복무제도 개선’ 관련 사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구혁채 과기정통부 미래인재정책국장이 11월20일 오후 세종시 과기정통부 기자실에서 ‘대체복무제도 개선’ 관련 사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병무청 “감시에 한계”…정부 “병특 줄이겠다”

그러나 병특이 ‘법의 울타리’를 넘을 경우 받아야 할 처벌이 가볍지는 않다. 병특자가 만약 지각이나 조퇴, 외출을 모두 합해 8시간을 초과할 때마다 복무기간은 하루씩 연장된다. 지각이나 조퇴 등의 사유는 복무상황부에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 만약 의무복무 기간 중 통틀어 8일 이상 무단결근해 편입이 취소된 사람은 병역법 제14장 벌칙 제89조의 2항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또한 병특 편입 당시 해당 분야에 근무하지 않아 편입이 취소된 사람 역시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고용주가 정당한 사유 없이 병특자를 병역지정업체 해당 분야 외의 다른 분야에 근무하게 한 경우에는 병역법 제14장 벌칙 제96조에 따라 2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문제는 실제 그 법을 운용할 인력과 통합관리 시스템 모두 미비하다는 점이다. 불시 감사는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상시적으로 실시하기 어렵다는 게 병무청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탓에 명확한 증거를 내밀 수 있는 내부 고발이 이뤄지기 전에는 겸직 여부 등을 알아내기 어렵다. 출퇴근 기록의 경우 엑셀 파일과 현장의 CCTV 등을 일일이 대조해 보지 않는 이상, 근태 조작을 밝혀내기 어렵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병특자의 복무 관리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정부도 병역 대체복무제도를 손보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 11월21일 ‘병역 대체복무제도 개선계획’을 발표하며 전문연구요원의 복무시간 관리를 ‘하루 8시간’에서 ‘주 40시간’으로 바꾸기로 했다. 일반 기업의 근무시간과 동일하게 출퇴근 시간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부실·편법 복무 논란이 반복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개발자의 경우 심야연구나 장기 프로젝트 탓에 출퇴근이 유동적일 수 있다는 현실을 고려한 조처다.

전문연구요원 수는 줄이기로 했다. 고급 연구인력의 기업 수요를 고려해 박사 과정 전문연구요원(1000명)은 현행대로 유지하되 석사 전문연구요원만 현행 1500명에서 1200명으로 300명 줄인다는 방침이다. 산업기능요원 수는 현재 4000명에서 3200명으로 800명 감축한다. 구혁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미래인재정책국장은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국가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을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철저히 운영하겠다”며 “바뀌는 제도는 대학원 입학시기를 고려해 2023년 편입자부터 적용할 계획이며 선발 방식과 기관별 배정은 추후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작용은 일부, 전문연구요원 도입 취지 생각해야”

다만 스타트업 업계는 전문연구요원에 대한 여론의 반감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편입 규모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복무규정 위반 등의 부작용은 단속 강화나 재교육 등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전문연구요원의 풀(pool) 크기를 줄인다면 스타트업의 성장에 큰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가뜩이나 고급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타트업의 인력난이 더욱 심화하는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7월 ‘전문연구요원 축소 계획을 철회해 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게시자는 “젊은 인재들이 능력을 살려 3년간 이공계·산업계의 연구소에서 근무할 수 있다면, 현역 장병들이 2년간 국방력에 이바지하는 것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국가경쟁력을 강화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최근 다른 국가들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뛰어난 젊은 인재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젊은 인재들을 위한 병역특례 제도를 확대는커녕 축소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이 점점 가시화되어 가는 시대에 전문연구요원 병역특례 감축은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악화시킬뿐더러, 젊은 인재들의 해외 유출로 인한 국가 성장력 감소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글은 5890명의 동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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