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냄새에서 향기가 난다”…살인 즐긴 악마 중의 악마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03 07:30
  • 호수 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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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연쇄살인범 그 후] 14명 살해하고 구치소 수감 중 자살한 정남규

정남규는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성인 남성에게 끌려가 변태적인 성폭행을 당하면서 큰 충격을 받는다. 학교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동급생이나 선배 심지어 후배들한테까지 따돌림의 대상이 됐다. 여기에다 자취방 옆에 살던 아저씨는 정남규를 두 번이나 성폭행하는 등 성적 착취에 내몰리기도 했다.

군 복무 시절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임들에게 가혹행위와 구타를 겪었고, 또다시 성폭행을 당한다. 후임들에게도 무시당하면서 그의 자존감은 땅에 떨어졌다.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기초생활수급자로 힘겹게 살았다. 가난과 가정폭력, 이어지는 성폭행, 그리고 따돌림은 정남규를 반사회적 성향으로 만들었다. 그는 사회에 대한 복수심을 키우며 점점 괴물로 변해 갔다.

2006년 4월 현장검증을 위해 경찰서를 나서는 연쇄살인범 정남규 ⓒ 연합뉴스
2006년 4월 현장검증을 위해 경찰서를 나서는 연쇄살인범 정남규 ⓒ 연합뉴스

가정폭력·성폭행·따돌림 등 당하며 성장 

급기야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을 시작으로 범죄의 길에 들어섰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989년 4월 특수강도죄로 구속돼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1996년 6월에는 강도와 강간미수죄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했다. 이후 1999년 절도·강간(징역 2년), 2002년 자동차 절도(징역 10월) 등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그사이 그의 범죄는 진화를 거듭했다.

2004년 1월14일 저녁, 인천에 살던 정남규는 갑자기 살인 충동을 느낀다. 그는 무작정 집을 나와 버스를 두세 번 갈아탄 뒤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에서 내렸다. 처음에는 여성을 성폭행한 뒤 죽일 생각으로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하지만 겨울철인 데다 밤이어서 그런지 여성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때 두 명의 초등학생이 정씨의 눈에 들어왔다. 윤아무개군(13)과 임아무개군(12)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접근한 뒤 마을에서 2.5km쯤 떨어진 춘덕산 정상 부근으로 유인해 성추행한 후 살해했다.

부모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으나 좀처럼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실종 16일 만인 1월30일, 옷이 벗겨지고 손발이 묶인 아이들의 시신이 발견된다. 경찰 수사가 제자리를 맴도는 사이 임군의 큰삼촌은 “조카가 있는 나라로 간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년5개월 뒤 붙잡힌 정남규는 검찰에서 “그냥 죽이고 싶어 죽였다”고 진술했다.

서울 서남부 지역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정남규가 2006년 4월28일 ‘3자매 피습 사건’ 장소인 관악구 봉천동 단독주택에서 현장검증을 마치고 돌아가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서남부 지역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정남규가 2006년 4월28일 ‘3자매 피습 사건’ 장소인 관악구 봉천동 단독주택에서 현장검증을 마치고 돌아가고 있다. ⓒ 연합뉴스

패턴 바꿔가며 범행 지속

이 사건을 계기로 정남규의 범행 패턴이 완전히 바뀐다. 살인할 때의 쾌감을 맛본 그는 여기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2004년 1월30일 새벽, 정씨는 서울 구로구 구로동의 한 빌라에 침입해 원아무개씨(여·44)를 흉기로 수차례 찔렀다. 원씨는 중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2월6일 저녁, 정남규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길에서 전아무개씨(여·25)를 흉기로 살해했다. 동대문 의류상가에서 일하던 전씨는 골목길을 지나다 복부와 가슴을 난자당해 사망했다.

경찰 수사는 무기력했다. 범인의 윤곽조차 찾아내지 못하고 헛다리만 짚었다. 약 5개월 후 검거된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내가 이문동 사건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경찰은 유씨의 범행으로 확신하고 현장검증까지 벌인 후 검찰에 송치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유씨는 “진범은 지금 어디에선가 웃고 있을 것”이라며 기존의 진술을 번복했다. 법원도 유씨가 범인이 아니라며 기각했다. 이 사건은 미궁에 빠져 있다가 정남규가 검거되면서 그의 범행으로 밝혀졌다. 정씨는 유영철의 현장검증을 보면서 ‘내가 한 건데 왜 지(유영철)가 나서서 했다고 하지’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같은 해 2월10일 새벽, 정남규는 군포시 산본동 주택가 골목길을 배회하며 범행 대상을 찾았다. 이때 우유배달원 손아무개씨(28)가 보이자 뒤를 따라가 흉기를 휘둘렀다. 손씨는 가슴과 목 부위 등 12곳을 찔려 살해됐다. 3일 후 정씨는 영등포구 신길동에 나타났다. 2월13일 오전 6시쯤, 골목길을 지나던 서아무개씨(여·30)를 노리고 흉기를 휘둘렀다. 서씨는 급소를 피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2월25일 오전 1시쯤에는 같은 지역 다세대주택 현관에서 홍아무개씨(여·33)를 마구 찔러 상해를 입혔다. 다음 날에도 정씨는 범행에 나섰다. 이번에는 관악구 신림동으로 무대를 옮겨 할머니를 배웅하고 돌아오던 여고생을 살해하려고 10여 차례 흉기로 찔렀으나 미수에 그쳤다.

4월8일에는 다시 신길동에서 범행 대상을 찾았고 귀가 중이던 정아무개씨(여·25)에게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4월18일에는 노상에서 범행 대상을 찾는 대신 금천구 시흥3동에 있는 빌라에 침입해 잠자고 있던 모자를 둔기로 내리쳐 중상을 입혔다. 살인에 중독된 정남규는 인정사정을 두지 않았다. 거리를 헤매다 여성이 눈에 보이면 다짜고짜 흉기를 휘둘렀다. 4월22일 정씨는 서울 구로구 고척동 주택가를 지나다 집 현관문 앞에 있던 여대생을 발견하고 흉기로 무참히 찔러 살해했다.

5월9일에는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귀가하던 여대생을 발견하고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비슷한 수법의 살인·살인미수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지역 주민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특히 범행이 비 오는 목요일 밤에 집중되자 언론에는 ‘비 오는 목요일 밤의 괴담’이나 ‘서울판 살인의 추억’으로 회자됐다. 연이어 사건이 보도되자 정남규는 긴장했다. 그는 살인행각을 잠시 멈추고 1년 정도 휴식기에 들어간다. 그사이 범행 패턴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노상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하는 대신 집 안으로 침입하고, 살해 도구도 흉기에서 둔기로 바꿨다.

2005년 4월18일, 살인 충동을 억눌러 오던 정남규가 다시 움직였다. 이날 새벽 금천구 시흥3동의 한 빌라에 침입해 잠자고 있던 모자를 둔기로 내려쳐 중상을 입혔다. 5월30일 새벽에는 군포시 산본동에서 침입할 주택을 찾다가 우유배달원인 김아무개씨(여·41)를 발견하자 이전의 수법처럼 흉기로 살해했다. 

6월4일 새벽 2시55분쯤, 정씨는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의 한 주택에 침입해 잠자고 있던 김아무개씨(여·36)를 둔기로 내리쳐 중상을 입혔다. 10월9일에는 장애인 주거시설에 침입해 홍아무개씨(여·39) 등 2명을 둔기로 내리쳐 중상을 입힌 후 도주했다. 10월19일에는 봉천10동 주택에서 변아무개씨(여·26)를 둔기로 내려쳐 살해했다. 또 집 안에 불을 질러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2006년에도 그의 살인행각은 멈추지 않았다. 1월18일 새벽, 정씨는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송아무개씨(48) 주택에 침입했다. 방 안에 있던 둘째 딸(17)을 둔기로 내리친 후 목 졸라 살해한 것도 모자라 불을 질러 첫째 딸(21)과 막내아들(12)까지 살해했다. 송씨는 한순간에 3명의 자녀가 몰살당했다. 3월27일 새벽, 정남규는 봉천8동 2층 단독주택에 들어가 잠자고 있던 김아무개씨(여·26) 등 세 자매를 둔기로 마구 내리쳐 2명을 살해했다. 한 명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나중에 사망했다.

 

마지막 살인은 바로 자신

정씨의 마지막 범행은 2006년 4월22일 일어났다. 그는 이날 새벽,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주택에 침입했다. 작은 방의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김아무개씨(24)가 잠자고 있었다. 정씨는 안으로 들어가 훔칠 물건이 있는지 뒤지기 시작했다. 김씨가 몸을 뒤척이자 정씨는 그의 머리를 둔기로 내리쳤다. 이때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킨 김씨는 정남규에 맞서 격투를 벌였다. 옆방에서 자고 있던 김씨의 아버지까지 합세하면서 정씨는 제압됐다. 정씨가 훔친 건 고작 현금 2만4000원과 1만원 문화상품권이었다. 경찰은 정씨를 단순 강도로 보고 방심했다. 수갑을 채워 순찰차 뒷자리에 태웠으나 그대로 달아났다가 2시간 만에 주민의 신고로 다시 검거되는 해프닝을 벌였다. 이렇게 해서 정남규의 살인극도 막을 내렸다.

그는 2004년 1월14일부터 2006년 4월22일까지 2년3개월간 서울·경기 지역에서 무려 14명을 살해하고 19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정씨는 강도살인, 방화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사형이 선고됐다. 항소심 결심공판에서는 검사석으로 돌진하는 등 돌출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구치소 독방 수감 중에도 살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괴로워했다. 그리고 2009년 11월21일 목을 매 자살을 기도했고,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그의 마지막 살인은 바로 자신이었던 것이다. 

 

죽을 때까지 살인에 집착

“더 이상 살인 못 할까봐 조바심”

정남규는 잘못된 사회구조와 폭력이 만들어낸 악마 중의 악마였다. 그는 유영철과 강호순처럼 살인에 중독돼 있었다. 살인을 통해 희열과 성적 만족감을 느낀 전형적인 ‘쾌락 살인마’다.

정씨는 경찰에 검거된 후 사형이 확정될 때까지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반성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현장검증 내내 고개를 빳빳이 들었으며, 호송차 안에서는 카메라를 향해 웃기까지 했다. 오히려 살인을 더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계속 사람을 죽이지 못해서 괴로워했다.

정씨는 수사기관의 조사 과정에서 “피 냄새를 맡고 싶다. 피 냄새에서는 향기가 난다”고 말했으며, “천 명을 죽여야 하는데 채우지 못하고 잡힌 게 억울하다”며 살인에 집착하는 모습도 보였다. 법정에서는 “더 이상 살인을 못 할까봐 조바심이 난다”고 토로했다.

그는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보다는 과시하듯 내세웠다. 유영철을 라이벌로 의식해 “내가 유영철보다 한 수 위다. 내가 죽인 것을 유영철이 자기가 죽인 것처럼 떠들어댔다”고 말하는 등 경쟁심을 보이기도 했다.

정남규는 또 철저하게 완전범죄를 노렸다. 인천에 거주지를 두고 있으면서 범행은 서울 서남부 지역을 택했다.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폐쇄회로(CC)TV가 없는 곳을 노렸다. 그러다 보니 보안이 취약하고 안전시설이 부족한 사회적 약자들이 희생됐다. 범행시간대는 대부분 새벽 2시에서 새벽 5시 사이로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였다.

범행 당시에는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체육복과 운동화로 복장을 최소화했다.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마스크와 안경을 썼다. 신발 밑창을 도려내서 족적이 나오지 않게 했고, 장갑을 착용했다.

범행을 위해 매일 달리기 연습을 하면서 체력을 단련했다. 과학수사 서적을 탐독하고, 사건과 범죄를 다룬 외국 드라마를 시청하며 범죄를 깊이 연구했다. 자신의 범죄가 나온 언론기사를 스크랩하며 수사 상황도 꼼꼼하게 체크하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 ‘살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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