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에 약한 벤투 감독, 월드컵까지 갈 수 있을까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01 10:00
  • 호수 157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벤투 축구, 고집과 소신 사이…제2의 슈틸리케냐, 제2의 히딩크냐

2019년 벤투호는 A매치 15경기에서 9승4무2패를 기록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축구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2018년 후반기에 기록한 3승4무의 기세를 이어갔다. 숫자만 보면 근사하다. 여기엔 지난 3월 남미의 강호 콜롬비아를 상대로 거둔 승리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치른 평가전이었다. 한국을 떠나 치른 경기, 특히 친선전이 아닌 실전에서의 내용과 성과는 엇갈린다.

벤투 감독에 대한 본격적인 평가를 실시하는 무대였던 1월 아시안컵에서는 4승1패를 기록했다. 조별리그에서는 필리핀·키르기스스탄에 1대0 신승을 거두며 고전했다. 주장 손흥민이 합류한 중국전에서 2대0으로 승리하며 한숨 돌렸지만, 16강전에서 바레인에 연장 접전 끝에 2대1로 이겨 불안감을 줬다. 결국 8강전에서 카타르에게 0대1로 패하며 탈락했다. 지난 2004년 대회 이후 4강 이상의 성적을 꾸준히 기록했던 한국은 일찍 귀국 짐을 싸야 했다.

두 번째 평가 무대는 지난 9월부터 시작한 월드컵 2차 예선인데 흐름이 원만하지 않다. 레바논·북한·투르크메니스탄·스리랑카와 함께 H조에 속한 한국은 예선 일정의 절반인 4경기를 마친 현재 2승2무를 기록 중이다. 초반에는 투르크메니스탄 원정에서 2대0으로 승리하고, 스리랑카를 상대로 홈에서 8대0 대승을 거두며 무난한 출발을 했다. 그런데 10월 열린 북한과의 3차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북한·레바논 경기 모두 0대0 무승부로 끝났다. 2경기 모두 내용상 답답한 부분이 많았다. 아시아 2차 예선에서 2경기 연속 득점도 기록하지 못하고 비긴 것은 실망스러운 대목이다. 확실하게 선두로 치고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날리고 말았다.

11월11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파울루 벤투 감독이 UAE 아부다비의 크리켓 스타디움 훈련장에서 레바논과의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에 대비한 첫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11월11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파울루 벤투 감독이 UAE 아부다비의 크리켓 스타디움 훈련장에서 레바논과의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에 대비한 첫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복붙’ 전술과 라인업, 고집일까 소신일까

벤투 감독은 주요 경기마다 플랜A를 가동한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 가장 높은 완성도의 전술과 라인업으로 나서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상대가 고려할 변수가 적어 예상하기 쉽게 빤한 플랜A라면 문제가 된다. 상대팀의 분석과 대응도 그만큼 쉽기 때문이다. 벤투 감독의 플랜A에 ‘복붙(복사해서 붙이기)’이라는 표현이 달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상대 스타일, 원정 경기장 환경 등에 관계없이 일반 팬이 예상 가능한 라인업이 그대로 등장한다.

거칠고 힘 있는 축구를 하는 북한·레바논을 상대로 빤한 축구만 구사하다 90분을 보냈다. 벤투 감독은 후방에서 과정을 거치는 빌드업 축구를 고집했지만, 상대는 터프한 플레이로 차단하거나 우리의 실수를 역이용해 직선적인 축구로 기회를 넘봤다. 레바논전의 경우 잔디 상태가 원활하지 않았음에도 후방에서 패스를 주고받다 끊겨서 위기를 자초하는 모습이 나왔다. 상대성과 여러 변수를 감안한 대응이 유연하지 않았다.

부임 1년이 훌쩍 지났지만 플랜A는 가닥만 잡혔을 뿐, 완성도는 제자리걸음이라는 평가다. 아시안컵 실패를 통해 한국을 상대로 밀집수비를 들고나오는 아시아권 축구의 특성을 깰 수 있는 대안 제시가 필수적이었지만, 월드컵 2차 예선부터 고전하며 답답하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그럼에도 벤투 감독은 자신의 방향성이 옳다며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선수 기용도 일찌감치 고착화되는 분위기다. 황인범(밴쿠버)의 활용이 대표적이다. 공수에 걸쳐 단점이 적고 활동량도 많은 황인범은 감독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상황에 맞게, 선수 개인 컨디션을 고려해 기용할 필요도 있다는 지적이다. 레바논전에 선발 출전했던 황인범은 실수를 연발하다가 전반 45분 만에 교체돼 나왔다. 경기력 부진은 기본적으로 선수의 책임이지만, 그가 속한 북미 메이저리그사커(MLS)가 시즌이 끝나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았음에도 맹목적 신뢰만 보낸 벤투 감독의 책임이 크다. 반면 K리그에서 절정의 기량을 자랑하며 소속팀을 우승 경쟁으로 이끈 김보경(울산)과 문선민(전북)은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다.

공격에서는 손흥민(토트넘), 황의조(보르도), 황희찬(잘츠부르크), 이재성(홀슈타인 킬) 등 유럽파의 침묵이 고민이다. 소속팀에서는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지만, 대표팀에만 오면 평범한 활약에 그친다. 월드클래스 반열에 오른 손흥민이 대표팀에 와서 골이나 도움보다 수비 가담에 애쓰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황의조는 2차 예선 들어 상대 집중 견제에 무득점이다. 판다이크, 쿨리발리 등 유럽 최고 수비수들을 무너트린 황희찬은 그런 위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

 

“벤투, 실리를 취해야 철학도 존중받는다”

2002년 히딩크 감독의 사례를 언급하며 벤투 감독에게 믿음을 보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감독의 철학과 소신이 실제 경기력으로 발휘되기까지 일정 시간이 필요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히딩크 감독도 부임 후 1년 넘게 좌충우돌하다가 월드컵 직전 그의 계획대로 경기력이 발휘되며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일궜다. 벤투 감독이 부임 후 아시아권에는 고전하지만 강팀을 상대로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다는 게 그런 주장의 근거다.

칠레·우루과이·콜롬비아를 상대로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벤투 감독은 레바논전이 끝난 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세계 최강 중 하나인 브라질과 친선전을 가졌다. 0대3으로 패했지만 손흥민을 중심으로 대등한 공격을 주고받아 내용은 괜찮았다는 평가가 주였다. 벤투 감독과 선수들도 “선전한 내용을 생각하면 3대0까지 벌어질 경기는 아니었다”며 위안을 삼았다.

그러나 냉정한 시각이 필요하다. 현재 타이밍은 친선전의 좋은 내용과 결과가 최우선이 아니다. 카타르월드컵으로 향하는 관문을 통과하는 게 우선이다. FIFA 랭킹에서도 친선전과 아시안컵, 월드컵 예선 같은 실전의 평가 기준을 달리한다. 한국은 최근 두 차례 월드컵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으며 예선 도중에 감독을 교체했다. 그로 인한 기회비용 상실은 대표팀 운영에 혼란을 가져왔고, 결국 월드컵 본선에서의 실패로 직결됐다.

벤투 감독 선임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이번에는 월드컵까지 4년간 감독 교체 없이 일관성을 보여주는 게 목표라고 했다. 문제는 지금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월드컵 최종 예선은 물론 2차 예선 단계에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감독 선임과 평가의 책임자인 김판곤 전력강화위원장이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벤투 감독에 대한 신뢰를 바탕에 깔되 그의 선택이 실리와 거리가 멀다면 냉정한 평가와 조언으로 궤도 수정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러시아월드컵 당시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울리 슈틸리케 감독에게 맹목적 신뢰를 보내다 위기를 맞았던 사례를 되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스포츠는 결과론이다. 성과를 통해 과정의 당위성과 의미를 평가받는다. 벤투 감독의 철학과 소신도 실리를 얻어 낼 때 존중받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부쩍 강조되는 대목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