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원 명함 장수’가 전시 업계에 꽂은 성공 깃발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1 14:00
  • 호수 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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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기업 혁신리더] 정강선 피앤 대표 “해외 전시 시장, 韓 기업엔 블루오션”

지난 6월 정강선 피앤 대표이사(51)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대표님 우리가 됐습니다. 1등입니다.” 발신인은 ‘2020 두바이엑스포 베트남관 전시설치권’을 따내기 위해 파견 나가 있던 엄아무개 과장. 휴대폰을 쥔 정 대표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피앤은 그렇게 우리나라 전시·디자인 업계 최초로 등록 엑스포(5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국제 공인 종합박람회) 해외관 전시·운영을 맡은 업체가 됐다. 정 대표가 회사를 운영한 지 22년 만의 일이다.

길어지는 경기 불황 탓에 대기업마저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시대. 한 번의 위기가 폐업으로 직결되는 중소·벤처기업 업계에선 ‘생존만 해도 성공한 한 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피앤은 이 기간 생존이 아닌 성장을 해냈다. 12월2일 서울 금천구 피앤 사무실에서 만난 정 대표는 “국내 전시 시장이 아닌 해외 전시 시장으로 눈을 돌리니 ‘블루오션’이 보이더라”면서 그의 창업 성공기를 들려줬다.

피앤은 조형물 및 전시모형 등을 제조하는 전시·디자인 전문업체다. 올해 기준 국내 전시·디자인 부문 수주 1위를 달리고 있다. 돋보이는 건 성장세다. 2017년 200억원가량 되던 피앤의 매출은 지난해 300억원으로 훌쩍 뛰더니 올해는 400억원가량으로 불었다. 매출로 잡히지 않은 수주잔고까지 고려하면 실적 상승세가 가파르다. 회사 장부 속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지만, 정 대표는 ‘대박’이란 칭찬엔 고개를 젓는다. 그가 친 ‘홈런’ 뒤에 수많은 ‘파울볼’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 시사저널 최준필
ⓒ 시사저널 최준필

‘안될 때’는 없다…IMF 때 오히려 창업

정 대표의 이력은 특이하다. 흔히 말하는 태생부터 ‘금수저’인 최고경영자(CEO)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체육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태권도 선수 출신이었고 동생은 레슬링을 했다. 자연스럽게 정 대표 역시 체육인의 길을 걷는 듯했다. 실제 한 대학 체육학과에 수석 입학했다. 그러나 군 전역 후 그의 길이 살짝 틀어진다. 한 지방 종합일간지 공채 기자에 합격한 것이다. 이후 체육부 기자로 신바람 나게 열심히 일했지만, 그의 발목을 잡은 건 생활고였다. 지방지 기자의 넉넉지 못한 월급봉투 앞에 그는 사표를 던지고 창업에 도전한다.

그러나 창업을 결심한 때가 하필이면 1997년 12월, 시기가 좋지 않았다. 이른바 ‘IMF 사태’가 한국을 덮쳤다. 서민들은 지갑을 닫았고 대기업도 부도를 맞았다. 그러나 그는 불황 속 기회를 엿봤다. 그가 도전장을 내민 분야는 시각디자인 업계였다. 경기와 상관없이 발로 뛰면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분야라 믿었다. 결심이 서자 거침이 없었다. 신용카드 3장의 한도를 꽉 채워 700만원 상당의 중고 매킨토시 컴퓨터 1대를 구입해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하루 종일 바깥을 돌아다니며 명함이나 전단지 등 주문을 받아오면, 고용한 디자이너 1명이 작업을 했다. 하지만 창업이 열정만으로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한 통에 8000원 하는 명함을 만들었다. 한 통 만들면 2000~3000원 정도 남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주문 후 취소하는 경우가 있었다. 명함은 다 만들어 놨는데 말이다. 지금 와선 추억이지만 그때는 명함 한 통에 눈물이 핑 돌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 대표는 계속 뛰었다. 결코 ‘한 방’을 노리지는 않았다. 농산물 박스를 디자인해 직접 1톤 트럭을 타고 납품했다. 그렇게 4년을 일하니 기회가 왔다. 전주시청에서 발행하는 소식지를 만들게 된 것이다. 납품액은 4억원, 창업 이래 최대 단일 매출이었다. 이때 기자 출신 ‘글쟁이’로서의 힘이 빛을 발했다. 지면 배열이나 메시지 구성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면서, 다른 지방자치단체들과도 소식지 발행 계약을 연이어 맺었다. 그렇게 회사가 커 나갔다. 직원은 20명까지 불었다. 다만 문제는 낮은 영업이익률. 고부가가치 사업이 절실했다. 2011년 상경해 서울에 숙소를 마련하고 일을 찾아 나섰다. 정 대표는 “서울에 올라오기 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며 방황을 했다”며 “그런데 이래서는 안 되겠더라. 서울에서 승부를 보자고 결심을 했다. 체육인 특유의 근성이 발동했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서울에 온 그는 지자체를 넘어 각종 기업과 단체 등을 찾아다니며 마케팅 제안을 했다. 현장을 돌며 쌓은 노하우 덕에, 발주처의 니즈(needs)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 덕에 ‘통 큰’ 계약을 연이어 따내자 수익률은 확연히 개선됐다. 최근 피앤은 25억원 이상의 단일 계약 실적만 30여 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국립체육박물관 전시시설 설계 및 제작 설치(사업비 100억원), 평창동계올림픽 상징조형 디자인 제작 및 설치(사업비 50억원) 등은 체육인 출신인 그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실적이다.

피앤이 연출한 평창동계올림픽 기념관 전시 모습 ⓒ 피앤
피앤이 연출한 평창동계올림픽 기념관 전시 모습 ⓒ 피앤

“해외 전시 무대, 한국 기업에 기회”

정 대표의 시선은 이제 국내가 아닌 해외를 향한다. 비단 해외 사업 수주를 위해서가 아니다. 국내 사업을 따내기 위해서라도, 눈은 국경 밖을 향해야 한다는 게 정 대표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1년 이상 근속한 모든 직원들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같은 세계 유명 전시시설로 출장을 보낸다. 꼭 일을 하러 가지 않아도 된다. 피앤은 휴가차 해외여행을 가는 직원에게도 1년에 100만원 한도 내에서 여행비를 지원해 준다. ‘사업계획서를 엉덩이로 쓰는 시대’는 지났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해외를 다니며 ‘보는 눈’이 생긴 직원들이 만든 제안서가 결국 ‘2020 두바이엑스포 베트남관 전시설치권’ 획득 같은 성과를 내게 한 비법이자 업계의 ‘작은 혁신’이 됐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국내 전시·디자인 업계 후배들과 해외에서 경쟁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우그룹 창업주인 김우중 회장의 저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인용했다. “처음 해외 사업 수주를 시도했을 때는 발주처가 어딘지도 몰라 통역을 대동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대사관을 찾아 도움을 청해야 했다. 쉽지는 않았다. 그런데 입찰 경쟁이 붙으면 일본 정도가 유일한 경쟁국이고, 스위스나 독일 등 유럽 업체들은 우리나라 업체와 경쟁이 안 되더라. 전시의 핵심인 디자인과 IT 모두 우리나라 기업들이 최선두에 있다. 후배들이 자신 있게 해외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면 한다. 우리 한국 말고 해외에서 붙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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