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소비자는 옛말...기업과 고객 한 몸 돼라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KB국민은행 경영자문역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2 16:00
  • 호수 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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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이케아·코카콜라·BMW 등 고객 아이디어 제품에 반영해 큰 효과

국내 최초의 웹 기반 포털사이트는 삼성SDS가 1996년 론칭한 유니텔이다. 1997년 개봉한 영화 《접속》에서 한석규와 전도연이 온라인으로 소통하던 장면이 바로 유니텔의 채팅방이다. 1년 뒤인 1997년 6월 SK텔레콤은 PC통신과 인터넷 서비스를 통합한 웹 기반 포털사이트 ‘넷츠고’를 오픈한다. 다음이 한메일이라는 웹메일 무료 서비스를 시작한 시기와 같다.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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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창작 비즈니스 모델 빠르게 확산

이처럼 PC통신에서 월드와이드웹으로 패러다임이 넘어가던 시절, 오픈을 앞두고 있던 ‘넷츠고’의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다. 기존 PC통신이나 경쟁업체와 차별화할 수 있는 킬러 콘텐츠로 ‘소비자들의 구매 후기와 아이디어 제안’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싶은데 타당성이 있겠느냐는 의견개진이었다.

비즈니스 모델을 부연 설명하자면 이렇다. ①소비자들의 구매 후기와 혁신 아이디어를 수집한다. ②상품 카테고리별로 구분해 DB화한다. ③분류된 DB를 쇼핑몰에 B2B로 제공한다. 지금의 PaaS(Platform as a Service) 모델 형태다. ④수수료의 일부는 소비자에게 보상한다.

당시는 유통업체들이 고객의 불만을 활용하기보다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던 때라 일단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하지만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생겼다. 하나는 어떤 방법으로 구매 후기를 수집하느냐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과연 쇼핑몰 업체에서 상품에 대한 부정적인 후기까지 소화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왔다. 장시간 회의 끝에 결국 드롭(drop)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7년 정도가 지났다. 레고는 소비자들의 의견을 제품에 반영하기 위해 ‘레고 아이디어스’ 플랫폼을 오픈했다. 사용자의 풍부한 경험을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해 제품에 대한 업그레이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전략이다. 그 결과 레고는 고객 주도의 혁신기업으로 각인됐다.

이렇듯 고객의 니즈와 가치를 제품 생산과 서비스에 반영하는 공동창작(customer co-creation) 모델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고객이 단순히 소비자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기업과 동등한 위치에서 가치 창출 과정에 관여하려는 욕구가 커진 탓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다.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고, 바이럴 효과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구 브랜드인 미국의 디월트는 현재 고객이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도록 인사이트 커뮤니티(Insight Community)를 운영한다. 현재 8000여 명의 딜러와 4000여 명의 개인사용자들이 참여해 ‘시장의 소리’를 전하고 있다. 그 결과, 이 회사는 약 600만 달러의 연구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

음료 부문에서 40%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코카콜라. 2018년 현재 전 세계 매출액이 310억 달러에 달하지만 동일한 제품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느끼고 고객과의 공동창작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를 목표시장으로 두고 전통적인 콜라 음료에 대한 고객들의 의견 청취에 힘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 동남아 국가의 상당수 가게에 의뢰해 젊은이들의 음료 취향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이들이 어떤 디자인을 선호하는지 등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6년 초 뉴욕 맨해튼에 고객 체험을 강조한 디지털 놀이터 ‘삼성837’을 오픈했다. 신상품인 갤럭시 폴드와 갤럭시 노트10 플러스, 갤럭시 워치액티브, IoT(사물인터넷) 기능을 가진 가전 등이 이곳에 전시돼 있다.

공동창작을 넘어 진일보한 비즈니스 모델의 영감을 주는 오프라인 플랫폼도 있다. 2018년 MR체험센터로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코비가 좋은 예다. 자카르타와 발리 등에 3개의 센터를 운영 중인 이 회사는 VR(가상현실)이나 AR(증강현실) 관련 콘텐츠 개발업체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는 플랫폼으로 각광받고 있다. 체험센터가 관련 기업의 리서치센터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스타트업의 경우 VR 콘텐츠를 개발하고도 고객들의 반응을 미리 알아볼 수 있는 곳이 없다. MR체험센터를 이용할 경우 미리 사용자의 평가를 받아볼 수 있다. 단기임대로 통상 룸 하나당 월 3000만원을 받는다. 코비는 그 대가로 임차한 고객사에 무료 이용자들이 작성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고객 후기 사업 성패에 결정적 영향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고객과의 소통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비즈니스 모델이나 상품 설계의 첫 단계가 바로 페르소나, 즉 대상 고객의 세분화다. 이들의 이용 후기와 반응은 사업 성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객과의 공동창작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첫째, 고객이 제안한 정보에 대한 왜곡이 없고, 절차를 투명하게 해서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 고객이 제안한 아이디어에 대한 보상을 명확하게 설명해 참여자와 신뢰를 구축하고 있는 BMW가 좋은 예다.

둘째, 새로운 제품 개발보다 현 제품에 대한 업그레이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DHL은 혁신센터를 통해 고객 의견을 수렴한 후 기존의 배송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다. 그 결과 배송시간을 줄이고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셋째, 참여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심지어 컴플레인으로 얻어진 아이디어라도 그에 대한 보상을 해 주면 충성고객으로 전환됨은 물론 다양한 의견 제안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일본 게임업체 닌텐도가 성장한 배경은 고객이 제공한 아이디어가 상품화돼 얻는 수익 중 최고 6%까지 인센티브를 제공한 덕분이다.

기업의 일방형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도 너무 늦다. 이제 기업은 ‘비포마케팅(before marketing)’을 통해 고객에게 공동체 의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바로 그 선두에 공동창작 모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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