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 6465] “여보, 나 막막해”…가족도 쓰러뜨리는 ‘고통의 도미노’
  • 김종일·박성의·구민주 기자 (idea@sisajournal.com)
  • 박성의 기자
  • 구민주 기자
  • 승인 2019.12.10 10:00
  • 호수 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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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장애'를 겪는 가족들의 아픔 …장애인 자살률 전체 자살률의 2.6배

장애는 혼자만의 비극이 아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7가구 중 1가구에 장애인이 산다. 아빠가, 엄마가, 아들이, 딸이 장애를 얻게 되면 가족의 삶도 흔들린다. 삶을 털어 아픈 이를 돌보는 사이, 가족들에게도 아픔이 찾아온다. 함께 ‘장애’를 겪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막막한 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가족들을 만나봤다. 1년 뒤면 나라에서 주는 혜택이 반 토막 나는 ‘만 64세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이들이다. 희망과 절망의 반복 속에서 자신의 삶을 덮친 ‘고통의 도미노’를 견디며 절규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 일러스트 오상민
ⓒ 일러스트 오상민

‘남편이 아프다’ 더 가난해졌다

#1 자정만 되면 성경책을 편다. 그리고 눈을 감고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신앙 때문이 아니다. 잠이 오지 않아서다. 남편은 장애인이다. 어느 겨울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이후 밤은 늘 부산스럽다. 밤새 남편의 호흡이 끊길까봐 30분마다 눈을 떠 남편의 ‘푸우 푸우’ 숨소리를 확인한다. 그렇게 잠을 잃었다. ‘내 삶’도 잃었다고 생각한 어느 여름밤, 남편의 휠체어를 끌고 한강으로 향했다. 같이 죽으려고 했다. 죽지 못해 사는 게 싫었다. 순간 아들의 얼굴이 스쳤다. 죄 없는 아들마저 무너질까 한참을 울다 돌아왔다. 다시 삶을 살아내기로 했다.

날이 밝으니 ‘나쁜 현실’이 다시 나를 짓눌렀다. 문제는 돈이다. 결혼 후 평생을 주부로 살았다. 풍족하진 않아도 부족하지 않은 남편의 월급으로 살림을 했다. 노후 준비를 완벽히 하진 않았지만 돈도 꽤 모았다. 남편이 다치자 상황은 급변했다. 남편이 병원에 있는 13개월 동안 간병비 포함 약 1억원의 돈이 들었다. 보험금으로 5000만원을 충당했다. 잔금은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얻어 메울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이후가 문제였다. 돈 한 푼 벌지 않고 몸을 쓸 수 없는 남편을 돌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단 국가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봤다. 정부는 알아서 챙겨주지 않으니까 스스로 공부해야 했다. 다행히 국가에서 지원하는 활동지원사가 하루 절반 정도를 돌봐준다고 했다. 그러나 만 64세까지만 그렇고 만 65세가 넘어가면 ‘절반의 절반’으로 지원 시간이 반 토막 난다. 당장 내년에 닥칠 일이다. ‘무슨 놈의 법이 이래?’라고 생각하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라에서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게 어디람.’ 몸은 늙어가는데, 남편은 지켜야 하고, 돈은 계속 들어간다. 또 ‘나쁜 생각’이 들까 성경책을 편다.

#2 저녁 7시, 퇴근 시간이다. “불금인데 한잔할래?” 회사 동기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집에 있는 아빠 생각이 스쳐서다. 아빠는 장애인이다. 그렇게 가방을 싸고 지하철역으로 뛰었다. 금요일마다 반복되는 일상이다. 이날은 내가 ‘아빠 담당하는 날’이다. 교통사고로 경추를 다쳐 하체가 마비된 아빠를 엄마와 번갈아가며 돌본다. 엄마는 ‘월화수’ 나는 ‘목금’을 맡았다. 주말에는 지방에서 일하는 언니가 올라와 아빠를 돌본다.

아빠가 다친 건 10년 전 내가 수능을 마친 1월 어느 날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 해 줬던 ‘딸 바보’ 아빠는 중앙선을 침범한 과속 트럭에 깔린 후 마비 판정을 받았다. 처음엔 아빠가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매일, 매주, 평생 아빠를 돌봐야 한다는 무게가 삶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친구를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여행은 사치가 됐다. 불면증에 걸렸고, 병원을 찾아가니 우울증 약을 처방해 줬다. 집에 돌아온 어느 날, 철 지난 드라마 《대장금》을 보던 아빠가 “왜 택배를 안 찾아왔냐”고 채근하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빠는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방 안에 침묵이 흘렀고 아빠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빠는 다음 날 활동지원사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놨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년엔 죽어야지. 삶이 민폐야”라고 말했다고 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빠는 진심으로 내년을 ‘죽어야 할 때’라고 말한 거다. 아빠의 나이는 만 64세. 새해가 밝으면 아빠는 만 65세 미만까지만 제공되는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대신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자가 된다. 그럼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만 안심할 수 있다. 결국 엄마나 내가 회사를 관두거나, 돈을 더 들여 간병인을 고용해야 한다. 의지할 수 있는 딸이 돼야 하는데, 자꾸 의지할 곳을 찾게 된다.

 

‘아픈데 늙어간다’ 삶이 위태롭다

위 사연들은 어느 가족이 실제 마주한 현실이자 미래다. 이처럼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장애인 관련 정책은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의 복지제도는 ‘한 가정’의 삶을 지탱하는 마지막 버팀목이다. 이 버팀목의 기둥을 하나 ‘툭’ 빼는 순간, 가족 개개인의 삶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가족의 아픔을 돌보기 위해 여유를 잊은 채 돈을 벌고, 그러다 받을 수 있는 지원이 끊기면 삶을 놓게 되는 이른바 ‘고통의 도미노’ 현상이 벌어진다.

올해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간한 ‘2018 장애통계연보’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장애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38.7%로 전체 인구(63.6%)보다 24.9%포인트 낮았다. 고용률은 장애 인구 36.5%로 전체 인구(61.3%)보다 24.8%포인트 낮게 나타났다. 같은 기간 장애인 가구의 연평균 경상소득(근로소득+사업소득+재산소득+공·사적이전소득)은 3683만원으로 전체 가구(5010만원)의 73.5% 수준에 불과했다. 공적이전소득(공적연금·장애수당 등)이 경상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장애인 가구의 경우 52.8%를 기록한 반면, 전체 가구는 5.89%를 기록했다.

쉽게 말해 장애인은 노동시장에서 열악한 위치에 놓여 있는 탓에 살림의 절반을 공적 지원에 의존한다. 그리고 이런 부담은 ‘백발의 장애인’이 더 크게 진다. 2015년 기준 65세 이상 장애인의 연평균 총진료비는 535만원으로 0~64세 장애인(366만원)에 비해 46% 더 많았다. 실업률은 2017년 기준 전체 인구의 경우 20대 이하(41.8%)가 가장 높은 반면, 장애 인구는 60세 이상(43.8%)이 가장 높았다.

경제적 불안은 결국 극단적 선택으로도 이어진다. 복지부와 국립재활원이 발표한 ‘2016년 장애와 건강통계’에 따르면 장애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66.8명으로 같은 해 전체 자살률 25.6명의 2.6배에 달했다. 2017년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 자살 45건을 분석한 결과 58%는 ‘만성적 빈곤과 직장 문제’를 원인으로 꼽았다. 더 적은 지원을 받고, 더 적게 버는 ‘고령 장애인 가구’의 현실이 위태로워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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