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뉴 “난 손흥민과 사랑에 빠진 것 같아”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2 12:00
  • 호수 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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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향한 ‘독설’로 유명한 무리뉴 새 감독, 손흥민에겐 연일 찬사

토트넘 홋스퍼는 지난 시즌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오른 팀이다. 리버풀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지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빅4’ 아래 레벨에 있던 팀에서 확고한 강호로 올라선 상징적 성과였다. 많은 전문가들이 토트넘을 리버풀, 맨체스터 시티와 함께 2019~20 시즌 리그의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았다.

하지만 이번 시즌이 시작하고 3개월 만에 토트넘은 포체티노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크리스티안 에릭센, 토비 알더베이럴트 등이 연봉 문제로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자 포체티노 감독과 수뇌부의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최근 올라간 팀 위상과 달리 토트넘은 기존의 낮은 주급 체계를 유지했고, 선수단의 불만은 커졌다. 포체티노 감독의 장악력도 서서히 무너지며 리그컵에서 4부 리그 팀에 패해 조기 탈락했고, 리그 성적도 14위에 그치던 때였다.

10월부터 포체티노 감독 경질설이 돌았지만, 대체자를 구하기 힘들어 계속 갈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A매치 기간인 11월 중순에 다니엘 레비 회장은 전격적인 감독 교체를 택했다. 하루 뒤 토트넘이 새 사령탑을 발표하자 모두가 다시 충격에 빠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에서 사임한 이후 1년간 쉬고 있던 조세 무리뉴 감독이 토트넘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무리뉴는 맨체스터 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과 함께 감독 세대교체를 이끈 명장이다. FC포르투, 첼시, 인터밀란, 레알 마드리드, 맨유를 거치며 15년간 25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그중에는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우승이 각각 두 차례 있다. 리그, FA컵,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석권하는 트레블(3관왕)은 한 번만 달성해도 명장 평가를 듣는데 무리뉴는 포르투와 인터밀란에서 이뤄냈다. 감독 데뷔 후 가장 부진했다는 맨유에서조차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로파리그, 리그컵 등 3개의 트로피를 든 성과주의의 끝판왕이다.

조세 무리뉴 토트넘 신임 감독(왼쪽)과 손흥민이 경기 후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조세 무리뉴 토트넘 신임 감독(왼쪽)과 손흥민이 경기 후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감독 교체라는 최대 변수에도 끄떡없는 손흥민

성공과 승리를 향한 강한 열망과 그것을 달성해 내는 실리 중심의 유연한 전술, 스타 선수 출신이 아님에도 유명 선수들을 휘어잡는 팀 장악력, 미디어 앞에서의 거침없는 발언으로 무리뉴 감독은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스페셜 원’(특별한 사람)이라는 별명을 스스로 붙일 정도로 자부심도 강하다.

일반적으로 유럽 무대에서 뛰는 아시아 선수에게 최대 변수는 감독 교체로 여겨진다. 기량 면에서 편견이 깔릴 수밖에 없다 보니, 감독이 바뀌면 다시 제로 상태에서 인정받고 신뢰를 얻는 힘겨운 과정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 명인 알렉스 퍼거슨에게 인정받았던 박지성조차도 새로운 팀 QPR에서는 감독 교체(마크 휴즈→해리 레드냅) 후 중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을 정도다.

하지만 ‘월드클래스’로 도약한 손흥민은 이런 변수조차도 가뿐히 뛰어넘는 모습이다. 무리뉴 감독의 데뷔전이었던 웨스트햄과의 리그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 승리를 이끈 손흥민은 이후 올림피아코스전(챔피언스리그), 본머스전(리그)에서도 각각 1도움과 2도움을 기록하며 새 감독에게 3연승을 선물한 주역이 됐다. 웨스트햄전이 끝나고 원정 응원을 온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장 늦게 돌아오는 손흥민을 끝까지 기다리다 안아주는 무리뉴 감독의 모습은 선수를 향한 신뢰를 대변했다.

최근에는 아예 기자회견에서 “내가 여기에 온 지 12일 정도 된 것 같은데, 벌써 손흥민과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손흥민은 환상적인 선수이자, 훌륭한 인간이다. 구단의 모든 사람들은 그와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는 말을 직접 남기며 무한신뢰를 나타냈다. 무리뉴 감독은 탁월한 지도력 이면에 선수들과의 잦은 마찰로도 유명하다. 자신이 원하는 전술적 역할을 소화하지 못하는 선수를 경기 중 몰아세우는가 하면, 선수를 자극하기 위한 과도한 독설로 훈련장에서 다툴 정도다. 맨유 시절에는 핵심 미드필더 폴 포그바를 “바이러스 같은 선수”라고 비하해 첨예한 갈등이 벌어졌고, 결국 경질의 발단이 됐다.

1년간의 휴식기 이후 다시 팀을 맡은 무리뉴 감독이 일단은 이전과 달리 부드러운 리더십을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손흥민을 향한 특별한 관심과 찬사는 그가 보여주는 능력에 대한 인정으로 여겨진다. 수비에 무게중심을 둔 뒤 세밀한 역습 전술로 상대를 공략하는 무리뉴 감독은 해설위원 시절 “빠르게 전환하는 역습 상황에서 손흥민보다 위협적인 선수는 없다”는 극찬을 보내며 이미 전술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었다.

손흥민은 무리뉴 감독 부임 후 달라진 전술적 역할에 빠르게 적응 중이다. 포체티노 감독 시절의 토트넘은 후방에서부터 높은 점유율을 가져가며 빌드업으로 전진하는 형태였다. 그 안에서 손흥민은 공격에 훨씬 더 신경 썼고, 케인과의 스위칭 플레이로 많은 득점을 올리는 또 다른 골잡이였다. 반면 무리뉴 감독은 공을 차단한 뒤 전방으로 도달하는 속도와 공격의 효율성을 더 신경 쓴다. 측면에 배치되는 선수들은 수비 가담을 늘 신경 써야 하고, 많은 활동량으로 내려와야 한다.

 

무리뉴 축구에 맞춰가는 손흥민, 어시스트 급증

현재 손흥민은 4-2-3-1 포메이션에서 왼쪽 측면 미드필더를 본다. 중앙과 측면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며 공격에 집중하던 이전과 달리 측면을 따라 움직이는 동선과 활동량이 분석 자료에서도 나타났다. 공격수가 아닌 측면 수비수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왼쪽 측면 전 영역을 커버한다. 포체티노 감독 시절에는 같은 분석 자료에서 공격 지역의 좌우 측면과 중앙으로 고루 움직였던 것과 비교된다. 본머스전에서는 태클 시도가 6회나 나올 정도로 수비 가담에 적극적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많은 활동량을 기록하는 경기에서 손흥민은 해결사 역할을 중앙에 위치한 케인과 알리 등에게 넘기고, 자신은 정확한 크로스와 패스로 득점을 지원하는 역할에 더 집중하고 있다. 무리뉴 감독 부임 후 3경기에서 도움이 4개다. EPL만 놓고 보면 3도움인데, 그 전까지 3개월간 리그에서 올린 도움과 같은 숫자다. 리그에서 6도움을 기록한 손흥민은 케빈 데 브라위너(맨시티, 9개)에 이어 도움 2위로 올라섰다. 무리뉴 감독은 본머스전에서 중앙 미드필더 무사 시소코의 골을 도운 손흥민에 대해 “그런 아름다운 크로스는 0.5골로 봐 줘야 한다”고 또 한 번 찬사를 보냈다.

손흥민은 자신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준 포체티노 감독과의 작별을 아쉬워하면서도 새로운 명장과의 시간에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매우 친절하고, 선수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점이 좋다”며 긴 휴식기 후 유연해진 무리뉴 감독의 리더십을 소개한 손흥민은 “팀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변했다. 훌륭한 감독과 함께해 기쁘다”고 말했다. 이미 올 시즌 9골 7도움을 기록, 슬로 스타터라는 이미지마저 날린 손흥민은 팀에 다시 승리 DNA를 불어넣은 무리뉴 감독과 함께 토트넘에서 또 다른 비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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