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의 비극, 한국 사회를 드러내다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06 16:00
  • 호수 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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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우리의 공론장 민낯, 누구든 찍히면 ‘집단 공격’

한류 1세대 걸그룹 카라의 멤버였던 구하라가 최근 극단적인 선택을 해 큰 충격을 안겼다. 일각에선 그녀의 죽음을 ‘사회적인 타살’이라 했다. 그럴 정도로 우리 사회의 문제가 깊게 얽힌 사건이어서 파장이 컸다.

지난 11월15일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의 양형 기준을 재정비해주세요’라는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록됐다. 그리고 11월24일 구하라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하루 만에 10만 명 이상의 시민이 동의하는 등 관심이 쏟아지며 순식간에 동의자 20만 명을 넘어섰다. 연예인의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마치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처럼 사회적인 사안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구하라 사건 이후 청와대 청원 게시판으로 몰려간 것이다.

사회적인 타살이라며 특히 목소리를 높인 쪽은 여성주의 진영이었다. 이것은 생전에 구하라가 당한 피해와 관련이 있다. 구하라는 작년 8월 이후 엄청난 악플 속에서 살아왔다. 국내에선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여서 긴 침묵 후 올 6월부터 일본에서만 활동해 왔다. 이것은 부당한 피해였다.

가수 구하라의 죽음은 한국 사회의 많은 치부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사회적 타살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 사진공동취재단
가수 구하라의 죽음은 한국 사회의 많은 치부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사회적 타살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 사진공동취재단

여성이 당한 영상 협박에 둔감한 사회

구하라에 대한 악플이 시작된 것은 전 남자친구의 폭로 때부터였다. 전 남자친구는 구하라에게 얼굴을 폭행당해 상처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즉시 구하라를 향한 맹공이 시작됐다. 그러다 남자친구가 술에 취해 구하라를 먼저 폭행했다는 증언이 공개되고, 두 사람이 이별 중이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러면 이별폭력의 가능성이 생긴다. 이별폭력은 이별 과정에서 상대에게 앙심을 품고 가해행위를 하는 것으로 주로 여성들이 피해를 당한다. 그런 가능성이 제기됐으면 일단 판단을 유보하고 사태 추이를 지켜봤어야 하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구하라를 공격했다. 어쨌든 남자 얼굴에 상처를 낸 건 맞지 않냐는 것이다. 이건 우리 대중이 주로 여성들이 피해를 당하는 이별폭력 문제에 얼마나 둔감한지를 말해줬다.

대중이 구하라 때리기의 구실로 삼은 것은 구하라의 침묵이었다. 남자친구는 언론 인터뷰까지 하며 자신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는데, 구하라는 침묵을 지켰다. 사람들은 할 말이 없으니까 침묵하는 거라고 구하라를 비웃었다. 그러다 놀라운 사실이 알려졌다. 남자친구가 구하라에게 영상물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구하라가 남자친구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비는 영상과 남자친구가 영상물로 협박하는 듯한 녹취까지 나왔다. 비로소 구하라가 침묵한 이유가 납득이 됐다.

이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구하라를 비난했다. 고분고분하지 않고 남자친구 얼굴에 상처를 냈다는 게 천형이 됐다. 그나마 중립적이라는 사람들은 ‘쌍방폭행이니 둘 다 똑같다’며 양쪽을 다 비난했다. 영상 협박과 구하라의 맨손 폭행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리 사회가 여성들이 피해를 당하는 영상 협박 문제에 둔감한지를 말해 줬다.

검찰은 먼저 폭행당하고 영상 협박을 받은 점을 참작해 구하라를 기소유예 처분했다. 남자친구는 재판에 넘겨졌는데 재판에서 또 문제가 생겼다. 남자친구에게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된 것이다. 그 사건으로 구하라는 엄청난 고통을 당했고 한국에서의 연예활동이 힘든 상황에까지 처했다. 이건 사법 시스템조차 영상 협박 문제를 가볍게 여긴다는 증표라고 사람들은 인식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는 ‘구씨의 죽음은 한국 사법 시스템이 여성들을 좌절시킨 또 하나의 사례임을 보여줬다’는 내용의 기고글이 실렸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구하라 사망 소식 이후에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의 양형 기준을 재정비해주세요’라는 청와대 청원으로 사람들이 몰려간 것이다.

구하라는 이별폭력을 당했을 가능성과 영상 협박을 당했다는 유력한 근거가 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로부터 위로받기는커녕 집단 공격과 조롱을 당했다. 그 공격에 맞서 싸워주는 이도 없었고 그렇게 그녀는 고립돼 갔다.

이런 이유로 여성주의 진영에서 특히 공분했던 것인데, 그렇게 여성이 당하는 피해라는 관점 말고도 남녀 구분을 떠나 일반적인 공론장 문제도 드러낸 사건이었다. 최근에 남성이 이별폭력으로 보이는 사생활 폭로로 집단 공격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구혜선이 남편이 이혼하자고 한다며 남편인 안재현에 대한 폭로를 잇따라 터뜨린 사건이다.

구하라의 전 남자친구가 폭로했을 때 일방적인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맹신하면서 구하라를 공격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구혜선의 폭로에 무조건 안재현을 공격했다. 안재현은 거의 연예계 매장 직전까지 가는 피해를 당했다. 공론장 합리성의 문제다. 일방적인 주장, 근거 없는 주장에 너무 쉽게 휘둘린다. 주장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말이 안 되는 지점이 있음에도 그런 ‘귀찮은’ 과정을 거치지 않으려고 한다. 특히 ‘판단 유보’가 안 된다는 게 문제다. 정황이 확실하지 않을 땐 판단을 유보하면서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함에도, 일단 결론부터 내리고 돌팔매질을 시작한다. 합리성의 실종이다.

이별폭력 가능성이 제기된 구하라는 위로보다는 집단 공격을 당했다. ⓒ 연합뉴스
이별폭력 가능성이 제기된 구하라는 위로보다는 집단 공격을 당했다. ⓒ 연합뉴스

공론장 문화에 내재한 불합리성

이별폭력에 대한 둔감함도 있다. 이별폭력이 주로 여성이 당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남성도 당할 수 있는 것인데, 안재현이 피해를 당할 때 사람들은 이별폭력 피해자의 고통에 둔감했다. 사생활 폭로에 대한 둔감함 문제도 있다. 구혜선의 폭로가 사실이라는 근거가 없기도 하지만, 설사 사실이라고 해도 남의 사생활을 그렇게 일방적으로 까발리는 데는 문제가 있다. 누군가가 남의 사생활을 터뜨리면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을 보호해 주는 것이 성숙한 사회의 태도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폭로자에게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또 다른 폭로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나온 사생활 정보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대상자의 삶을 난도질한다. 이 시점부터 대중은 폭로자와 공범이 되고 피해자는 극심한 고립감에 절망한다.

구하라의 비극은 단지 여성에 대한 문제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들까지 다발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우리 공론장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폭력적인지, 그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공론장 풍토에선 언제든 비극이 터질 수 있다. 누구든 찍히는 순간 인민재판 조리돌림부터 당한다. 뒤늦게 억울함이 밝혀져도 이미 대중의 관심은 다른 먹잇감으로 향한 뒤다. 반복되는 집단 공격 문화. 모두가 가해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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