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 사재기 논란①] 박경이 쏘아올린 공, 가요계 음원 사재기 판도라 열까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12.07 12:00
  • 호수 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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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실명 거론해 음원 사재기 의혹 제기 파장…실체적 진실 밝혀질지 주목

“바이브처럼 송하예처럼 임재현처럼 전상근처럼 장덕철처럼 황인욱처럼 사재기 좀 하고 싶다.” 한 아이돌 가수의 ‘저격글’이 가요계를 흔들었다. 블락비 멤버 박경이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리면서 그동안 설이 무성했던 ‘음원 사재기’ 의혹이 다시 수면으로 떠오른 것이다. 가수가 다른 가수의 실명을 거론하며 음원 사재기를 폭로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이어 김나영·양다일의 듀엣곡이 아이유의 신곡은 물론 1000만 돌파를 앞둔 영화 《겨울왕국2》 OST를 제치고 차트 1위로 올라서면서 또다시 의혹은 깊어졌다. 그러나 사재기를 했다는 가수는 없었다. 저격당한 가수들은 모두 법적 공방을 예고하면서 논란을 부인했다.

블락비 멤버 박경이 자신의 SNS에 올린 글. 언급된 가수들은 법적 공방을 예고했다. 현재 글은 삭제된 상태다. ⓒ 연합뉴스
블락비 멤버 박경이 자신의 SNS에 올린 글. 언급된 가수들은 법적 공방을 예고했다. 현재 글은 삭제된 상태다. ⓒ 연합뉴스

소속사들, “바이럴 마케팅 결과” 주장

음원 사재기란 멜론 등 주요 음원 사이트 차트에 올리기 위해 특정 음원을 인위적으로 반복 재생하는 행위를 말한다. 사실 사재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3년 SM·YG·JYP엔터테인먼트와 스타제국은 음원 사재기 행위를 조사해 달라며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2015년에도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인 멜론에서 특정 가수에게만 ‘팬 맺기’를 한 동일 패턴 아이디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특정 가수의 곡을 동시 다발적으로 스트리밍하거나 다운로드한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멜론 관계자는 “동일 패턴 아이디의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건에 대해서는 필터링을 통해 차트에 반영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지난해 일부 가수들이 유명 아이돌의 신곡을 제치고 장기간 정상을 밟으면서 논란은 다시 불거졌다. 2017년 10월 발표한 닐로의 《지나오다》는 2018년 4월 셋째 주 멜론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발표한 지 6개월이 지난 노래의 음원 순위가 갑작스럽게 반등하며 차트 상위권에 올랐고, 거대한 팬덤을 보유한 트와이스의 《What is love》를 제쳤다. 이 노래가 실시간 차트 1위에 오른 시간은 음원 서비스의 이용률이 떨어지는 새벽이었다. 음원 사재기 의혹이 일자 닐로의 소속사 리메즈엔터테인먼트는 닐로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페이스북을 활용해 바이럴 마케팅을 펼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중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심야 시간대에 홍보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회사가 한둘이 아닌 데다, 그렇다고 해서 해당 곡이 실시간 음원 차트 급상승으로 연결되기는 어렵다는 점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일부 다른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닐로의 곡은 주요 차트에 진입조차 하지 못했다.

숀 역시 마찬가지였다. 2018년 6월 발표한 숀의 노래 《Way back home》은 7월7일 실시간 차트 첫 진입 이후 열흘 만에 1위에 올랐다. 숀과 소속사 디씨톰엔터테인먼트 역시 바이럴 마케팅에 의한 결과라며 사재기 의혹을 부인했다. 이들 소속사는 문체부에 음원 사재기 의혹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 달라고 진정서를 냈다. 그러나 문체부는 ‘사재기 유무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냈다. “데이터 분석만으로는 사재기 유무를 판단하기 어려웠다”며 “음원의 경우 행정기관이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가요계 관계자들 "음원 사재기는 공공연한 사실"

온라인 음원 사이트는 다운로드 횟수와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 횟수를 합산해 순위를 집계한다. 음원 사재기는 다운로드 서비스에 대한 사재기와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사재기로 나뉜다. 음원 사재기를 진행하기 위해 제작한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면 컴퓨터가 스스로 음원 사이트에 접속하고 로그인을 한 뒤, 해당 음원을 다운로드한다. 로그아웃하고 다시 다른 아이디로 로그인을 한 뒤 음원을 다운로드하는 과정을 무한 반복한다. 음원 사이트 접속에는 ID가 필요한데, 메일 주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포털사이트 ID에도 하나하나 가격이 책정된다. 보통 3억~4억원 정도 투자돼야 주요 차트 상위권에 노출된다고 알려져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수백 대 이상의 휴대폰을 동시에 돌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문업체에 일정 금액을 지불한 뒤, 해당 가수의 음원을 지속적으로 재생시켜 순위를 조작하는 방법이다. 지난해부터는 소셜 미디어를 통한 ‘바이럴 마케팅’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SNS를 통해 키워드나 문구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끄는 방식이다. 일명 ‘페북 픽’ 노래다. 그러나 이런 페이지들을 전문업체가 운영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사재기 편법’ ‘바이럴 마케팅으로 포장한 사재기’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음원 사재기는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26조에 위배되는 행위다. 음원 사재기가 적발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증거 파악이 어려워 처벌로 이어진 적은 없지만, 가요계 관계자들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JYP엔터테인먼트 수장 박진영 프로듀서는 직접 “음원 사재기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며 “업체에 따르면 차트 10위 안에 6곡이 차트 조작곡”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가수 이승환 역시 “측근을 통해 브로커의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며 “액수는 수억원대에 이른다”고 폭로했다. 최근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김간지는 팟캐스트에 출연해 “작년에 앨범을 냈을 때 브로커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수익을 8대 2로 나누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10·20대 중 40%, 실시간 차트 통해 음원 소비

왜 자금을 들여 주요 음원 차트에 입성하려고 할까. 음원 주요 차트는 음원 수익은 물론이거니와 직접적인 홍보 효과를 누리게 한다. 마트에 진열돼 있는 상품이 진열되지 않은 상품보다 판매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온라인 음원 플랫폼에서도 대중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음원을 배치하게 되면 소비는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가장 효과적인 진열대가 바로 실시간 차트 등 순위 차트다.

NH투자증권이 2016년 내놓은 ‘로엔, 결코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 리포트를 보면 왜 기획사들이 차트 순위에 집중하는지 알 수 있다. 모바일 음악 서비스를 받는 대중들 중 음원 소비를 많이 하는 10대와 20대의 40%가 실시간 차트를 통해 음원을 소비했으며, 20%가 최신 음악 차트를 통해 음악을 들었다. 30대는 실시간 차트에서 27.5%, 최신 음악 차트에서 37.5%의 음원을 소비했다. 40대와 50대로 가면 실시간 차트를 통해 음악을 듣는 비중은 각 15%, 7.5%로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음원 사재기 논란이 계속되자 주요 음원 사이트들은 지난해 ‘차트 프리징’을 도입했다. 밤늦은 시각 또는 새벽 시간에 이뤄지는 바이럴 마케팅이나 트래픽 유도 전략을 막기 위해 새벽 1시부터 7시까지 차트 운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시간대를 피해 역이용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새벽 1시 이전에 이미 만든 차트 순위가 다음 날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부에서는 ‘서킷 브레이커 제도’가 논의된다. 가온차트의 김진우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2월, 음원시장에서 서킷 브레이커와 같은 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킷 브레이커란 주식시장에서 단기간 내 주가가 급등락할 때 주식매매를 중단시키는 제도로, 이를 음원시장에도 도입해 갑작스레 사용량이 급증할 때 검증해 보는 게 어떠냐는 취지였다. 인지도가 높지 않은 가수 우디의 노래 《이 노래가 클럽에서 나온다면》이 100위권 밖에서 1위로 올라서면서 음원 사재기 논란이 다시 불거진 때였다.

 

“실시간 차트 폐지해야” 지적도

가수 윤종신은 지난해 “차트는 현상의 반영인데 차트가 현상을 만드니 차트에 어떻게 하든 올리는 게 목표가 된 현실”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상위권 순위가 음악 활동의 수익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차트 진입 여부와 순위에 매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음원 경쟁을 과도하게 부추기고 외부 자극에 쉽사리 요동치는 실시간 차트를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빌보드 차트의 경우 일주일 치 디지털 및 CD 싱글 판매량, 스트리밍, 라디오 방송 횟수를 더해 순위를 산정하고, 영국 싱글 차트는 일주일 음반 판매량, 음원 다운로드,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자 수치를 모두 더해 순위를 매긴다. 일본 오리콘 차트를 비롯한 몇몇 차트는 주간 순위와 더불어 음반·음원 판매량에 바탕을 둔 일간 순위를 공개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은 차트 대신 취향에 따른 추천 음악을 기반으로 운영하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사재기나 바이럴 마케팅이 모두 차트의 순위를 왜곡할 수 있다는 데서, 결국엔 차트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중들의 일반적인 소비심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차트가 공정한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과거 음반시장에서는 차트가 긍정적인 기능을 했지만, 음원시장이 주된 시장이 된 지금은 차트 순위를 신뢰할 수 없게 됐다는 지적이다. 정 평론가는 “빌보드에서도 끼워 팔기 등 편법적 마케팅을 통한 차트 진입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의 음원시장으로 진입하면서 차트는 왜곡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음원 시대에 음악을 듣는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 교수는 2015년 한국대중음악학회의 《대중음악》에서 “지나치게 실시간성에 집착한 나머지 음원 차트가 다양한 형태의 사재기를 유도하게 되고, 그에 의해 왜곡되며, 더불어 음악 자체의 수명도 짧게 만들어 버렸음은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실시간 차트를 인기의 척도로 생각하는 수용자가 대부분인 현재의 경향은 최근 수용자들의 음악 소비 형태, 즉 음악을 인터넷상의 ‘실시간 화제’ 중 하나로 즐기는 수용자들의 성향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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