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수석 능가했던 ‘실세’ 백원우의 파워
  • 유지만·감명국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9.12.09 10:00
  • 호수 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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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문 핵심에 재선 의원 경험으로 민정수석실 실질적으로 움직여

2018년 2월10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했다. 모든 이들의 눈과 귀가 청와대와 평창으로 향하던 그날 오후 9시30분경. 서울 프레스센터 인근에서 두 사람이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과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이었다.

백 비서관의 “대통령의 뜻은 끝까지 버티라는 거니까…”라는 말에 김 본부장은 난처한 표정으로 가벼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한·미 FTA 관련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에 ‘세이프가드’ 발동을 시사하는 등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앞두고 강하게 압박하고 있던 때였다. 한·미 FTA 개정 협상팀의 사령탑인 김현종 본부장은 누구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다. 하지만 장관급인 김 통상교섭본부장을 향해 차관급보다 아래인 부처 1급에 해당하는 백 비서관이 대통령의 뜻을 말하고 있는 이 장면은 썩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한·미 FTA 관련은 민정비서관의 소관 업무도 아니다. 엄연히 청와대 내 경제수석비서관 산하에 통상비서관, 경제비서관 등이 있기 때문이다.

2018년 11월20일 백원우 민정비서관(왼쪽)과 조국 민정수석이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2018년 11월20일 백원우 민정비서관(왼쪽)과 조국 민정수석이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민정수석이 전화할 일은 없겠지, 민정비서관이 다 하니까”

백원우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이른바 ‘靑(청와대)-檢(검찰) 전쟁’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청와대를 겨냥한 검찰의 칼날은 예사롭지 않다. 전직 특감반원이었던 검찰 수사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검찰의 수사가 숨 고르기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오히려 압수수색에 나서며 더 강하게 청와대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사실상 청와대와 ‘전면전’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 칼끝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뿐만 아니라 백 부원장을 비롯한 청와대 실세들을 향하고 있다는 관측도 불거졌다.

현재 검찰 수사는 두 갈래로 뻗어 있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감찰 무마’를 했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 김기현 전 울산시장과 관련해 청와대가 ‘하명 수사’를 통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다. 두 가지 모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민정수석이던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당초 검찰 수사가 시작됐을 때는 ‘조국 시즌2’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모두 조국 민정수석 시절 벌어진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련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이제 모든 의혹은 백원우 부원장으로 향하고 있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하명 수사’ 의혹에서 소위 ‘백원우 특감반’이라 불리는 별도의 팀이 울산지방경찰청에 관련 첩보를 전달하고 수사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백 부원장이 개입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유재수 전 부시장 ‘감찰 무마’와 관련해서도 ‘친문(친문재인)’ 실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유 전 부시장에 대한 감찰을 사실상 중단시킨 배경에 백 부원장이 있다는 의혹도 있다. 이는 정치인인 백 부원장이 민정수석실의 정보를 장악하다시피 했고 사실상 민정수석 역할을 했다는 평가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민정수석실의 파워 구도를 둘러싼 다양한 얘기들이 청와대와 검찰 주변에서 들려왔다. 검찰을 출입하는 한 일간지 기자는 “조 전 장관이 2017년 5월11일 민정수석에 임명된 직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민정수석이 검찰에 전화할 일은 없을 것이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이후 주변에서 ‘그렇지. 민정수석이 검찰에 전화할 일은 없겠지. 민정비서관이 다 하니까’란 말들이 회자됐다. 지금 생각해 보니 조 전 장관은 검찰 개혁 등 큰 그림에 집중하고, 실제 검찰은 백 부원장이 전담하는 쪽으로 역할 분담이 된 듯하다”고 말했다.

 

“박형철 비서관 산하로 갔다면 문제 없었을 텐데…”

12월1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검찰 출신 A수사관은 소위 ‘백원우 별동대’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 A수사관이 청와대에 근무할 당시 민정수석실은 경찰과 검찰 등에서 파견받은 15명의 특별감찰반원 중 9명을 반부패비서관실에, 6명을 민정비서관실에 배치했다. 민정비서관실에 배치된 6명 중 경찰 출신 1명, 검찰 출신 1명이 소위 ‘백원우 별동대’ 임무를 맡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숨진 A수사관이 바로 이 2명 중 1명이다. 이들은 청와대의 김기현 전 시장 관련 첩보를 울산지방경찰청에 전달한 것으로 지목됐다. A수사관은 이와 관련한 검찰 조사 일정을 조율하던 중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렀다.

백 부원장은 그동안 줄곧 “일상적인 업무 영역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해명해 왔다. 그는 11월28일 오전 입장문을 통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고위 공직자 등 다양한 분야 인사들에 대한 검증 및 감찰 기능을 갖고 있지만 수사기관은 아니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한 첩보나 제보는 일선 수사기관에 이첩해 수사하도록 하는 것이 통례”라며 “통상적인 반부패 의심 사안으로 분류, 일선 수사기관이 정밀히 살펴보도록 단순 이첩한 것 이상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은 오히려 더 의혹을 증폭시키고 말았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임무는 대통령 친인척과 중앙 공직자에 대한 감찰 기능일 뿐이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선출직 공무원이 관련된 비위 첩보를 ‘통상적 반부패 의심사안’으로 볼 수 있냐는 지적이 뒤따랐다. 게다가 입장 발표를 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A수사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의혹이 더욱 커지게 됐다. A수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며칠 전 그를 만났던 한 지인은 “A수사관은 ‘(내가) 한 것이 없는데 왜 괴롭히나’라며 힘들어했다. 만약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산하로 들어갔다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백 부원장 밑으로 들어가면서 비극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 ‘적폐청산’ 진두지휘

유재수 전 부시장에 대한 감찰 무마 의혹에서도 백 부원장에 대한 의혹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유 전 부시장의 감찰이 중단된 배경에 대해 “당시 조국 민정수석과 백원우 민정비서관,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의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때 박 비서관은 유 전 부시장에 대한 수사 의뢰를 주장한 반면, 백 부원장은 사직 처리를 주장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조국 전 장관이 백원우 부원장 측 입장을 받아들이면서 사표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박 비서관이 반대 의견을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 비서관이 최근 검찰 조사에서 청와대에 불리한 증언을 하게 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 부원장이 유 전 부시장에 대해 사표 수리 의견을 밝히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친문계 핵심 인사인 천아무개 청와대 행정관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비서관이 검찰에서 “(감찰 무마는) 조국 수석보다 더 윗선에서 결정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은 직급상 상급자라기보다는 ‘친문 실세’를 의미한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천 행정관은 유 전 부시장이 금융위에 재직하던 시절 그와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여러 차례 금융권 인사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금융위 내 ‘친정권 인사’였던 셈이다. 이 때문에 ‘아군’이었던 유 전 부시장을 구하기 위해 천 행정관이 백 전 비서관에게 의사를 전달했고, 백 전 비서관이 민정수석실 비서관 회의에서 사표 수리를 주장하게 됐다는 것이다.

두 사건에서 모두 백 부원장이 언급되는 이유는 그가 민정수석실 재직 동안 ‘2인자’ 타이틀을 단 ‘민정 실세’로 활동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백 부원장이 사실상 민정수석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은 정권 초기부터 제기돼 왔다. 학자 출신인 조국 전 장관보다 재선 의원을 지낸 정치인 출신 백 부원장의 영향력이 훨씬 더 강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 초 경찰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도 “실세는 백원우 비서관이다”는 소문이 돌면서 연줄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부산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실무 경험이 적고 공직 생활을 하지 않았던 조 전 장관보다 성격도 열정적이고 재선 의원 출신인 백 부원장의 활동 영역이 훨씬 더 넓었다. 기업 관련 비리, 토착 비리, 공직 비리 등 각종 의혹들이 백 전 비서관에게 무수히 전달됐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정권 초반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을 사실상 백 부원장이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 역시 친문의 핵심인 백 부원장이 사실상 관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검찰의 한 인사는 “조 전 장관은 정권 초반 개헌과 수사권 조정, 권력기관 개편 문제에 집중했다면 백 부원장은 적폐청산과 감찰 등 임무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활동 영역, 시민단체와 외교·안보단체에도 뻗어

전 대통령 서거 등으로 백 부원장의 검찰에 대한 시각은 매우 비판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백 부원장은 2009년 노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향해 “어디서 분향을 하느냐. 사죄하라”고 소리치다 경호원들에 의해 끌려나가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당시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보는 탓인지 검찰에 대한 반감이 매우 컸던 것으로 알고 있다. 현 정부 출범 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로 파견 갔던 한 수사관이 한 달도 채 못 돼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다며 다시 복귀한 적도 있었다. 엄청나게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백 부원장의 활동 영역은 시민단체와 외교·안보단체에도 미쳤다. 대표적인 사례가 백 부원장과 향군 회장의 회동이다. 시사저널은 1월3일자 보도([단독] 靑 백원우, ‘비리 수사’ 향군 회장 왜 만났나)를 통해 백 부원장이 청와대 재직 시절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김진호 향군 회장과 회동한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특히 회동 이후 김 회장 사건이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되면서 청와대가 향군의 지지를 약속받는 대신 김 회장의 비리를 무마해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회동 자리에는 최근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첩보를 접수한 것으로 알려진 문아무개 전 청와대 행정관도 동석했다.

사건이 백 부원장 중심으로 프레임이 짜이면서, 검찰의 수사가 어디까지 미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 수사관이 사망하는 일까지 생겨 고인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도 밝혀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야당에서는 백 부원장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넘어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 해명까지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 수사가 문재인 정권의 또 다른 실세를 향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7월 퇴직한 부장급 검찰 인사는 “두 사건 모두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의 경우 서울동부지검에서 수사하던 도중 인사가 나면서 잠시 중단됐지만, 이때도 이미 ‘사건이 크게 번질 수 있다’는 내부 관측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사건도 마찬가지다. 공직 선거를 석 달여 앞둔 시점에 수사에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선거에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이다. 이미 정치권 안팎에서는 현 정권의 핵심 그룹 중 하나인 ‘부산파’ 인사들이 개입돼 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현재까지는 유 전 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이 검찰 수사의 주된 흐름이지만, 김 전 시장 관련 수사에 검찰이 본격 착수하면 상황이 어디까지 번질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여권에서는 이러한 검찰의 움직임에 대해 ‘검찰이 개혁에 저항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내심 상당한 위기의식도 엿보인다. 민주당 검찰공정수사촉구특별위원회는 12월5일 가진 첫 회의에서 검찰을 향해 강하게 성토했다. 특위 위원장을 맡은 설훈 최고위원은 “검찰이 피의사실 유포와 자유한국당 봐주기 수사, 청와대 표적 수사로 검찰 개혁 법안 논의를 좌초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 대표를 지낸 5선 추미애 의원을 법무장관으로 내정한 것을 ‘검찰 통제’라는 맥락에서 분석하는 시각도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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