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된 과거, 옛 가수들이 깨어나고 있다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4 12:00
  • 호수 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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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탑골공원’이 불러일으킨 ‘뉴트로’ 열풍

시간이 흐르면서 팬들의 뇌리에서 잊혔던 1990년대 가수들이 최근 하나둘 깨어나고 있다. 그 진원지는 온라인이다. ‘온라인 탑골공원’이 과거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들을 통해 뜨거운 화제를 일으키더니, 최근 새로 시작한 JTBC 《슈가맨3》는 이런 힘을 더해 옛 가수들을 본격적으로 소환해 내고 있다.

지난 11월29일 새로 시작한 《슈가맨3》 첫 회에 출연한 태사자는 다음 날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90년대 말 극강의 비주얼 아이돌 그룹으로 큰 인기를 누렸던 태사자. 그렇게 20여 년이 지나 훈남이 돼 나타난 태사자에 대중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쉽지만은 않았을 노래와 안무를 제대로 소화해 내고, 모두 10kg 이상의 다이어트를 했다는 데서 이들이 얼마나 돌아오는 무대에 정성을 다했는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JTBC 《슈가맨3》에 출연해 신드롬급 화제를 불러일으킨 양준일(왼쪽 사진)과 유튜브에 개설된 90년대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 ‘온라인 탑골공원’에 나온 옛 가수들 ⓒ JTBC·youtube 캡처
JTBC 《슈가맨3》에 출연해 신드롬급 화제를 불러일으킨 양준일(왼쪽 사진)과 유튜브에 개설된 90년대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 ‘온라인 탑골공원’에 나온 옛 가수들 ⓒ JTBC·youtube 캡처

양준일 신드롬 만들어낸 밀레니얼 세대

특히 화제가 됐던 건 김형준이 현재 택배기사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는 그의 말에 대중들도 공감했다. 한때 최고의 위치에 있던 아이돌이 택배기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밝게 웃는 그 모습이라니.

하지만 이 첫 회는 《슈가맨3》의 몸 풀기에 가까웠다. 2회에 등장한 양준일은 곧바로 신드롬급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등장 전부터 “진짜 그분이 온 것이냐”는 의구심을 자아내던 출연자들과 방청객들은 무대 뒤편에서 그림자 실루엣으로 《리베카》에 맞춰 멋들어지게 춤을 추는 모습에서부터 탄성을 자아냈다. 나이 들어 이제 오십 줄이 넘어 과거 그 앳된 모습은 사라졌지만 지금 들어도 빠져드는 노래와 스타일리시한 퍼포먼스는 모두를 압도했다.

놀라운 건 양준일을 40대만큼 10대들도 익숙하게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비결은 ‘온라인 탑골공원’이었다. 유튜브에 개설돼 90년대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을 다시 보며 댓글을 다는 이 채널은 젊은 세대들이 당대의 가수들에게 빠져들게 했다. 그중에서도 양준일은 ‘탑골 GD’라 불릴 정도로 이미 큰 화제였다. 과거 영상 속에서 양준일은 지금의 세대들까지 매료시킬 정도로 시대를 앞서간 자유로운 영혼의 아티스트였다.

《슈가맨3》가 지난 시즌보다 뜨거워진 건 그 가수들을 섭외하기 위해 노력을 해 온 제작진의 공을 빼놓을 수 없지만, 온라인 탑골공원의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온라인 탑골공원을 보다 보면 “저 가수를 《슈가맨》에서 봤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왜 현재의 가수들이 아닌 옛 가수들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열광이 만들어지고 있는 걸까.

최근 젊은 세대들의 트렌드 중 하나인 뉴트로는 복고와는 다르다. 복고는 옛것을 향수하고 추억하는 것이지만, 젊은 세대들이 열광하는 90년대 음악들은 심지어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나온 것들이다. 그래서 뉴트로는 복고라기보다는 옛것을 ‘힙’하게 느끼는 새로운 트렌드라고 보는 편이 맞다. 이들은 90년대 음악들의 무엇을 ‘힙’하다고 느끼게 하는 걸까. 그건 현재의 K팝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물론 같은 아이돌 그룹이라 하더라도 저마다의 색깔과 개성은 다르지만, 90년대 가수들과 비교해 보면 지금의 K팝 아이돌들은 어딘지 비슷한 틀로 다가오는 면이 있다. 거의 하나의 장르가 되어 버린 K팝은 노래 스타일도 비슷하고, 거기에 멤버들이 맞춘 듯 칼군무를 하는 것이 하나의 시그니처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90년대 가수들의 노래와 퍼포먼스 혹은 그 스타일을 보면 실로 다양하고 때론 파격적으로 느껴지는 면이 있다. 흔한 것을 피해 나만의 독특한 걸 찾아가는 것을 밀레니얼 세대들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이들에게 90년대 가수들의 모습은 거기에 딱 맞아떨어지는 다양함이 존재한다. 당대에는 너무나 파격적이어서 방송사들조차 꺼렸던 양준일의 음악과 퍼포먼스가 지금의 세대들 눈에 포착되고 열광의 대상이 된 건 그래서다.

아이돌 말고 아티스트…공감대를 원하는 대중

최근 들어 90년대 음악뿐만 아니라, 트로트 같은 기성세대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던 장르에 젊은 세대들이 빠져드는 현상 역시 같은 이유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TV조선 《미스트롯》이나 송가인 열풍 그리고 MBC 《놀면 뭐하니?》가 만든 유산슬 열풍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거기에는 또한 K팝 바깥에서 나만의 ‘힙’한 무언가를 찾으려는 젊은 세대들의 욕망도 들어가 있다. 지금 현재 가요계는 마치 K팝 하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왜곡되어 있는데, 젊은 세대들은 다양한 취향들을 요구하고 있고 그래서 그 시선이 90년대로도, 또 다른 장르로도 가고 있다는 것이다.

양준일 신드롬을 통해 또 하나 읽어낼 수 있는 건 ‘아이돌’이 아닌 ‘아티스트’로서의 가수들에 대한 대중들의 소구다. 현재의 K팝은 거의 대부분이 아이돌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젊은 날의 성공에만 반짝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아이돌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사실 최근 벌어진 아이돌의 비극적인 선택은 바로 이런 젊은 날에 모든 걸 쏟아내는 아이돌이라는 시스템이 근본적 원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양준일은 아이돌 시절을 훌쩍 지나 지금도 여전히 음악을 할 수 있는 아티스트의 면모를 보여준다. 짧은 기간에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관통해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 90년대 그 이전 가수들은 아티스트의 길을 걸었다.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기획사들이 생겨나고 음악이 산업화되면서 아티스트보다는 아이돌이 키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의 밀레니얼 세대들은 아이돌처럼 성장주의 시대에 육성된 가수들보다는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픈 음악을 오래도록 펼쳐 나가는 아티스트에 더 관심을 갖는다.

또한 태사자의 김형준이 택배기사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과 양준일이 미국에서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당당하게 나서는 모습은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 자체로 큰 공감과 위안을 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평범한 삶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특별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밀레니얼 세대들이 대단한 성공이 아닌 눈에 보이는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자신만의 특별함을 찾으려는 그 욕망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옛 가수들이 하나둘 깨어나고 있다. 그 현상만큼 그들을 깨우고 있는 지금 세대의 마인드를 읽어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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