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vs선동열’ 같은 전설적 맞대결, 또 볼 수 있을까
  • 이상평 야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8 11:00
  • 호수 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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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압도하는 ‘정통파 투수의 부재’ 우려 목소리 커…최원태·이영하 성장에 기대

재작년까지의 KBO는 연일 흥행의 절정을 달리고 있었다. 2016년 833만 명의 관중을 동원하며 8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2017년에는 840만 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러나 작년부터 이 흥행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2018 시즌, 5년 만에 처음으로 전년 대비 관중이 감소했고, 올 시즌은 728만 관중에 그치며 800만 관중 시대의 막을 내렸다.

극심한 미세먼지, 롯데나 KIA와 같은 인기 구단들의 성적 부진, 국가대표 선발 논란, 팬 서비스 논란 등 다양한 요소들이 이런 흥행 참패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할 만한 대형 스타의 부재 현상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2월9일 있었던 골든글러브 시상식장은 이런 지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총 10명의 수상자 중 외국인 선수가 무려 4명이나 차지했다. 이는 역대 최다 기록이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인상적인 국내 스타가 없었다는 뜻이다. 올 시즌 MVP도 린드블럼(두산)의 몫이었다.

(왼쪽)최원태 (오른쪽)이영하 ⓒ 연합뉴스
(왼쪽)최원태 (오른쪽)이영하 ⓒ 연합뉴스

좌완 라이벌 양현종·김광현, 압도적인 존재감 떨어져

스타의 부재 현상 가운데서도 특히 최동원·선동열처럼 마운드에서 타자들을 압도하는 정통파 투수의 명맥이 끊기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상당하다. 올해 골든글러브상에서 가장 관심을 모았던 투수 부문 수상자는 린드블럼이었다. 지난해 수상자 역시 린드블럼이었다. 대형 투수의 등장을 고대하는 프로야구 팬들은 린드블럼의 별명을 ‘린동원’으로 부르며 외국인 투수의 활약을 보는 것으로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팬들은 《퍼펙트 게임》이란 영화가 나왔을 정도로 최고의 빅카드였던 최동원·선동열의 전설적인 맞대결이 다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작년과 올해 KBO리그에서 존재감을 과시한 토종 에이스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류현진과 함께 좌완 트로이카 시대를 열며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양현종·김광현은 여전히 경쟁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얼굴로 남아 있다. 그러나 최동원·선동열 같은 ‘아이콘’들과 비교했을 때 분명 그 존재감이나 파급력, 우월감은 비교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최동원과 선동열의 존재감은 실로 대단했다.

둘은 당시 리그 수준을 압도적으로 상회하던 직구와 변화구를 보유했고, 강력한 승부욕과 내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최동원의 커브와 선동열의 슬라이더는 타자들이 알고도 칠 수 없는 구종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최동원은 1984년 한국시리즈 4승이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겼고, 선동열은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상대 팀이 흔들리는 이른바 ‘선동열 효과’라는 만화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장면을 실체화시켰다.

여기에 둘은 동시대에 활동하는 동안 야구 외적 프레임으로 인해 라이벌 구도가 더욱 부각되며 존재감이 커진 케이스다. 최동원은 영남을 대표하는 롯데의 에이스 투수였고, 선동열은 호남을 대표하는 해태(KIA의 전신)의 에이스 투수였다. 또한 최동원은 연세대를, 선동열은 고려대를 졸업하며 영원한 맞수 연고전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선동열이 존경하며 따라잡고 싶었던 선배 최동원이라는 스토리가 더해지며 신구 간의 대결 프레임 역시 이 둘의 존재감을 대폭 키우는 장치였다.

하지만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오늘날의 야구는 최동원·선동열처럼 에이스 한 명이 압도적으로 부각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선 과거와 달리 투수 보직의 세분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투구 수 관리가 철저히 이뤄지면서 선발투수들의 소화 이닝이 줄었다. 강력한 구위와 빠른 구속을 가지고 있던 선수들이 선발투수가 아니라 다른 보직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물론 그 덕에 많은 선수들이 과거보다 비교적 롱런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선발투수에게 집중되던 스포트라이트가 다른 보직의 투수들, 더 나아가서는 타자들에게 분산되는 환경으로 리그가 변화한 셈이다.

그리고 기술이 발전하며 타자들의 발전 속도가 투수보다 빨라졌다. 또한 타자들이 투수에 대응하는 방법 역시 혁신적으로 발전했다. 선천적으로 오른손잡이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상황 속에서 오늘날의 타자들은 만들어진 ‘좌타자(우투좌타)’로 변신하며 우투수 공략에 나서고 있다.

 

구창모·이승호·김대현 등도 주목할 만

최근 야구의 수준이 떨어졌다는 팬들의 지적도 많지만, 리그의 선수들 간 실력 편차가 과거보다 작아지며 예전처럼 압도적인 아웃라이어가 나오기 힘들어졌다는 것도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대졸 신인들은 즉시 전력, 특급 고졸 신인들도 즉시 전력감으로 꼽혔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제아무리 아마추어 무대를 평정한 최강자라 하더라도 프로무대에 곧바로 명함을 내밀기 어렵다. 수년간 2군에서 담금질을 거친 이후에야 1군에 데뷔하는 수준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최동원·선동열의 명맥을 이을 만한 기대주들은 지금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2006 WBC 4강, 2008 베이징올림픽 우승, 2009 WBC 준우승 등 대한민국 야구의 황금기를 보고 자라며 최근 프로에 입성한 유망주들은 최근 몇 년간 최고 수준의 유망주들로 꼽히고 있다. 자질이 빼어난 선수들이 많은 만큼 향후 기대를 걸어볼 자원들은 분명히 있다.

우선 2017년부터 올해까지 35승19패 ERA 3.92를 기록한 키움의 우완 최원태(22)가 손에 꼽힌다. 올해 17승4패 ERA 3.64를 기록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두산의 우완 이영하(22)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1군에서 꾸준히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인 NC의 좌완 구창모(22), 키움의 좌완 이승호(20), LG의 우완 김대현(22) 등도 주목할 얼굴로 꼽힌다.

수년간 역대 최고의 활황기를 맞이하던 대한민국 프로야구는 여러 암초를 만나며 급격한 위기 상황에 놓였다. 그리고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팬들이 지적하는 팬 서비스나 경기력에 대한 개선이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팬들을 야구장으로 불러올 수 있는 대형 ‘아이콘’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단순히 달라진 환경 탓만 할 순 없다. 팬들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하는 것은 프로선수의 의무다. 과연 각 구단의 영건 투수들은 전설적인 대선배인 최동원과 선동열처럼 성장해 줄 수 있을까? 그들의 행보에 KBO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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