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화내거나 압박하지 말고 수사결과 지켜볼 일이다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6 14:00
  • 호수 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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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의 시시비비] 최고조 달하는 與-檢 긴장…검찰과 마찬가지로 민정수석실도 견제·감시 필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 ‘하명 수사’ 의혹, 두 사건 모두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민정수석실과 관련된 내용이다. 민정수석실은 예나 지금이나 국가권력기관의 최정점에 있는 부서다. 그래서 두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민정수석실 안팎의 인사들로 향하자 여권의 예민한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검찰을 향해 “피의사실과 수사 상황 공개를 금지하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 제도가 시행되고 있음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며 공개적 경고를 했다. 두 사건과 관련된 언론보도의 배경으로 검찰을 지목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만약 정치적 의도가 의심되거나 진실을 덮으려는 수사가 될 경우 특검을 해서라도 진실을 낱낱이 밝혀낼 것”이라며 검찰이 특검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아예 민주당은 ‘검찰공정수사촉구 특별위원회’까지 구성해 검찰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 위원회는 공정수사를 촉구하겠다며 검찰과 경찰의 관계자들을 불러 간담회를 가지려다가 당사자들의 불참으로 무산되는 전례 없는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조국 사태’ 이후에도 이어지는 다른 수사들로 인해 여권과 검찰의 긴장관계는 최고조에 달하는 모습이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 ⓒ 연합뉴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 ⓒ 연합뉴스

“살아 있는 권력 수사하라”는 文 말과도 모순

그 과정에서 청와대의 다듬어지지 못한 대응방식이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다. 고 대변인은 12월4일 ‘하명 수사’ 의혹에 대한 청와대 민정수석실 자체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김 전 시장 첩보 자료는 외부에서 제보받은 것이라며 ‘하명 수사’ 의혹을 강하게 반박했다. 청와대 다른 관계자는 “제보자는 공직자이고 정당 소속은 아니다’고 밝혔다. 이런 말들을 들으면 청와대 외부의 제보자가 자발적으로 제보한 것이고, 정치권과는 무관한 공직자인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러한 말들이 나온 지 몇 시간 만에 최초 제보자는 송철호 현 울산시장의 측근인 송병기 울산시 부시장인 것으로 밝혀졌다. 더구나 송 부시장은 제보 경위에 대해 “정부에서 여러 가지 동향들을 요구했기 때문에 그 동향들에 대해 파악해서 알려줬을 뿐”이라고 밝혀 청와대와는 반대되는 주장을 내놓았다. 

의혹의 불을 끄려고 했던 청와대의 설명이 오히려 머쓱해지고 분위기가 다시 반전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청와대 측은 극단적 선택을 한 수사관이 제보 수집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데 해명의 초점을 두었지만, 전체적인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채 부실한 발표를 내놓았다는 지적을 자초했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 이렇다. 대통령의 친구인 여당 울산시장 후보 캠프에 소속된 인사가 제보한 비위 첩보가 청와대를 통해 경찰에 이첩되어 그에 대한 수사가 선거 직전에 이루어졌고, 그 영향으로 여당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 청와대 인사의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는지는 아직 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선거 개입 여부에 대해 검찰이 수사할 만한 의혹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성난 표정을 지으며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 할 것이 아니라 조용히 수사를 지켜보는 것이 적절한 태도일 것이다. 

검찰 수사가 불만스럽다고 해서 여권세력이 검찰을 공격하고 나서는 데는 근본적인 모순이 있다. 애당초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한 것도, 그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 주길 바란다”며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수사를 주문했던 것도 문재인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그렇게 말해 놓고 막상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하니 검찰을 향해 경고를 거듭하는 여권의 모습은 언행의 불일치라는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 ⓒ 시사저널 박은숙
이해찬 민주당 대표 ⓒ 시사저널 박은숙

특별감찰관 자리 3년 넘게 공석인 것도 문제

조국 사태 이래로 검찰 수사를 대하는 여권의 태도를 보면 억울하고 분하다는 집단적 정서를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정의로운 세력이고 나쁜 짓을 할 사람들이 아닌데 우리를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부당하며 참기 어려운 일이다. 진짜 불의한 세력은 따로 있는데 자꾸 우리 쪽 사람들을 문제 삼는 데는 정치적 음모가 깔려 있는 것이다. 대체로 그런 생각이 여권 세력의 머릿속에 담겨 있는 것으로 읽힌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선의를 믿는다. 하지만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일탈의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있어왔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 때는 재임 중에 아들이,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때는 대통령 퇴임 후나 재임 중에 친형이 구속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검찰 수사를 비난한 일은 없었다. 그들이라고 불만이 없었을까. 하지만 수사에 영향을 주려 한다는 국민의 시선을 먼저 의식했을 것이다. 

카뮈의 소설 《전락》에 나오는 주인공 클라망스는 약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정의로운 변호사다. 그는 강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여자를 구하지 않고 지나친 뒤,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지 않았다는 심판을 받게 될까 두려워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심판이 있기 전에 스스로 참회하며 자신을 심판한다. “자기 자신을 심판함 없이 남을 심판하기란 불가능한 일인즉, 남을 심판할 권리를 얻기 위해서 우선 자신을 통렬히 비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판자는 모두 마침내는 죄인이 되고 마니까, 길을 반대로 잡아서 죄인의 직책을 다하여 나중엔 심판자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했어요.” 클라망스는 여자를 강에 뛰어들게 만든 그 시대의 다른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 자기를 먼저 심판했다. 남을 심판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심판해야 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검찰 수사를 통해 한나라당의 ‘차떼기’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 또한 대선자금 문제로 감옥에 가야 했다. ‘거악(巨惡)’을 단죄하려면 자신들의 잘못도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하는 것이 집권세력의 엄정한 태도일 것이다. 타인들의 적폐에 대해 추상같이 엄정했던 정부라면 자신들에게 있을 수 있는 적폐에 대해서도 동일한 잣대로 심판해야 정의로운 심판자의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정의의 잣대가 이중적일 때 그 정의는 존엄성을 잃고 길거리에서, 술자리에서 조롱받게 된다. 

프랑스 철학자 제라드 벵수상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정의롭다고 믿을수록, 또 이러한 믿음에 만족할수록 나는 덜 정의롭다.” 나의 정의를 과신하지 말고 내가 행했을 수 있는 불의를 끊임없이 의심하라는 얘기다. 대통령과 특수관계에 있는 사람의 비위행위를 감찰할 특별감찰관 자리가 집권 3년이 넘도록 공석인 것도 우리에게는 감찰이 필요 없다는, 자신들의 정의감에 대한 자만으로 비춰진다.

검찰 개혁은 해야 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권력의 잘못은 의심도 수사도 하지 말라는 것이 검찰 개혁은 아니다. 검찰 개혁의 구호가 살아 있는 권력의 방패가 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국정원·검찰·국세청·경찰·감사원 등 권력기관을 감시하고 인사에도 직접 관여하는 엄청난 힘을 가진 권력 위의 권력이다. 검찰이 개혁되어 국민의 감시를 받아야 함과 마찬가지로, 민정수석실 또한 권력 행사의 적절성에 대해 감시받는 것이 필요하다. 의혹이 있다면 수사받는 것이 당연하다. 성역이 인정되지 않는 시대다. 화내지도 압박하지도 말며 수사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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