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최씨의 심장 세포 살리는 치료법 있어도…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3 14:1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줄기세포 치료, 세계적 검증받았어도 국내에선 행정상 ‘불법’

최아무개씨(38)는 11월18일 회사 동료들과 회식 중 급성 심근경색으로 응급실로 실려 갔다. 스텐트 시술로 막힌 혈관을 뚫어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실제 치료받기까지 5시간 이상 걸려서 심장 근육 일부가 괴사해 심장 기능의 50%를 잃었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심장이 멈출지 모르는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는 "심근경색 후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호흡이 가쁘다"고 말했다. 

갑자기 심근경색이 생기면 치료받아도 심장 근육 세포가 죽기 때문에 심장 기능이 떨어진다. 이런 사람에게 필요한 치료법 찾기 위해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10년 이상 연구를 거듭했다. 그 결과 환자의 줄기세포를 이용하면 심장 근육의 재생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16편의 논문을 란셋 등 세계적인 의학저널에 게재해 세계 전문가들의 검증도 받았다. 이른바 '매직셀' 치료법이다.

김효수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환자의 골수에서 줄기세포를 뽑아서 다시 주입하는 게 아니다. 유도제로 골수의 줄기세포가 말초혈관으로 모이게 한 후 심장으로 보내는 방식이 우리가 개발한 고유의 기술력"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제공=급성 심근경색 환자 최씨가 보건 당국에 보낸 줄기세포 치료 탄원서
서울대병원 제공=급성 심근경색 환자 최씨가 보건 당국에 보낸 줄기세포 치료 탄원서

 

물론 매직셀 치료로 심장이 발병 이전처럼 정상을 되찾는 것은 아니다. 심장 혈관이 막힌 위치나 환자의 나이 등에 따라 효과가 다르다. 예컨대 환자가 젊을수록 줄기세포가 신선하므로 더 효과적이다. 김 교수는 "줄기세포가 근육 세포로 분화하는 게 아니다. 급성 심근경색 후 여러 요인으로 심장 근육 세포가 비실대다가 괴사하는데 그 기간이 4~6주다. 이 기간에 줄기세포 치료를 하면 죽어가는 심장의 근육세포 일부를 회생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이 치료법은 국내에서 불법이다. 신의료기술로 인가를 받아야 현장에서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신의료기술 인가를 담당하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그동안 매직셀 치료법에 대한 인가를 미뤄왔다. 

최씨의 경우 12월18일까지 줄기세포 치료를 받아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스텐트 시술을 받은 지 1개월이 넘어가면 심장 근육 세포가 완전히 죽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연구팀이 15년이라는 오랜 기간 몰두해온 연구가 결실을 보게 됐다. 이 순간에도 매직셀 치료법이 필요한 환자가 있지만 행정적 절차로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강조했다. 

심근경색 환자 최씨는 줄기세포 치료 인가를 촉구하는 청원서를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보냈다. 그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줄기세포 치료를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치료받을 수 있는 시간이 며칠 남지 않았다. 비록 나는 그 치료를 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후에 생길 다른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청원서를 냈다"고 말했다. 

심장 질환은 국내에서 암 다음으로 사망률이 높다. 질병관리본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심근경색 환자는 11만여 명이고 10만 명 당 사망률은 62.4명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