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올해의 베스트셀러] 문학의 시대 저물고, 에세이 시대 오나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24 10:00
  • 호수 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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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도서 10선

교보문고가 올해 베스트셀러를 발표했다. 예상한 대로 문학은 지고, 가벼운 읽을거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문학 작품의 몰락은 한국 작품, 일본 작품 가리지 않았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일상에서 자신의 감정 포인트를 건져내 풀어낸 에세이들이다. 베스트셀러 톱 10에 든 책도 대부분이 에세이고, 판매 부수의 총계를 내도 절대적이다.

경제경영은 후반기에 힘을 내고 있고, 자기계발도 어느 정도의 위상을 장악하고 있다. 베스트셀러에서 문학의 위기는 결국 마니아층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고, 결과적으로 출판시장의 위축을 말할 수 있다. 픽션과 논픽션을 오간 《82년생 김지영》이 밀리언셀러의 기적을 되풀이할 수 있을지보다는, 다시 문학 작품의 전성시대가 올 수 있을지가 궁금해지는 한 해였다.

에세이 일변도의 상위권

올 베스트셀러 상위권 톱 3는 모두 에세이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가 1위고, 혜민 스님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과 김수현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가 각각 2·3위를 차지했다. 다양한 장르의 소설로 광범위한 팬층을 가진 김영하 작가의 이 책은 216페이지의 두껍지 않은 책이다. 그는 책 자체도 있지만 ‘알쓸신잡’ 등 다양한 방송이나 팟캐스트 등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구축했고, 그런 요소들이 책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은 작가다. 《여행의 이유》는 비자를 받지 않은 상태로 도착한 중국 상하이 푸동공항에서 추방당하는 에피소드부터 시작해 자신이 생각하는 여행의 단상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여행담보다는, 여행을 중심으로 글쓰기, 타자를 보는 시각, 낯선 문화를 보는 경이 등을 작가다운 예민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혜민 스님의 책도 출간 후 베스트셀러에 있다가 완만한 하강곡선을 긋는 에세이집이다. 나, 가족, 삶, 우정, 외로움, 수양 등의 키워드를 주면서 독자들을 만난다. 김수현 작가의 책은 2016년 11월 출간돼 3년째 연간 베스트셀러 톱 5를 차지하고 있다. 젊은 웹툰 작가인 저자는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찾는 여정을 웹툰 등으로 쉽게 풀어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넓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체면치레도 못 한 한국문학

한국문학은 체면치레도 못 했다. 영화나 드라마의 도움마저 없었다면 상황은 더 나빴을 것이다. 베스트셀러 톱 10에 든 한국문학은 시에서 나태주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가 8위로 유일했다. 소설에서는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13위, 청소년 문학 손원평의 《아몬드》, 조정래 《천년의 질문 1》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1위를 차지했던 2016년이나 김영하의 《살인자의 추억법》이 9위를 했던 2017년의 영광은 쉽사리 돌아올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문학계에서 그마나 청신호가 있다면 신예 김초엽 작가의 SF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이 3만6000부가량 팔리면서 호응을 얻었다는 것이다.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바이오센서를 만들던 작가는 소설의 공간을 영화 《인터스텔라》나 《인셉션》 같은 부분으로 넓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밖에도 우리 작가 중에서는 조정래의 《천년의 질문》, 김진명의 《직지》, 정세랑의 《옥상에서 만나요》, 정유정의 《진이, 지니》 등이 인기를 얻었다.

그간에 강세를 보였던 일본 소설가들의 역할도 많이 쇠퇴했다. 야쿠마루 가쿠의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이 9위로 체면을 세웠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40위권 안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인어가 잠든 집》을 올린 정도였다.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은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선두주자인 저자가 15년 후 출감하는 두 사람을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설정을 통해 독자에게 찾아온다. 가진 것이 없어 낙심하고 살아가는 주인공 무카이는 우연히 한 노파를 만나 친해진다. 얼마 후 노파는 자신의 전 재산을 줄 테니, 자신의 딸을 살해하고 감옥에 있는 두 사람이 출소했을 때, 대신 살해해 줄 것을 요구한다. 암에 걸린 노파가 죽을 거라는 판단에 결국 그 일을 수락한다. 이후 노파의 돈으로 인해 안정적인 삶을 살지만, 15년이 지난 날 출소한 두 사람에 관한 편지가 그에게 도착한다. 책 홍보 트레일러가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킨 이 책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낄 수 있었다.

문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6위를 차지한 다니엘 콜의 《봉제인형 살인사건》이었다. 역시 트레일러를 통한 홍보로 재미를 본 이 책도 스릴러 소설이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울프 형사의 집 맞은편에 6명의 시체를 조각 내서 만든 시신이 발견되면서 런던이 뒤집히는데, 범인이 다음 희생자를 지목하면서 사건은 더 혼란에 빠진다. 새로운 희생자로 런던 시장부터 울프 형사까지 지목됐기 때문이다. 공감이 쉽지 않은 내용을 잘 펼쳐낸 스릴러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인문, 자기계발서도 꾸준한 인기

에세이에 이어 많이 팔린 책은 자기계발서다. 4위 임홍택의 《90년생이 온다》는 경제경영으로도 분류되지만 자기계발서에 가깝다. 7위인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나 셀레스트 헤들리의 《말센스》, 조윤제의 《다산의 마지막 공부》도 여전히 호응이 있었다. 임홍택은 1982년생으로 다양한 직장생활을 거친 후 조직 내 세대 소통법과 신세대 마케팅 방법에 대한 전문 강사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다. 《82년생 김지영》을 잇는 버전으로 쓰인 트렌드 분석서이자 자기계발서라고 할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아이들로 적지 않은 숫자가 있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비교적 잘 맞는 30대들의 트렌드와 적응법을 잘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문에서 인기를 끈 책은 세계적인 경영·인사 컨설팅펌 콘페리헤이그룹의 시니어 파트너인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로 5위였다. 현장에서 철학적 사고로 문제를 해결해 온 경험을 살려 유수의 비즈니스 스쿨에서 ‘지적 생산 기술’ ‘지적 전략’을 가르쳐 온 저자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무기는 철학이라고 말하고, 현대에서 차용할 만한 철학자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정리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정치·사회에서 도드라진 보혁 대결

이 밖에도 인문 분야에서 널리 읽힌 책은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 최승필의 《공부머리 독서법》,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였다. 《공부머리 독서법》은 교보문고 집계에서는 16위였지만, 인터넷 서점 예스24의 올해(1~11월) 종합 베스트셀러에서는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중·고등학교로 갈수록 아이들이 차이를 보이는 것은 언어 능력이고, 언어 능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독서라는 취지에서 독서형 인재가 되는 방법을 제시한다.

정치나 사회 분야에서 눈에 띈 책은 이영훈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와 김웅의 《검사내전》 등이다. 보수 인사로서 명성을 얻은 이영훈 교수의 책은 진보단체와 보수단체의 기싸움을 바탕으로 적지 않은 돌풍을 일으켰다.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라는 부제를 가진 법무연수원 김웅 교수의 책은 12월에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주목받을 여지가 더 많은 책이다.

역사 방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약간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책들이 주목을 받았다.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김용옥의 《우린 너무 몰랐다》 등이 인기를 끌었고, 지난해 10위를 기록했던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도 꾸준히 팔렸다. 해방공간과 제주 4·3, 여순민중항쟁의 정치적 맥락을 다룬 《우린 너무 몰랐다》는 김용옥 스스로 무지했던 자신을 성찰하면서 현대사에 접근했고,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미처 몰랐고, 알 수도 없었고, 잘못 알려지기만 했던 우리 현대사를 다시 정리하고자 쓴 책이다. 김용옥은 금년에만 이 책 외에도 5권의 책을 출간해 인문 출판계에서 상당한 역할을 해냈다.

이 밖에도 예술에서는 팟캐스트 ‘방구석 미술관’을 운영하는 조원재 미술평론가의 《방구석 미술관》이 대중의 호응을 받았고, 여행 분야에서는 《이탈리아 데이》와 《스페인 데이》를 출간한 테라출판사의 시리즈와 《프렌즈 다낭》 《프렌즈 스페인 포르투갈》을 베스트에 올린 중앙북스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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