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에 맞는 재해 복구 방식 찾아야”
  • 안성모 기자 (asm@sisajournal.com)
  • 승인 2019.12.22 11:00
  • 호수 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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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포항 지진 2년’ 조사차 한국 온 이인자 일본 도호쿠대 교수
“재난 후 사람뿐 아니라 집도 점차 병에 걸린다”

이인자 일본 도호쿠대 교수가 12월13일 3박4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포항 지진 2년 후’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는 이 교수는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후 그해 5월부터 피해 지역을 직접 찾아 재해 복구와 관련한 연구를 꾸준히 해 왔다. 재해 발생 후 희생자 유족과 생존자들, 그리고 공동체의 재건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지켜봤다.

12월15일 오후 포항 현장에서 막 서울로 올라온 이 교수를 광화문 인근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이 교수는 “포항 지진은 재해 연구에서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며 “사람에게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처럼 재해를 입은 집도 점차적으로 병에 걸린다”고 지적했다. 지진 당시 작은 피해를 입은 집도 시간이 지나면서 피해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피해보상이 이뤄질 경우 정부와 주민 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한국만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보통 일본처럼 축제를 하려고 하는데 일본의 경우 매년 흥겹게 해 오던 행사이기 때문에 하는 거다”며 “남의 것 억지로 가져온다고 되는 게 아니라 우리 문화와 맞는 걸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향후 포항을 지속적으로 방문해 재해 복구에 관한 비교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 시사저널 고성준
ⓒ 시사저널 고성준

어떤 일로 한국에 오게 됐나.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부터 한국학 씨앗형 연구지원을 내년 6월부터 3년간 받게 됐다. 재일한국인과 재해 연구가 테마다. 이 연구의 특징 중 하나가 한국학을 공부하려는 일본 학생들과 함께 연구한다는 거다. 지금까지 혼자서 연구했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지도 학생과 함께 와서 조사를 했다.”

포항 지진 피해 복구와 관련해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고 있나.

“포항 지진은 재해 연구에서 아주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재해로 인해 정신적 충격이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트라우마센터가 생긴 거다. 세월호를 통해서도 많이 배웠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뿐 아니라 집도 점차적으로 병에 걸린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도 잘 몰랐던 사항이다. 보통 피해 상태를 정도에 따라 소파(小破), 반파(半破), 완파(完破)로 나누는데, 지진 당시에는 벽에 금만 간 소파 상태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물이 새고 천장이 무너지는 등 반파나 완파 상태가 될 수 있는 거다. (포항 지진 당시) 소파 판정을 받았던 공동주택 사람들이 태풍 때문에 대거 피난소로 다시 와 있다. 90세대 이상이다. 그런데 국가에서는 이미 (피해배상이) 다 끝난 걸로 돼 있다. 직접 소파 판정을 받았던 집에 가 봤는데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이다. 사실 체육관 대피소에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 가 보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소파한 집이라도 익숙한 곳이라 불편해도 그냥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된 거다. 그래서 판정을 굉장히 섬세하게 해야 한다. 재해 방지 대책만이 아니라 재해 후 복구 대책도 세밀해져야 한다.”

대피소 상황은 어땠나.

“정부에서는 대피소를 이제 없애려고 할 수 있다. 문제를 다 해결한 것처럼 여기고 싶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대피소에도 올 수 없는 분들이 있다. 80세가 넘은 허리 굽은 한 할머니의 집에 가 봤는데 천장에서 물이 새서 집 안에 곰팡이가 여기저기 퍼져 있더라. 딸이 장애로 걸을 수 없다 보니 대피소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배상이나 지원 등을 대피소에 와서 등록한 사람에게만 한다는 거다. 등록 안 했으니 못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이 집의 경우도 소파 판정을 받았는데 이후에 누가 보러 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한 번 책정되면 번복 안 되니까 그럴 거다. 어쨌든 지혜를 내서 이런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재해 복구 방식이 다른가.

“이번에 시간이 짧아 자세히 보지는 못했는데, (포항 지진 피해 지역인) 흥해에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주민 주도로 뭘 하려고 하는데 사실 주민 주도로 하는 게 어렵다. 주민들을 주인공으로 무대에 올리기는 하지만 이들 스스로 자신이 사는 곳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잘 안 해 준다. 중앙집권적인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나쁘게 보면 서울 사람들의 일자리 창출 정도로 비친다. 물론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다. 일본도 그렇다. 그런데 그 정도가 좀 심한 것 같다. 지방을 인재가 살 수 있는 터전으로 만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맨날 꽃만 심으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또 꽃만 심어야 한다. 나무를 키워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간이 걸린다.”

정부와 주민 간 갈등이 여전히 남아 있다.

“서로 불신이 있더라. 주민들은 자신들에게 쓰라는 돈을 왜 저렇게 쓰느냐고 생각한다. 일본에는 주민들이 다 할 수 있도록 매뉴얼이 마련돼 있다. 영수증 첨부 등 일하는 데 필요한 룰을 미리 세워서 한다. 그러면 못 할 게 없다. 문화와 역사가 다르니까 굳이 일본과 비교하지 말고 우리의 장점을 살려 나가야 한다. 우리식 재생이 중요하지 않겠나. 문제는 주민 주도가 잘 안되는데 잘되는 것처럼 보고서를 쓴다. 정부 입장에서는 주민 주도로 해야 하니까 말 잘 듣는 사람만 모으고 이들에게 뭘 해 주려고만 한다. 그러면 서로 신뢰만 없어진다. 서로 존중하면서 해야 한다.”

재해 복구 과정에서 지역 주민 간의 끈끈한 공동체 의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일본과 비교할 때 텀(term)이 긴 공동체가 좀 형성이 안 돼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역재생을 위해 축제를 하고 그러는데 이론적으로는 맞다. 흥해도 축제를 하려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 축제라는 게 태어나서부터 매년 접해 온 거다. 대학에 가더라도 축제 때는 고향에 내려간다. 재해를 입었어도 축제를 하고 싶어 하는 거다. 공동체 축제라는 게 이런 거다. 우리는 축제가 아닌 다른 걸로 할 수 있을 거다. 흥에 겨워 늘 해 오던 걸 해야 한다. 우리 문화와 맞는 그런 걸 찾아야 한다. 남의 것을 억지로 가져온다고 되는 게 아니다. 눈에 안 보이는 데 돈을 쓰는 게 선진국이다.”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일본에서는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면 사람들이 용서를 안 하는 편이다. 주민들도 이용 안 당하려고 노력한다. 자기 일은 자기가 주장해야 한다. 힘들어도 피해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면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으로 이익을 보려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 굉장히 민감하다. 어쩔 땐 너무 냉정하게 보일 때도 있다. 우리의 경우 아픔을 함께하는 마음이 크다. 정(情)이 있고 좋은 문화다. 자칫 잘못하면 정치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포항은 지금 순수하다고 본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포항을 계속 오가며 비교연구를 하려고 한다. 이번에 발견한 게 집도 나중에 또 다른 충격을 주면 사람처럼 반응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재해 연구에서 다루지 않았던 주제다. 일본은 어떻게 판정하는지 알아보고 한국은 어떻게 하면 될지 연구하고 싶다. 지역사회에 대해서도 좀 중점을 두고 보려고 한다. 일본 공동체를 살리는 게 축제라면 우리나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재밌게 할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다. 이를 통해 한국의 힘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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