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그리고 이병철과 정주영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24 17:00
  • 호수 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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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 정신 보여준 재계 개척자 vs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기업인

김우중 회장은 조금 피곤해 보였다. 많이 힘들겠다고 위로를 건넸다. 그는 웃으면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요즘 사실 자꾸 화가 난다고 했다. 집에 가면 아내는 울고만 있고, 뭐라 말을 걸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회사에 나오면 기분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사장들은 좋지 않은 얘기, 어렵다는 얘기만 늘어놓는다고 했다. 이해할 수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던 아들을 잃었다. 그것도 교통사고로 말이다. 아내한테도 할 말이 없을 것이었다. 사고는 미국에 온 어머니를 위해 아들이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자동차를 몰고 오다 일어났다. 일이 바쁜 직원들한테 편의를 부탁하지 말라고 부인에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한편, 걱정이 되기도 했다. 짜증이 늘어난 회장에게 어려운 얘기들, 말하기 힘든 보고를 올린다는 게 갈수록 힘든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외환위기 7년 전이었다.

ⓒ 시사저널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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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탈하고 격식 차리지 않는 총수

지난 12월9일 김우중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1998년 매일경제신문이 건국 50주년을 맞아 오피니언 리더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을 빛낸 기업인으로 뽑힌 사람은 1위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2위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3위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었다.

김우중 회장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또 있다. 중국과 아직 공식 수교를 맺기 전의 일이다. 출장길에 베이징 공항에서 수행비서 한 사람만을 데리고 내린 그를 우연히 만났다. 그는 생각보다 무척 반가워했다. 내심 베이징에 있는 동안 한번 찾아가서 만나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취재는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만난 수행비서는 회장이 지방에 있는 공장들을 보기 위해 홀로 사흘 일정으로 떠났고, 덕분에 휴가를 얻었다고 했다.

재벌그룹 총수들 가운데 김우중 회장처럼 소탈하고 격식을 차리지 않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는 1년 동안 창원에 내려가 아무것도 없는 기숙사에 홀로 살면서 현장 근로자들과 함께 먹고 잠자며 아무 거리낌 없이 지낼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부하 직원에게 명령하기보다는 직접 발로 현장을 뛰어야 직성이 풀렸다. 훌륭한 자질이었으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회장이 직접 뛰어다니다 보니 조직이 움직이지 않았다. 대우는 조직으로 일하는 회사가 아니었다. 대우에서 의사결정 권한은 오로지 한 사람, 김우중 회장에게만 몰렸다.

내부적으로 쌓이는 문제들과는 별도로 대우의 성장사도 누적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대우의 성장은 60년대와 70년대, 한국 경제 도약의 시대와 일치한다. 대우는 특유의 차입과 인수합병(M&A)을 통해 고속 성장했다. 여기에 정계와 관계, 그리고 금융권의 네트워크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런 배경 때문에 정주영 회장은 김우중 회장을 싫어했다. 아마 80년 신군부의 압력으로 동생인 정인영 회장의 현대양행을 넘긴 일이 있고 난 뒤, 개인적인 감정이 겹쳐진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병철 회장 역시 그를 싫어했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에게 함께 사업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게 훗날,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빅딜이 무산된 이유 중 하나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물론 김 회장은 정부가 골치 아파 하는 일들을 해 줬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정부는 부실을 떠안아준 김우중 회장에게 정책금융으로 보상했다. 경제발전을 하려면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야 한다는 것이 김우중 회장의 말이었다. 합심해 노력하는 걸 놓고 정경유착이라고 매도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리한 기업 확장은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했고, 늘어난 자산에 비해 내실이 부족한 이유였다.

대우의 몰락은 정부의 기획 해체 때문으로, 대우는 타살당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 있다. 사실 당시 대우에 치명상을 입힌 것은 금융 당국의 회사채 발행 제한 조치였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문 내용 그대로 당시 대우는 빌린 돈에 대한 이자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외형 확장을 계속했다. 모두가 부채를 줄일 때 대우는 오히려 빚을 더 늘렸다. 대우의 차입금은 1997년 말 29조원에서 1998년 말 44조원으로 오히려 15조원 늘었다. 환차손만 8조5000억원이었던 상황에서 말이다. 물론 외환위기만 없었다면 대우가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부질없는 얘기일 뿐이다. 대우의 몰락은 국가경제 전체에 큰 상처를 남겼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30조원의 국민 세금이 투입됐다. 41조원 규모의 분식회계는 전 세계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다.

3김 가운데 두 사람은 대통령을 했지만 다른 한 사람, 김종필은 끝내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김종필은 인간적으로 대단히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독서를 사랑했으며, 특히 동양 고전에 밝았고, 그림 그리기를 즐기고 바둑을 좋아했다. 밴드와 함께 무대에 올라 아코디언을 켜는 멋쟁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될 수 없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지 못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충청도라는 지역적 한계, 취약한 지지 기반, 몸을 던지지 못하는 리더십, 마지막 순간 항상 주춤하는 권력의지 등.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민주화라는 시대의 추세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 ⓒ 시사저널 포토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 ⓒ 시사저널 포토

김우중의 열정과 집념 그리워

김우중 회장도 그렇다.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한때 재계 자산 규모 2위의 재벌그룹을 일궈낸 김우중 회장은 말 그대로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는 초창기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가 정신을 보여준 개척자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정경유착으로 성장했다가 과잉투자의 부작용으로 추락한 기업인이기도 하다. 지난 세월 한국이 이룩해 낸 초고속 성장은 기적과도 같았다. 김우중 회장은 그 기적의 빛과 그늘을 그대로 드러내는 상징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병철의 삼성과 정주영의 현대는 위기를 넘겼고 김우중의 대우는 해체됐다. 생존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공의 필요조건이다. 김우중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무슨 수를 쓰든 기업을 일단 살려 놨어야 했다.

시대는 달라졌다. 그때 맞았던 것이 지금은 아니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지금은 김우중의 개성, 대우의 성장 방식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열정과 집념이 그립기는 하다. 김우중 회장만큼 부지런히 일한 사람은 없었다. 새벽에 일어날 때는 눈이 떠지지 않아 안약을 넣었다. 잠이 부족하다 보니 어디서든 잠깐 쉬는 시간만 있으면 잠에 빠져들곤 했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차를 타고 가면서 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한때 크게 성취했으나 끝내는 실패했지만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던 사람, 김우중 회장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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