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골프 女帝’ 고진영 “내년 목표는 무조건 올림픽 금메달”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26 12:00
  • 호수 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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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세리-박인비 계보 잇는 고진영 “한국 투어에서 단련된 힘 큰 도움”

“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2020 도쿄올림픽에서 꼭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선배 박인비의 금메달 획득 장면을 TV로 지켜봤던 고진영(24·하이트진로)은 인터뷰에서 내년 8월 도쿄올림픽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운동선수로서 국가를 대표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 맨 위에 선다는 것은 또 다른 영광이자 자부심일 터. 현재 세계랭킹 1위인 그가 지금의 순위를 잘 유지한다면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진영이 11월21일(현지시간) 올 시즌 LPGA 최종전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 AFP 연합
고진영이 11월21일(현지시간) 올 시즌 LPGA 최종전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 AFP 연합

“잘 안될 때는 ‘괜히 왔나?’ 하는 갈등에 빠진 적도”

2019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는 한마디로 ‘고진영의 해’였다. 올해의 선수상, 상금왕, 최저타수상(베어트로피) 등 전관왕에 올랐고, 12월18일 현재 33주간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한국 선수가 LPGA투어 올해의 선수가 된 건 2013년 박인비, 2017년 박성현·유소연(공동 수상) 이후 네 번째. LPGA 통산 25승을 거둔 ‘한국 골프의 전설’ 박세리도 올해의 선수상은 받지 못했다. 지난해 신인왕까지 거머쥐었던 고진영은 올 시즌 메이저 2승(ANA 인스피레이션, 에비앙 챔피언십)을 포함해 4승을 챙기는 등 거침없이 질주했다.

한국여자골프(KLPGA)투어에서의 고진영은 1인자와 거리가 멀었다. 스스로 “신인 때는 백규정, 2년 차 때는 전인지, 3년 차 때는 박성현에게 밀렸다”고 말할 정도다. 2014년 KLPGA 데뷔 후 통산 10승을 거뒀음에도 시즌마다 KLPGA를 대표하는 선수로 꼽히진 못했다. 고진영의 진가는 KLPGA가 아닌 LPGA에서 빛을 발했다. 2018년 2월 LPGA 공식 데뷔전이었던 ISPS 한다 호주 오픈에서 정상에 오르며 데뷔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역대 두 번째 신인으로 부상한다. 그해 신인왕에 오른 고진영은 ‘2년 차 징크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2019년을 내달린 덕분에 어느새 LPGA 통산 6승을 기록 중이다. 고진영은 자신이 걸어온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비록 KLPGA투어에서 1인자에 오르지는 못했어도 힘든 줄 모르고 골프를 했다. 끈기 있게 버티고 이겨낸 덕분에 LPGA 무대에 도전할 수 있었다. 한국 투어에서 단련된 힘들이 미국 투어 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고진영이 LPGA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2017년 10월 인천 영종도 스카이72골프클럽에서 열린 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우승이었다. ‘비회원’ 자격으로 LPGA 대회에 도전한 9번째 무대에서 첫 우승과 함께 LPGA로 향하는 직행 티켓을 따낸 것이다. 당시만 해도 고진영은 이듬해 LPGA 도전을 잠시 망설였다. 새로운 투어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 망설임을 애써 뒤로하고 도전을 선택한 덕분에 지금과 같은 결과가 뒤따랐다고 본다. 잘될 때는 ‘좀 더 빨리 올걸’ 하는 생각이 들지만 잘 안될 때는 ‘괜히 왔나?’ 하는 갈등에 빠진 적도 있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좋은 성적이 뒷받침돼야 동기부여가 가능해지더라. 골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에서 골프를 새롭게 배워 나갔다.”

 

‘다 해먹겠다’ 해프닝 통해 오히려 ‘강철 멘털’ 키워

고진영의 장점 중 하나는 ‘강철 멘털’. 여러 구설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걸었다. 가장 유명한 일화가 ‘다 해먹겠다’ 해프닝이다. 데뷔 2년 차였던 2015 시즌 KLPGA 미디어데이에서 고진영은 “지난해 1승을 했지만 올해는 ‘다 해먹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가 ‘악의적이다’ ‘건방지다’는 비난으로 마음고생을 톡톡히 했다.

“당시에는 나 자신을 강하게 조련하기 위한 다짐 같은 말이었다. 그런데 미디어데이 이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더라. 그때 나온 기사들의 댓글을 모두 읽어봤다. 비난의 글들이 도배되다시피 했다.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지려면 좋은 성적을 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자칫 흔들릴 수도 있었지만 ‘정신줄’ 부여잡고 정말 열심히 골프를 쳤다.”

2015 시즌 고진영은 시즌 3승을 거뒀지만 자신의 말대로 다 해먹지는 못했다. 그러나 2019 시즌 LPGA투어를 평정할 수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투어 생활에서 그가 중심을 잡았던 배경에는 자신감과 승부욕이 자리한다. KLPGA에서는 그의 당당함이 건방진 이미지로 비춰지기도 했지만 LPGA에서는 그의 남다른 자신감이 팬들의 응원을 불러일으켰다. 고진영이 꼽는 올 시즌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 순간이다.

“그 대회 마지막 라운드를 (김)효주, (박)성현 언니와 함께 했는데 당시 1, 2위와 타수 차이가 있었고 나와 (박)인비 언니가 공동 3위, 2라운드까지 단독 선두였던 (이)미향 언니와 펑산산(중국)이 1타 차로 뒤에서 우승을 노리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악천후로 경기가 지연되는 동안 아는 오빠가 내게 우승할지도 모르니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해 주더라.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경기 재개 후 집중해서 풀어나간 덕분에 버디 5개, 보기 1개를 기록하며 4언더파 67타로 대회를 마칠 수 있었다. 챔피언조에서 한국 선수들과 함께 대결을 펼친 건 미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 더 의미가 컸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로 엄청난 성적을 거둔 시즌이지만 시즌 중반 위기를 맞이했던 적이 있었다. 고진영은 위기의 순간을 스승인 이시우 코치와 함께 극복해 나갔다. 한국에 있는 이 코치에게 SOS를 친 후 시카고에서 만남을 가진 후 4박5일 동안 개인 레슨을 받은 것이다.

“코치님 도움으로 전지훈련 때 완성시켰던 스윙을 되찾을 수 있었다. 스윙이 제자리를 찾으면서 자신감이 회복되었다. 이후 다우 그레이트 레이크스 베이 인비테이셔널에서 안정감 있는 스윙을 보이며 좋은 성적을 올렸고,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으로 이어졌다. 코치님과는 내년 1월 샌디에이고 전지훈련도 미리 예약해 놓은 상태다.”

고진영은 한국에서와 달리 미국에서는 혼자 투어 생활을 해 나간다. 옆에 매니저가 있지만 부모님 도움 없이 골프를 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홀로서기의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내 인생을 스스로 설계해 나가는 데 대한 설렘도 존재한다. 홀로서기를 통해 세상을 접하고 배운 부분도 많다. 항상 어려운 환경에서 골프 뒷바라지를 해 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

인터뷰 말미에 고진영에게 골프의 매력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포기하고 치면 잘 맞고, 욕심내고 치면 안 맞는 게 골프다. 그 중간 지점을 찾으려고 계속 치게 되는 게 골프가 갖고 있는 매력”이라고 말한다. 새해 소망으로 “건강하게 투어 생활을 하는 것과 올림픽 금메달”이라고 똑 부러지게 대답하는 고진영의 바람이 현실로 이뤄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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