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인물-스포츠] 지금 손흥민에게 필요한 건 뭐?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23 10:00
  • 호수 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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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월드클래스’의 전설…‘우승 트로피’ 절실

2019년의 손흥민은 축구 커리어에서 새로운 고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를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로 이끌며 유럽에서도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시장에서 인정받는 가치인 추정 이적료는 1000억원이 넘는다. 아시아 출신 최고의 스타로 인정받았던 차범근의 벽마저 뛰어넘었다.

2010년 만 18세의 나이로 프로무대에 데뷔한 손흥민은 올해 10년 차를 맞았다.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에서 비범한 재능을 보인 그는 바이엘 레버쿠젠을 거치며 유망주의 틀을 깨고 경쟁력 높은 공격수로 도약했다. 2015년 여름 토트넘 이적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라는 세계 최고 무대로의 도전을 이끌었다. 토트넘에서의 첫 시즌은 부상과 부진으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이후 세 시즌 동안 59골을 넣으며 한 시즌 평균 20골을 책임질 수 있는 정상급 선수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 PA 연합
ⓒ PA 연합

경기력 지표에서 해리 케인·델리 알리 제치고 팀 MVP

만 27세로 축구 선수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나이로 접어든 손흥민은 올 시즌 역대 가장 뛰어난 모습을 장시간 이어가는 중이다.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 산하 연구기관인 국제스포츠연구센터(CIES)가 발표한 2019~20 시즌 유럽 축구 5대 리그(잉글랜드·스페인·독일·이탈리아·프랑스) 소속 선수들의 전반기 경기력 지표에서 손흥민은 토트넘의 MVP를 차지했다.

공격 저지 10점, 볼 회복 10점, 볼 배급 53점, 돌파 81점, 기회 창출 85점, 슈팅 72점 등 6개 부문에 걸쳐 CIES 풋볼 인덱스 82점을 받았다. 팀의 주포인 잉글랜드 국가대표 공격수 해리 케인(75점), 플레이메이커 델리 알리(79점)를 여유롭게 제친 수치다. 현재 팀에서 경기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실제로 손흥민은 2019년 한 해 동안 토트넘에서만 20골을 넣었다. 특히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9골로 유럽 전체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가 됐다.

지난 12월8일 열린 번리와의 홈 경기에서 70m가량을 ‘폭풍 질주’하며 성공시킨 득점 장면은 2019년 올해의 골로 손색없다는 평가가 미디어와 팬들 사이에서 쏟아졌다.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기록도 그의 발에서 나왔다. 한국 축구 불멸의 전설인 차범근 전 감독이 현역 시절 기록한 한국인 유럽 프로축구 개인 최다골(121골) 기록도 넘어섰다. 

세계 최고의 선수를 꼽는 투표인 발롱도르에서도 그는 한국 선수 최초로 득표에 성공했다. 최종 30인 후보에 이름을 올린 그는 투표권을 지닌 한국, 그리스, 핀란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기자로부터 5순위 투표로 1표씩을 받아 4점을 따내 전체 22위에 이름을 올렸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후보에 오른 데다 역대 최다 득표에도 성공한 것이다. 현재 추세라면 당분간 발롱도르 투표에서 손흥민의 이름을 계속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자연스럽게 손흥민의 몸값도 치솟고 있다. 유럽 축구 이적 전문매체인 트랜스퍼마크트는 EPL 선수들의 몸값을 책정하며 손흥민의 몸값을 8000만 유로(약 1041억원)로 평가했다. 이는 리그에서 19위에 해당하는 숫자고, 토트넘 내에서는 해리 케인(약 1953억원), 델리 알리, 크리스티안 에릭센(이상 약 1172억원)에 이은 4위다. 이적료 1000억원 이상을 기록한 선수가 역대 12명뿐이라는 점에서 손흥민의 이적이 실제로 이뤄지면 그 가치는 더 빛난다.

2019년의 손흥민이 더욱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경기력에 기복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 손흥민은 시즌 개막 후 2~3개월 뒤부터 폭발적 활약을 시작하는 ‘슬로 스타터’ 이미지가 강했다. 실제로 2018~19 시즌에도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차출 여파로 체력적인 문제를 겪는 바람에 11월부터 득점포가 본격적으로 터졌다. 하지만 2019~20 시즌에는 초반부터 맹활약 중이다. 근 4년 만에 처음으로 부상이나 차출 없이 시즌 사이의 휴식기를 보내며 몸을 만들었다. 그 결과 올 시즌 손흥민은 골과 도움 모두 탁월한 페이스를 기록하는 전천후 공격수가 됐다.

 

올 시즌 기복 없는 경기력으로 가치 더욱 높여

현재(12월16일 기준) 손흥민은 프리미어리그에서 5골 7도움, 챔피언스리그에서 5골 2도움을 기록하며 도합 10골 9도움을 올리고 있다. 리그의 경우 지난 시즌 최종전에서 받은 퇴장 징계로 1, 2라운드에 결장했지만 벌써 10개가 넘는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도움 순위는 10개를 기록 중인 케빈 데 브라위너(맨체스터 시티)에 이어 2위다. 그동안 골 결정력이 탁월한 선수로 평가받았지만, 올 시즌은 시야도 한층 넓어지며 동료를 잘 활용하는 모습이다.

손흥민의 한 시즌 최다 공격포인트는 18골 11도움을 기록한 2017~18 시즌의 29개다. 시즌 절반을 마치기도 전에 20개에 근접한 현재 페이스라면 새 기록을 쓸 것으로 보인다. 리그 기준으로 시즌 10골-10도움에도 도전한다. 에당 아자르, 모하메드 살라, 리야드 마레즈, 라힘 스털링 등 골과 도움 모두 탁월한 전천후 공격수들만이 달성한 기록이다. 이 기록을 세울 경우 손흥민의 몸값은 한층 더 뛸 수밖에 없다.

지난 11월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을 대신해 토트넘의 지휘봉을 잡은 무리뉴 감독도 손흥민을 향해 절대 신뢰를 보내고 있다. 그가 부임한 뒤 치른 전 경기에 손흥민이 출전했다. 무리뉴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나는 손흥민과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역습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능력을 지녔다” 등의 발언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

2019년을 통해 월드클래스로 도약한 손흥민에게 남은 과제는 자신의 커리어에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더하는 것이다. 기록과 몸값 등에서는 차범근·박지성 같은 대선배들의 벽을 넘었지만 위대한 선수라는 평가로 귀결시키는 것은 역시 우승 트로피다.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레버쿠젠 등 중위권 팀을 이끌고 UEFA컵(현 유로파리그)을 두 차례 정복하며 더 인정받았다. 박지성도 당대 최고의 팀이었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며 프리미어리그 4회, 챔피언스리그 1회 등 13개의 트로피를 들었다.

반면 손흥민은 소속팀에서 아직 단 1개의 트로피도 들지 못했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의 아쉬움이 더욱 컸던 이유다. 그가 거친 팀들이 우승에 도전하기엔 늘 아쉬움이 남는 팀이라는 측면에서 손흥민이 더 확실한 우승 후보로 이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도 레알 마드리드·바이에른 뮌헨·유벤투스 등 각 리그 최강자로의 이적설이 나온다. 그러나 무리뉴 감독을 중심으로 우승에 도전하는 팀으로의 재편을 꿈꾸는 토트넘도 에이스를 쉽게 내줄 생각은 없다. 이적이 가능한 겨울과 여름이 다가오면 손흥민을 둘러싼 루머는 더 쏟아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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