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누구를 위한?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23 09:00
  • 호수 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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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3일 MBC 《PD수첩》이 ‘검찰 기자단’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검찰 출입 기자들과 현직 검사의 증언을 통해 폐쇄적인 기자단 운영 방식 등을 고발한 이날 방송 내용에 대해 언론사의 대법원 기자단과 대검찰청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고, 한국PD협회가 또다시 그것을 반박했다. 올 들어 유난히 크게 불거졌던 검찰과 언론의 관계가 이로써 한 번 더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 유튜브 캡처
MBC PD수첩 ⓒ 유튜브 캡처

#. 매년 민주 언론 창달에 기여한 인물을 뽑아 시상하는 ‘송건호언론상’의 제18회 수상자로 특이하게도 언론인이 아닌 현직 검사가 선정되었다. 울산지방검찰청의 임은정 부장검사다. 그는 올해 자신이 속한 검찰 조직에 대해 연이어 쓴소리를 내놓아 이목을 끌었다. 심사위원회는 그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검찰의 오랜 침묵을 깬 그의 신념이, 제도권 언론이 숨죽이던 시절 저항언론 운동을 이끌며 ‘참다운 말의 회복’을 추구했던 송건호 선생의 언론 정신과 부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올해 막바지에 나온 언론 관련 뉴스들이다. 둘 다 미디어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소재인 데다, 한 해를 정리하는 시기에 언론의 현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눈길을 끈다. 부연할 필요도 없이, 2019년은 언론의 마음고생이 심했던 해다. 기자들을 얕잡아 부르는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특히 검찰에서 쏟아져 나온 기사들이 자주 도마에 올랐다. 쓰는 사람들은 ‘알 권리’를 말하고, 보는 사람들은 ‘볼 권리’를 이야기했다. 한 현직 검사는 언론을 향해 대놓고 “제발 소설 말고 기사를 쓰셔라. 어려우면 받아쓰셔라”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속보 경쟁에 따른 논란은 언론이 짊어진 오래된 숙명이긴 하지만, 올해 그 정도가 특히 심했던 데는 검찰 수사 관련 뉴스가 유달리 많았던 탓도 무시하기 어렵다.

기자도 엄밀히 말하면 ‘특권적 직업인’이다. 어떤 사건·사고에 대해 묻고 추궁할 권리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이 만약 그런 행동을 한다면 “당신이 뭔데?”라는 핀잔부터 들을 것이 빤하다. 공인된 매체에 글을 쓸 수 있는 권리는 철저하게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익을 위해서 부여된 것이다. 그런 만큼 기자에게는 자신이 지닌 특권만큼 의무에 투철하고, 누리는 언론 자유만큼 책임도 크게 지라는 요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기사를 쓰기 전에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와 책임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따지고 또 따져보라는 주문이다. 그러므로 올해 겪은 일들을 허투루 넘기지 말고 언론의 최후 보루라 할 수 있는 ‘공신력’을 다지기 위한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공신력이 무너지면 언론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오래전 표지 제목에 조사 하나를 잘못 써 특정 집단 사람들의 마음에 본의 아닌 상처를 안긴 적이 있다. 잡지가 발행된 후 일부 항의가 있어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 일은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거대한 바위 덩어리로 자리 잡아 틈만 나면 자꾸 마음에 치인다. ‘아’ 다르고 ‘어’ 달라서 작은 차이로도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생채기를 남길 수 있는 말과 글의 힘은 여전히 크고 무섭다. 또 한 해를 마감하면서, 지난 1년 동안 내놓았던 말과 글들이 치우침이나 과함 없이 공명정대하고 순정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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