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잼 도시’에서 ‘트렌디 중심지'로 탈바꿈한 대전의 마지막 달동네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2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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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전통 공간에 현대적 해석 시도한 ‘대전 소제동’
원주민들 동의와 참여 부족하단 우려도

언제부턴가 인터넷에서 한 알고리즘 그림이 돌아다녔다. 누군가 볼펜으로 연습장에 그린 ‘지인이 대전에 온다, 어쩌면 좋아!’라는 제목의 그림이었다. 제목에 깨알같이 붙어 있는 ‘노잼의 도시’란 수식어가 이 자조 섞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요약해 준다. 심지어 대전시청에서 공식 페이스북에 이 알고리즘을 시청 버전으로 다시 만들어 게시하기도 했다. 재미없는 도시의 오명을 벗기 위해 대전의 즐길 거리에 대한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모집하는 댓글 이벤트였다.

그런 ‘노잼의 도시’ 대전이 최근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SNS에서 주목받고 있다. 주인공은 대전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리는 소제동이다. 서울에서 ‘익선동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며 유명해진 도시재생 스타트업 ‘익선다다’가 이번에는 소제동에서 판을 벌였다. 낡은 빈집들이 트렌디한 가게들로 채워지기 시작하자, 늘 새롭고 감각적인 경험을 갈구하는 SNS 세대들의 레이더망에 빠르게 포착된 것이다.

대전시 동구 소제동의 철도관사촌 풍경. 1920~30년대 지어진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김지나
대전시 동구 소제동의 철도관사촌 풍경. 1920~30년대 지어진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김지나

익선동 살려 낸 스타트업의 두 번째 도전

소제동은 대전역 동편으로 작은 하천을 면하고 있는 오래된 동네다. 이곳은 신도심이나 다른 도시로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마지막 보금자리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여건이 되는 원주민들은 떠나고 동네는 점차 슬럼화 돼 가는 상황이었다. 재개발 사업이 10년 동안 지연되는 가운데, 익선다다가 새로운 도시재생 모델을 가지고 들어온 것이 지난 2016년의 일이다.

익선동의 옛 한옥 공간이 만들어내는 전통의 아우라가 현대적인 해석을 거쳐 참신한 콘텐츠가 됐듯이, 소제동의 역사적 배경은 이 동네가 뜨게 된 중요한 요인이었다. 일제강점기 소제동에는 철도원들을 위한 관사 건물들이 들어서 촌락을 이루었는데, 지금까지도 건물들이 원래 모습을 잘 유지하고 남아 있어 한옥마을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대전은 1904년 경부선 철도 부설로 빠르게 발전하게 된 도시로, 철도관사촌의 유산은 대전의 중요한 아이덴티티 중 하나임이 틀림없었다. 대전만이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도시의 ‘재미’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익선다다의 시도는 긍정적이라 할만 했다.

하지만 익선다다의 사업 방식에 대해 여전히 많은 비판의 목소리들이 있다. 덕분에 젊은 소비층이 유입되고 동네에 새로운 활기가 생긴 것은 맞지만, 아파트 재건축을 희망하는 주민들의 의견이나 사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고민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익선다다의 도시재생 모델은 전면 재개발 방식과 달리 이 지역이 가진 문화적, 역사적 가치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으나, 문제는 애초에 이곳이 주거지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시재생 스타트업 '익선다다'의 소제동 진출 이후 오픈한 한 음식점. 내년까지 이러한 매장을 20개 이상 열 계획이라고 한다.  ⓒ김지나
도시재생 스타트업 '익선다다'의 소제동 진출 이후 오픈한 한 음식점. 내년까지 이러한 매장을 20개 이상 열 계획이라고 한다. ⓒ김지나

‘주민’ 빠진 도시재생은 자본의 전략일 뿐

도시재생의 핵심은 주민참여다. 공동체가 무너졌다면 다시 회복하고, 전면 재개발로 없애기보다 보존할 필요가 있다면 주민들도 그것에 동의하고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주거지를 상업지역이나 관광지로 만드는 방식에는 주민이 없다. 익선다다 모델이 죽어가는 마을을 잘 나가는 상가로 탈바꿈시켜 이익을 남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면, 지역주민과 소통하는 것에 힘쓰는 노력이 더 필요해 보였다. 옛 건물의 원형을 잘 활용하고 지역의 식자재를 사용한다고 하지만, 주민들이 그것의 가치를 모른다면 단지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한 자본의 전략으로 보일 뿐이다.

소제동과 대전역을 사이에 두고 반대쪽에 위치한 정동마을은 또 다른 도시재생의 치열한 현장이다. 이곳에서는 사단법인 대전공공미술연구원에서 2017년부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이름의 마을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불법 성매매를 비롯한 범죄의 온상이었던 거리는 3년의 시간을 들인 끝에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에서 해제되고 범죄율이 크게 감소하는 성과를 보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못마땅한 눈으로 보던 주민들의 마음도 이젠 어느 정도 얻은 것 같다는 것이 이곳 활동가들의 소감이다.

물론 정동마을에는 전국의 관광객을 불러 모을 만한 이슈는 없다. 그에 비해 익선다다의 도시재생 모델은 빠르게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타난다. 대전시는 정동마을에 익선다다 모델을 적용할지 검토 중이라고 한다. 아마도 익선동과 소제동의 성공을 연이어 목격한 전국의 많은 지자체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익선다다 모델이 얼마나 효과적인가가 아니라, 그런 방식에 주민들도 동의하는가이다. ‘노잼의 도시’에서 탈피하는 것에 급급하기보다, 시민들이 원하는 도시로 만드는 것에 더 집중하는 대전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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