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한국 영화 파급력 할리우드 못지않아”
  • 하은정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28 10:00
  • 호수 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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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백두산》으로 2년여 만에 충무로 복귀한 이병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병헌이다. 그가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2018) 이후 약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영화 《백두산》은 26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로, 개봉 4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남과 북 모두를 집어삼킬 초유의 재난인 백두산 폭발을 막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병헌은 하정우와 공동 주연을 맡았다. 극 중 이병헌은 북한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 리준평으로 분해 속내를 읽기 힘든 복잡한 심리의 캐릭터를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소화해 냈다.

이병헌은 《백두산》에 이어 《남산의 부장들》 개봉도 앞두고 있다. 1979년, 제2의 권력자라 불리던 중앙정보부장이 대한민국 대통령 암살 사건을 벌이기 전 40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병헌은 대통령의 최측근인 중앙정보부장 김규평 역을 맡아 강려한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국보급 배우’ 이병헌을 만났다.

ⓒ BH엔터테인먼트
ⓒ BH엔터테인먼트

주연배우로서 《백두산》을 본 소감은 어땠나.

“사실 다른 영화는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데 《백두산》은 CG(컴퓨터 그래픽) 작업이 큰 부분을 차지하기에 예상이 안 됐어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사회에 참석했는데, 솔직히 놀랐어요. 규모감도 엄청났고요. 이런 장면이 있었나? 이런 배경이 있었나? 싶은 장면이 많았어요. 분명 촬영 때는 허허벌판을 달렸는데, 그 배경이 백두산으로 입혀지니 새롭더라고요. 뭐랄까, 관객의 입장에서 봤다고 할까요. 드라마가 중심이 되는 영화는 시사회를 하면 당시 내가 했던 연기, 대사, 감정이 떠올라 온전히 관객의 입장에서 보기 힘든데, 이 영화는 관객의 입장에서 즐길 수 있었어요. 뒤풀이 때 ‘우리나라가 이렇게 CG 기술이 발달했냐’며 자찬하는 분위기도 있었어요.”

하정우씨와 처음 호흡을 맞췄다.

“사석에서 우연히 만나면 ‘같이 작품 한번 하면 좋겠다’고 말을 나누곤 했어요. 서로가 아예 모르는 사이가 아닌지라 이 친구의 매력을 익히 알고 있었죠. 예상했던 대로 매력적인 배우였어요. 평상시에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데 촬영하면서 순발력과 유머가 대단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어요.”

이 영화는 두 명의 감독이 공동연출을 했다.

“촬영이 끝난 뒤 들어보니 격일제로 나눠 연출을 했다고 해요. 현장에서는 모니터 앞에 항상 두 분이 함께 계셔서 몰랐거든요. 특별히 힘든 점은 없었는데 굳이 말하자면 상의할 때 두 분이 다 계신 자리에서 말하는 게 불편했어요(웃음). 아니면 다시 말해야 하잖아요. 나중엔 요령이 생기더라고요. 사실 두 분이 워낙 조용하고 선한 성품을 지닌 사람들이라 선장이 두 명이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물론 모든 장면을 두 분 모두 만족시켜야 하니 몇 번 더 찍는 정도?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이 영화에서 첫 등장 장면이 인상적이다. 배역 설명이 그 한 장면으로 끝났다.

“의도적이었죠. 첫 장면에서 강한 인상을 주고 싶었거든요. 목포 사투리에 러시아어까지 구사하죠. 웃긴 것 같기도 하고 무서운 것 같기도 하고, 알 수 없죠. 현혹시키는 모습도 있고요. 그게 의도였다 해도 구현하는 건 쉽지 않은데 말이죠. 프로페셔널들만 모였으니까요. 하하.”

현장에서 집중력이 좋은 배우라고 들었다.

“집중하려고 발버둥 치는 거죠. 그렇다고 저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고요, 그저 그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요. 우리 작업이 그래요. 촬영 중간에 식사라도 하면 감정 연결이 쉽지 않아요. 그래서 모니터를 보거나 할 때도 머릿속에선 계속 그 장면을 생각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 장면과 연결이 안 돼 연기가 튈 수 있거든요.”

그래서 하정우씨가 ‘악마 같은 배우’라고 했나 보다(웃음).

“연기 기계, 악마, 뭐 그런 말을 했더라고요. 칭찬이겠죠? 하하.”

명실공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기 잘하는 배우다. 그럼에도 연기에 대한 고민이 있나.

“그럼요, 결과물이 잘 나온다고 해도 고민을 계속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업이에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잠깐 사는 거잖아요. 그 인생을 제가 어떻게 알고, 또한 그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고, 연기에 공식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계속 공부하고 생각하고 깨달아야 하죠. 사실 저는 어떻게 생각하면 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적어요. 예전엔 넘치는 자신감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고집이 약해졌다고 할까요. 남들이 나를 더욱 객관적으로 봐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촬영장에서 누군가 제 연기에 대해 어떤 요구를 하면 거절하지 않고 시도하는 편이에요.”

배우로서 설렘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대부분의 배우가 그럴 거예요. 진심이 전해진 연기를 했고 스스로 만족스러우면 그 기분이 그날의 감정을 지배해 버리죠. 그때 설렙니다. 반대로 감정이 도저히 안 나오고 결과적으로 흉내만 낸 것 같은 기분이 들면 그날 하루 기분이 다운돼요. 그렇게 연기가 하루를 지배해 버리죠.”

연이어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개봉하고, 노희경 작가의 새 드라마 《히어》에도 출연한다. 지치지 않나.

“저도 지쳐요(웃음). 하지만 시나리오가 좋으면 힘들어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니까 쉴 틈 없이 작업을 하게 됩니다.”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할 계획은 없나.

“스케줄 조율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이상적인 배우 활동이라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한 작품씩 하는 것인데, 그게 쉽지 않아요. 해외 작품을 기다리다가 국내 작품을 잡으면 며칠 뒤에 미국 에이전시에게 연락이 오는 식이죠. 운이겠거니 해요. 물론 일본이나 중국의 몇몇 배우들은 아예 할리우드에 가서 지내는 경우도 있어요. 맘먹고 자국의 영화를 스톱하고 할리우드에서 계속 미팅을 하는 식이죠. 미래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저는 굳이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한국영화도 그만큼 제게 중요하고, 또한 한국영화가 주는 파급력도 만만치 않으니까요. 한국은 영화 강대국이에요. 그 파급력은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아요. 게다가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가 한국어로 하는 감정표현이잖아요. 서툰 외국말로 외국 문화까지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가장 자신 있는 언어로 연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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