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FC의 동화는 왜 1년 만에 비극이 됐나?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27 16:00
  • 호수 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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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같은 준우승에서 2년 만에 2부 리그 강등 받아든 경남의 실패 원인

2018년 프로축구 K리그1의 챔피언은 전북 현대였지만, 더 많은 포커스가 준우승팀 경남FC로 향했다. 2014년 2부 리그 강등이라는 아픔 뒤 경남은 당시 구단주였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해체 검토와 1년 뒤 밝혀진 심판 매수 사건 등으로 최악의 시간을 맞았다. 2017년 경남은 반전 드라마를 시작했다. 브라질에서 온 무명 스트라이커 말컹이 K리그2를 폭격하며 일찌감치 1부 리그 승격을 확정했다. 4년 만에 돌아온 K리그1에서 강등 1순위라는 예상을 보란듯이 깨며 팀 역사상 최고 성적인 리그 준우승, 그리고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차지했다.

모두가 동화 같은 스토리라고 극찬했다. K리그1도 휩쓴 말컹의 활약도 대단했지만 선수로서 실패한 아쉬움을 지도자로서 푼 김종부 감독, 전문경영인은 아니지만 묵묵히 선수단을 지원하고 만성 적자를 해소한 조기호 대표이사도 박수를 받았다. 아시아 무대로 처음 향하게 된 경남은 대대적인 선수 보강을 시도하며 2019년에도 한 번 더 동화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2019년 경남을 기다린 것은 참담한 비극이었다. 그들의 동화는 2년 만에 강등, 그리고 팀의 와해로 뒤바뀌고 말았다. 시즌 중 20경기 연속 무승이라는 심각한 부진을 겪은 끝에 12개 팀 중 11위를 기록했다. 1부 리그 잔류의 마지막 기회였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부산 아이파크를 상대로 무기력한 모습만 보이며 결국 강등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1년 만에 동화가 비극이 된 것이다.

K리그1  승강전이 열린 지난 12월8일, 패배로 강등이 확정된 경남FC 선수와 스태프(오른쪽)가 안타까워하고 있다. ⓒ 뉴스1
K리그1 승강전이 열린 지난 12월8일, 패배로 강등이 확정된 경남FC 선수와 스태프(오른쪽)가 안타까워하고 있다. ⓒ 뉴스1

과욕으로 악수를 두다 

경남의 충격적 강등은 성공에 도취된 과욕이 1차 원인으로 꼽힌다. 리그 최고 대우로 재계약을 맺으며 자신감이 치솟은 김종부 감독은 국내외에서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은 팀의 핵심 말컹(허베이 화샤싱푸), 박지수(광저우 헝다), 최영준(전북 현대)을 보내고 90억원의 이적료로 팀을 재편했다. 2016년 부임해 선수단 운영의 전권을 받고 성공을 거듭해 온 그는 이번에도 자신감을 보였다.

2019년을 준비하는 스토브리그(이적 시장)에서 가장 뜨거웠던 팀도 경남이다. 말컹을 대체하기 위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한 조던 머치, 네덜란드 국가대표 출신 룩 카스티아노스를 영입했다. 곽태휘, 박기동 등 베테랑을 보강하고 김승준, 이영재 같은 영건도 수혈했다. 새로 영입한 선수만 무려 22명이었다. 사실상 2018년과 완전히 다른 팀이 된 것이다. 시·도민구단으로선 감당하기 쉽지 않은 선수단을 위해 100억원에 가까운 연봉이 지불됐다. 외국인 선수 연봉만 45억원이었다. 전북, 울산 두 대표 기업구단 다음으로 높은 팀 연봉이다.

이런 이름값 높은 선수들로 재편된 대규모 선수단 교체는 팀의 발목을 잡았다. 센터백 포지션의 중복된 선수 영입에 대한 교통 정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수비의 핵이던 최영준과 박지수의 공백은 전혀 메워지지 않았다. 챔피언스리그에서 막판 실점으로 비기거나 패하는 일이 반복됐다. 부상자 관리도 대실패였다. 기존의 네게바와 쿠니모토, 새로 영입된 머치와 룩은 모두 과거 큰 부상 경력이 있었던 터라 세밀한 관리가 중요했는데 결국 줄줄이 부상으로 큰 경기에서 제외됐다.

경남 구단과 김종부 감독의 이런 과욕은 반 시즌 만에 사실상 실패로 귀결됐다. 의욕적으로 영입한 프리미어리거 머치는 향수병을 이유로 여름에 떠났다. 십자인대 부상을 당한 네게바 대신 영입한 오스만도 1개월 만에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리그 잔류를 위해 젊은 피 이영재에 현금 7억원을 얹어 2018년 K리그1 득점 2위를 기록한 제리치를 강원FC로부터 데려왔다. 말컹과 유사한 스타일의 선수로 승부수를 던졌지만, 리그 잔류를 위한 전환점은 좀처럼 마련되지 않았다.

선수단의 부진 뒤에는 숨겨진 심각한 문제도 있었다. 우선 김종부 감독의 지도력이 한계를 보였다. 브라질의 무명 선수이던 말컹을 이적료 60억원이 넘는 대형 선수로 키우며 찬사를 받았지만, 이번 시즌엔 선수단 내 불통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머치를 비롯한 새로 영입된 선수들은 훈련 방법에 불만을 표출했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 많았던 것도 선수단 관리와 훈련이 체계적이지 못한 탓이라는 지적이다. 40명의 방대한 스쿼드를 구축해 놓고도 정작 쓰는 선수만 쓰는 기용 방식도 문제였다. 선수단 내부에 건전한 경쟁 구도가 이뤄지지 않아 선수들의 불만도 쌓여 갔다.

지난 12월8일 경남 창원축구센터에서 경남FC-부산 아이파크의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이 치러지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2월8일 경남 창원축구센터에서 경남FC-부산 아이파크의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이 치러지고 있다. ⓒ 연합뉴스

불만·불통·불화의 3불 축구로 무너져 

팀의 두 리더인 김종부 감독과 조기호 대표의 불화는 팀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가장 큰 원인이 됐다. 소통과 공감 능력이 좋지 못한 김종부 감독은 지난해 말 재계약 단계에서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중국 슈퍼리그에서 오퍼를 받을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는 걸 이유로 시·도민구단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연봉을 재계약 조건으로 내세웠다. 조기호 대표가 협상을 위해 직접 연락을 수차례 취했지만 응하지 않았고 그때부터 2년간 이어진 2인3각은 깨지기 시작했다. 결국 김종부 감독은 리그 최고 대우로 재계약을 맺었지만, 조기호 대표의 마음은 상할 대로 상한 터였다.

새 시즌 준비를 위한 선수단 구성도 김종부 감독의 일방적 의도대로 진행됐다. 2019 시즌 내내 두 리더는 대화 한 번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기호 대표는 그에 대한 불만을 외부에 토로했다가 지역 언론을 통해 보도돼 두 사람의 오해와 갈등은 심화됐다. 부진을 끊기 위해 승리 수당 등 특별 당근책이 필요했지만 조기호 대표가 협조하지 않았고, 김종부 감독도 수수방관했다. 시즌 중반에는 선수단 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던 이영익 수석코치마저 김종부 감독과의 불화로 떠나고 말았다. 경상도 사투리에 눌변이 심한 김종부 감독 특유의 발언은 선수단 내부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오해를 사기 쉬웠다. 시즌 말미에는 그런 문제가 누적돼 선수단 분위기가 최악으로 향했다.

과유불급에 가까웠던 선수단 구성이 빚은 불만, 불통으로 일관한 감독, 대표이사와의 장기화된 불화. 이 3불 축구는 결국 경남을 무너트렸다. 조기호 대표는 김종부 감독과의 계속되는 갈등으로 올해만 2차례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준표 전 지사 시절 임명된 탓에 야권 인사로 인식되는 그는 지난해 김경수 지사 취임 후 첫 번째 사의를 표명한 바 있다. 팀이 정치적 논리에 흔들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당시 김경수 지사는 정치색보다는 능력이 중요하다며 반려하며 재신임했다. 그러나 그 신임이 이어져 올 시즌 갈등의 고리를 끊어야 할 때 결단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김종부 감독 역시 7월경 한 차례 교체가 고려됐지만, 지난해 성공으로 인해 경질 명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유야무야됐다. 대중의 눈치를 보다 위기의 순간 검증 없는 무한신뢰를 보낸 구단주의 선택도 팀 감등의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이다.

강등 이후 조기호 대표는 네 번째 사표를 제출했다. 강등이라는 성적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만큼 조기호 대표 외에 김종부 감독도 경질 수순을 밟고 있다. 승강 플레이오프를 비롯해 시즌 막판 경남 홈경기를 찾은 김경수 지사는 “팀 성적과 관계없이 구단 지원은 이어갈 것”이라고 팬들 앞에서 약속했다. 새 대표이사와 감독 선임을 놓고 벌써부터 복마전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출신 축구인과 정·관계 인사를 중용해 온 경남 구단의 안타까운 전통(?)이다. 김경수 지사는 베트남의 영웅이자 경남의 초대 사령탑이었던 박항서 감독 등에게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 시·군 축구협회장과 박항서 감독을 비롯한 축구인들은 김경수 지사에게 장영달 전 의원을 추천했다. 학창 시절 선수생활을 했고,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경험 등 축구와 인연은 있지만 전문경영인이 아닌 인사로 산적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지에는 의문부호도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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