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30 11:00
  • 호수 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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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중국 꺾으려는 미국과 굴복 않겠다는 중국, 충돌 이어질 듯

우선 자기 고백부터 해야겠다. 미·중 무역전쟁의 경우, 필자는 이미 여러 번 틀렸다. 처음에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봤고, 나중에는 아무리 늦어도 2019년 중반 정도까지는 합의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미 실패한 사람이 앞으로는 다를 것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지금도 잘못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변명을 굳이 하자면, 미국은 짐작했던 것보다 더 완강했고, 중국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잘 버텼다. 다만 합의 결과는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진핑은 실속을 차리고 트럼프는 명분을 얻는 수준에서, 그럭저럭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결과도 그렇게 가는 모양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사실상 ‘휴전’으로 접어들었다.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의 연간 구매량을 최대 500억 달러까지 늘리는 데 합의했고, 미국은 25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율 30%를 부과하려던 계획을 보류했다. 서구 언론들의 일반적인 평가는 ‘중국의 승리’라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의 구조적 개혁 없이 미국이 일방적으로 양보했다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11일 시진핑 중국 주석의 친서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11일 시진핑 중국 주석의 친서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무역전쟁은 곁가지, 패권전쟁이 핵심

그럴 만도 한 것이 특별히 주목할 만한 합의사항이라는 게 없다. 핵심 쟁점이라고 해야 할 환율조작 문제, 지식재산권 보호장치 강화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이 줄곧 요구했던 국영기업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문제도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는 게 전부다. 트럼프가 협상 결과 얻어낸 것처럼 말하는 농산물 구매나 위안화 평가절하 자제 정도는 뉴욕타임스의 지적대로 중국이 이미 무역전쟁 직후부터 미국에 약속한 것이었다. 돼지고기는 어차피 중국이 필요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사육 돼지의 약 50%를 살처분해 버렸고, 중국인을 먹여 살리려면 수입을 늘려야 했다. 트럼프는 중국과 ‘완전한 딜(complete deal)’이 아니면 거래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이제는 말을 바꿨다. 지난 5월에도 협상은 합의 직전까지 갔다가 깨졌다. 5월 합의안과 이번의 차이가 뭐냐는 질문에 중국의 류허 부총리는 “협조(cooperation)”라고 답했다고 한다. 다른 게 없다는 뜻의 외교적 표현일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트럼프로서는 금융시장을 안심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선거가 있는 해, 사실 미국 대통령은 경제에 충격을 주는 어떤 조치도 어렵다. 의회의 탄핵 표결에 트럼프는 마음이 급해졌을 것이고, 시진핑은 그동안 버틴 대가를 받았다.

따지고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시작하면서 얻으려고 했던 것들 자체가 무리였다. 트럼프는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뿐만 아니라 기술 절취와 보조금 문제를 포함한 중국의 불공정 관행과 산업정책을 바로잡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쯤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만약 2016년 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돼 지금 미국 대통령이었다면 달랐을까.

2011년, 오바마 정부는 중국 포위전략을 공식적으로 선택했다. 그 선봉에 선 사람은 당시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었다. 힐러리는 4년 동안 국무장관으로 있으면서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모든 나라를 한 번 이상 방문했다. 포위전략을 숨기지도 않았다. 당시 힐러리는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외교-군사정책의 중심은 아시아고, 그 전략의 핵심은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말로만 한 것도 아니다. 이때부터 미국 정부는 해군과 공군을 중심으로 국방비의 60%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했고, 전략 항공모함을 아시아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북한의 ICBM 개발을 중국이 막지 못한다면 미사일 방어망으로 중국을 포위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트럼프의 중국에 대한 관세 공격은 미국 경제에도 부담이다. 세계 500대 기업에 들어가는 미국 기업 대부분은 중국에 생산시설을 가지고 있다. 흔히 중국은 생산해서 수출하고, 미국은 수입해서 소비하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대기업들이 중국에서 생산하고 수입해, 미국에서 소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루그먼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관세를 부담한 건 결국 미국 소비자들”이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에 수출해 번 돈으로 미국의 채권을 다시 사들인다. 중국이 매입한 미국의 채권 규모는 국채와 공채를 합쳐 2조 달러 수준에 이른다. 경제적으로만 보면 미국과 중국은 대립하기보다는 상호의존적이며 보완적인 관계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과 관련해 민주당이 다른 목소리를 낸 적은 없다. 트럼프가 중국에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 때, 민주당 지도자들은 트럼프를 ‘종이호랑이’라며 비판했다. 민주당 소속의 낸시 펠로시 현 하원의장은 지금도 트럼프가 중국에 대해 더욱 강력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2018년의 경우 4192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미국은 오로지 무역적자만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무역전쟁의 원인은 단순히 경제문제에 있지 않다. 국가무역위원장인 피터 나바로는 중국이 무역을 통해 번 돈으로 군비를 확충하고 있다며 이를 국가안보 리스크로 규정했다. 크리스토퍼 레이 미국연방수사국(FBI) 국장은 미국 외교협회 강연에서 “중국은 미국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갈등의 핵심은 결국, 세계경제의 패권을 둘러싼 대립이다. 무역전쟁은 곁가지일 뿐이다.

 

미·중 무역전쟁 충격과 영향, 미·소 냉전보다 더 클 수도 

중국 경제는 지금 쉽지 않다. 지난 수년간의 막대한 자금 공급으로 이미 부채가 너무 늘었다. 적지 않은 민간은행들이 채무불이행 직전에 몰려 있다고 한다. 외국계 기업들의 중국 탈출 움직임도 심각해지고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갑자기 삼성전자 중국공장을 찾은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무역전쟁을 통해 시간을 버는 데 성공한 것은 맞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시작되면서 서둘렀어야 하는 경제의 구조개혁 작업을 미뤄야 했다. 하지만 미국의 거센 압력을 생각하면 중국 경제는 오히려 잘 견뎌낸 것으로 보는 게 현실에 부합한다. 시장경제 체제 도입 이후 중국은 해마다 연평균 8% 이상의 고속성장을 거듭해 왔다. 무역전쟁으로 타격을 받아 성장률이 급락한 2019년에도 연간 6%를 유지했다. GDP 규모 13조 달러의 나라가 6%의 성장을 이룩한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승부가 확실해질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물론 잠정적 합의와 휴전, 그리고 다시 상황의 악화와 분쟁, 재협상으로 이어지는 일은 반복될 것이다. 중국의 자세는 확전은 피하지만 그렇다고 굴복하지는 않겠다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중국제조 2025’ 같은 산업정책의 중단과 국유기업에 대한 특혜나 보조금 폐지는 중국으로서는 끝내 받아들일 수 없는 의제일 것이다.

반면 미국도 트럼프와 관계없이 대중국 강경 기조를 유지할 것이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중국의 추격을 저지하겠다는 전략은 누가 집권하든 그대로일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미·소 냉전보다 더 충격과 영향이 클 수도 있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분쟁은 앞으로 50년 또는 100년에 걸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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