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급 인사들 PK 민주당 출마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
  • 박석호 부산일보 서울정치팀장 (jongseop1@naver.com)
  • 승인 2019.12.27 17:00
  • 호수 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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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어급' 원했는데 아쉽다는 반응 속 '시너지 효과' 기대감도 표출

여권이 새해 21대 총선의 최대 접전지인 부산·울산·경남(PK) 지역에 고위 공직자 출신 인사들을 대거 동원하면서 본격적인 세몰이에 나섰다. 김영문 전 관세청장과 강준석 전 해양수산부 차관이 PK 총선 출마를 위해 지난 12월22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데 이어 다음 날에는 이기우 전 교육부 차관이 입당하면서 자신의 고향인 경남 거제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검사 출신인 김 전 청장은 고향인 울산 울주군에 도전장을 냈다. 노동자 층이 두터운 울산은 PK에서 진보진영의 득표율이 비교적 높은 곳이지만, 울주는 전통적으로 보수진영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다. 김 전 청장은 2005년 참여정부 때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청와대에 근무한 적이 있어 친문(친문재인) 진영과 관계가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 검사 생활을 끝내고 로펌에 근무하던 김 전 청장을 관세청장으로 파격 발탁한 것도 이런 장기적 포석을 노린 것이라는 후문이다.

해수부 관료 출신인 강 전 차관은 “해양 수도 부산에 출마해, 해양·수산 전문가로서 어려운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면서 부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인 전재수 의원은 “강 전 차관의 출마 지역은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출신이고, 해양·수산 전문가로서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지역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강준석 전 해양수산부 차관(오른쪽 네 번째), 김영문 전 관세청장(왼쪽 네 번째)이 지난 12월22일 국회 정론관에서 제21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입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강준석 전 해양수산부 차관(오른쪽 네 번째), 김영문 전 관세청장(왼쪽 네 번째)이 지난 12월22일 국회 정론관에서 제21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입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권, 정경두·조국·윤건영 출마 고민

여당에서는 PK 차관급 인사들의 고향 출마를 서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선 현 정부의 장관이나 청와대 핵심 참모 등 ‘대어급’ 인사들의 차출을 강력하게 원했는데 다소 아쉽다는 반응이 많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여당이 기대를 걸었던 대표적인 인물은 경남 진주 출신인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다.

공군 참모총장 출신의 정 장관은 경남 사천·진주 지역 항공 클러스터 산업을 발전시킬 적임자로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카드로 여겨졌다. 특히 경남에서도 당 지지세가 상대적으로 약한 서부 경남에 정 장관이 투입된다면 강세 지역인 동부 경남과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선전한 중부권과 함께 경남 전역에서 한국당에 맞설 수 있는 진용이 갖춰진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정 장관 스스로의 결심이 서지 않은 데다 후임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걱정하는 청와대의 입장을 감안하면 출마가 쉽지 않아 보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산 출마에 기대를 거는 인사도 적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여의치 않다. 정통 관료는 아니지만 PK에서 가장 주목하는 인사는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이다. 윤 실장의 출마는 곧바로 문 대통령의 의중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PK 총선의 판세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을 지역에 윤 실장이 출마한다면 그 상징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양산은 PK 지역에서도 최대 승부처인 ‘낙동강 벨트’의 출발지이기 때문에 그 파급효과가 PK 전체로 퍼질 수 있다. 거기다 양산을 현역 의원인 서형수 의원은 이미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에 ‘연착륙’하기도 쉽다.

이런 상황임에도 현 정부의 거물급 인사들이 PK 출마에 마뜩잖은 반응을 보이면서 여당은 한 체급 낮은 인사들을 영입해 ‘꿩 대신 닭’으로라도 활용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반면 이들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PK 지역은 오랫동안 자유한국당 계열의 보수정당이 선거를 ‘독식’하면서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인재풀이 적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장관급은 아니지만 행정 경험이 풍부하고 자질이 검증된 고위직들의 출마가 상당한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차관급 인사들은 상대적으로 무게감은 약하지만 나름대로 경력과 연륜을 내세울 수 있고, 본인들도 낙선할 경우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명분이 쌓인다는 점에서 ‘윈-윈’ 게임이다.

 

영입 차관급 인사 경쟁력 지켜봐야  

장관급 인사를 차출하는 데 따른 정무적 부담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개각이 이뤄지면 후임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실시해야 하는데 총선을 앞두고 후보자에게 의외의 문제가 생겨 ‘청문 정국’이 커질 경우 여권으로선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 영입된 고위 공직자 출신 인사들이 얼마나 경쟁력을 보여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이들은 인사권자에 대한 ‘보은’ 때문에 출마하거나 총선 이후에 다른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약하고, 지역주민과의 ‘스킨십’이 적어 인지도가 낮다. 거기다 선거운동 경험도 전혀 없기 때문에 표를 호소하는 데 낯을 가리는 경우도 많다.

전재수 부산시당 위원장은 “고위 공직자 출신은 국정운영의 노하우를 잘 알기 때문에 국비 확보나 지역의 숙원사업 해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며 “너무 많으면 안 되지만 다른 분야 인재들과 균형을 맞춰 적절히 배치한다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PK 자유한국당 "후보군 다양화로 맞서야"

18개 당협위원장 절반이 변호사… 새 인물 수혈 목소리 높아

여권이 PK 지역의 고위 공직자들을 대거 차출해 총선 자원으로 활용하는 데 대해 자유한국당의 입장은 사뭇 엇갈린다. 한국당 PK 지역 인사들은 차관 아니라 장관이 와도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이기기는 쉽지 않다고 폄하하는 분위기다. PK 지역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대구·경북 다음으로 부정적이라는 점에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운영의 책임을 진 고위 공직자들이 후보로 나서면 야당으로서는 ‘정권 심판론’을 펼치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하지만 여당에 비해 다양한 인재들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걱정이 많다. 현재 한국당의 부산 지역 당협위원장은 상당수가 법조인이다. 다양한 인적 스펙트럼을 공천해 유권자들에게 신선한 인물을 선보여야 하는 입장에서 난처할 수밖에 없다. 부산의 경우 현재 18개 한국당 당협위원장(또는 현역 의원)의 절반인 9명이 변호사다. 당협위원장은 아니지만 도전장을 던진 율사 출신 출마 예정자들은 더욱 많다. 경륜이 있으면서도 안정적인 느낌을 주려면 고위 공직자 출신 후보들이 포진해 있어야 하는데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윤상직 의원(부산 기장)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다. 그나마 윤 의원은 총선 불출마를 시사했다.

PK는 그동안 다른 지역에 비해 고위 공직자 출신들의 총선 출마가 많지 않았다. 오랫동안 PK를 독점해 오다 보니 여기저기서 인재들이 몰려왔기 때문에 굳이 고위 공직자들을 찾지 않더라도 새 인물 수혈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20대 총선에서 PK에 출마한 고위 공직자 출신 후보는 윤상직 의원 외에 윤한홍 의원(경남 창원 마산회원·경남도 행정부지사)이 유일했다. 19대 총선 때도 이재균 전 국토해양부 2차관(부산 영도), 안준태 전 부산시 행정부시장(부산 사하을)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다. 한국당은 이번 PK 총선에서 후보군의 다양화를 통해 여당의 고위 공직자 차출 전략에 맞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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