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세 마크롱은 왜 ‘유럽판 트럼프’라는 별명을 얻었나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01 14:00
  • 호수 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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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개혁안에 내부 반발…“어떤 정권도 이렇게 빨리 사람들 거리로 내몰지 않아”

지난 12월21일,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41세 생일을 맞았다. 대통령 취임 후 세 번째로 맞는 생일이었다. 그러나 2년 연속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2018년에는 ‘노란조끼 시위’ 한복판에서 생일을 지냈다. 그해 10월에서 12월까지 지지율이 6%나 폭락한 시점이었다. 2019년에는 연금 개혁에 반대하며 한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대규모 파업의 중심에 서 있다.

“지하철이 없어 산타가 오기 힘들 것이다.” 2019년 성탄절에 대한 프랑스 일간지 ‘르 파리지앙’의 촌평이다. 실제 지난 12월25일 파리엔 연금 개혁 반대 파업의 여파로 지하철이 다니지 않았다. 자동화된 두 개의 노선을 제외한 14개 노선이 운행을 중단했다. 국영철도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속철도 테제베(TGV)는 3대 중 1대, 일반 철도는 절반 이상이 멈춰 섰다. 성탄절만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프랑스 전통에도 불구하고, 정부도 노조도 ‘성탄을 위한 휴전’을 전혀 고려치 않았다.

이제 시선은 연말로 향하고 있지만 해결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미 철도노조를 주축으로 한 파업연대가 2020년 1월7일 새로운 집회를 예고해 둔 상태다. 이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항공노조’가 오는 1월3일로 새로운 파업을 예고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한 책임론은 오롯이 마크롱과 정부를 향하고 있다. 성탄절 직전인 지난 12월22일 여론조사를 보면, 마크롱에 우호적인 응답률은 33%로 나타났다. 개혁의 선봉에 서 있는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에 대한 지지도 역시 35%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조사를 담당한 여론조사 기관 오독사의 가엘 슬레만 소장은 “정부가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흥미로운 것은 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노조에 대한 지지도였다. 강성 노조인 CGT(노동총동맹)가 44%, 개혁파인 온건 노조 CFDT(민주노동동맹)가 51%로 대통령·총리 지지도보다 높게 나타난 것이다. 어쩌다 마크롱은 노란조끼 시위 이후 제대로 된 지지세 회복도 맛보지 못한 채 다시 이토록 처참한 외면을 받게 된 걸까. 현재 이런 차가운 프랑스 여론에 대해 프랑스 정치 전문가와 언론들은 제각기 마크롱의 지난 이력과 특유의 성격 등을 들여다보며 ‘마크롱이 외면받는 이유’에 대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 12월22일 마크롱은 총파업 타개책으로 자신의 퇴임 후 연금을 포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 EPA 연합
지난 12월22일 마크롱은 총파업 타개책으로 자신의 퇴임 후 연금을 포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 EPA 연합

강한 추진력이 되레 독(毒) 되고 있어

2017년 5월14일 39세의 나이로 대통령에 취임한 마크롱의 이전 경력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세계적인 투자은행 로스차일드 출신이라는 특징이었다. 마크롱이 은행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 열흘 전이었다. 업계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대공황 이후 최고의 풍랑을 직접 몸으로 체험했다.

당시 은행업계에서 마크롱의 별명은 ‘금융계의 모차르트’였다. 2012년 극심한 불황에도 인수합병 규모만 90억 유로(당시 약 13조원)에 이르렀던 슈퍼 빅딜, 스위스 네슬레의 화이자 분유사업 인수합병을 성사시키며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인물이 바로 마크롱이었다.

37세의 나이에 재경부 장관에 취임하기 위해 금융권을 떠나기 전 그는 로스차일드의 파트너 신분이었다. 39세에 대통령에 당선된 것만큼이나 화려한 이력이었다. 은행가로서 로스차일드 가문의 오른팔인 프랑수아 헨로는 당시 마크롱에 대해 “법률·회계·재무 등 꼭 알지 않아도 되는 내용까지 꿰고 있으며, 젊은 나이임에도 일의 추진력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처럼 화려한 이력과 강한 뚝심은 정계에 입문한 후 그에게 단연 득(得)이 되리라 많은 사람이 믿었다. 그런데 오늘날 이 같은 그의 특성들은 전반적으로 득이 아닌 독(毒)이 되고 있다는 쓰디쓴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추진력은 고집과 자존심으로 나타나, 유럽 사회가 강하게 비판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비교되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부터 이 같은 평가를 받은 건 아니었다. 금융계에서 쌓은 마크롱의 관록은 대통령 집권 초기 발 빠른 행보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취임 9일 만에 노조 대표들을 만나 자신의 노동 개혁 구상을 설파하며 그대로 추진할 것을 강조했던 것이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노동법 개혁을 그는 집권 2년 차에 보란 듯이 성공해 냈다.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프랑스 총파업 여파로 파리 등 곳곳에서 교통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 AP 연합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프랑스 총파업 여파로 파리 등 곳곳에서 교통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 AP 연합

“마이웨이식 젊은 꼰대” 비판 이어져

하지만 개혁 성공의 맛을 본 마크롱은 여러 정책에서 자신의 의견을 좀체 굽히지 않고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작 국민적 비판에 직면하게 되면, 자신은 한발 물러나 한동안 모호한 입장을 취하며 되레 사태를 키워 나갔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연금 개혁 역시 마크롱은 언제부턴가 필리프 총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은 2선으로 물러선 모양새를 취했다. 정부의 입장은 중요한 대목에서 늘 애매모호해졌다. 지난 7월부터 연금 개혁과 관련해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은 “과연 마크롱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인가”였다. 이 때문에 마크롱이 의도를 숨긴 채 협상을 끌고 가는 ‘트럼프식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는 비난도 받곤 했다. 결과는 당연히 좋지 않았다. 정부의 변칙적 행보로 마크롱의 노동 개혁에 우호적이던 CFDT의 신뢰마저 잃었고, 파업의 파괴력은 확대되었으며, 국민 여론은 싸늘하게 등을 돌렸다.

“그 어떤 정권도 이렇게 빨리, 이렇게 많이, 그리고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지 않았다.” 정통 드골주의자이자 프랑스 대표적인 우파 철학자 뤽 페리의 지적이다. 마크롱에 대한 비판이 좌파도 아닌 우파에서까지 쏟아지고 있는 지금, 금융계에서 승승장구했던 본인의 성격과 업무 방식이 정치권에선 전혀 먹히고 있지 않다는 게 조금씩 증명되고 있다.

성탄 연휴를 앞두고도 파업이 멈출 기미가 없자, 지난 12월22일 마크롱은 뒤늦게야 파업 중단을 촉구하며 퇴임 후 연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955년 재정된 프랑스 전직 대통령에 관한 법령에 따르면 대통령의 연금은 월 6222유로(약 802만원)로 책정돼 있다. 그러나 그의 승부수에 반발이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더한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상황 모면용 결정에 불과하단 비판이다. 발표 이튿날 파리와 지방 대도시인 툴루즈의 대형 쇼핑몰에서는 예정에 없던 시위가 벌어졌다. 좌파 계열의 마농 오브리 유럽의회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미 로스차일드에서 받은 두둑한 연금이 있겠군요”라며 비꼬기도 했다.

적대적 인수합병 무대에서 양자를 설득하고 합의에 이르게 하는 ‘대화의 예술’을 배웠다는 마크롱. 그러나 그는 국민을 상대로 그토록 자신했던 기술 발휘를 좀체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프랑스는 ‘5000만 명의 철학자가 산다’고 표현할 만큼 까다롭고 다양한 국민이 사는 곳이다. 프랑스 제5공화국의 문을 연 전쟁 영웅 샤를 드골 대통령마저 “치즈만 300가지를 먹는 프랑스 국민이다. 다스리기가 어디 쉬운 줄 아는가”라고 하소연한 바 있다. 그러나 파격 당선 이후 쏟아졌던 기대가 무색하게 그는 불과 2년7개월 만에 “국민을 그저 단순하게만 다스리려는 ‘젊은 꼰대’”라는 비판에 직면해 버렸다. 심지어 ‘마이웨이’의 대명사 트럼프와도 비견되며 과거의 영광을 온통 오명으로 덮고 있다. 그 가운데 마크롱이 잠재우는 데 실패한 프랑스 총파업은 역대 최장 기록이던 1995년 당시 22일을 앞지르며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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