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콘셉트가 시민 심성 좌우한다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29 11:00
  • 호수 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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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가지 ‘도시적 콘셉트’ 제시한 도시건축가 김진애 박사

“도시는 모쪼록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이야기가 되면 우리는 더 알게 되고, 더 알고 싶어지고, 무엇보다 더 좋아하게 된다. 자기가 사는 도시를 아끼고, 도시를 탐험하는 즐거움에 빠지게 되고, 좋은 도시에 대한 바람도 키운다. ‘살아보고 싶다, 가보고 싶다, 거닐고 싶다, 보고 싶다, 들러보고 싶다’ 등 ‘싶다’ 리스트가 늘어난다.”

우리 대다수는 도시에 살고 있지만 우리에게 도시는 여전히 낯설다. 도시란 너무 크고 또 복잡해서 한눈에 포착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괜히 어렵게 느껴지고, 나의 삶과 별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40대에 타임지가 선정한 ‘차세대 리더 100인’ 중 유일한 한국인으로 이목을 끌었던 도시건축가 김진애 박사가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를 펴냈다. ‘도시’를 ‘이야기’로 접근하기를 권하는 김 박사는 소설이든 영화든 인간이 있고 욕망이 있으면 이야기는 절로 탄생하는데, 사실 도시야말로 수많은 다양한 인간과 욕망으로 가득한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도시 이야기엔 끝이 없다. 권력이 우당탕탕 만들어내는 이야기, 갖은 욕망이 빚어내는 부질없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얽히며 벌이는 온갖 갈등의 이야기, 보잘것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삶의 세세한 무늬를 그려가는 이야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수많은 인간관계의 선을 잇는 이야기,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인간의 한계를 일깨우는 이야기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도시 안에 녹아 있다.”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김진애 지음│다산초당 펴냄│320쪽│1만7000원 ⓒ 시사저널 고성준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김진애 지음│다산초당 펴냄│320쪽│1만7000원 ⓒ 시사저널 고성준

사람과 도시의 관계를 ‘이야기’로 설명해

도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김 박사는 12가지 ‘도시적 콘셉트’를 제시한다. 익명성, 권력과 권위, 기억, 예찬, 대비, 스토리텔링, 디코딩, 욕망, 부패에의 유혹, 현상과 구조, 돈과 표 등 각각의 도시적 콘셉트를 통해 도시를 바라보면, 비로소 우리 삶을 둘러싼 도시 공간의 구조와 역동성이 훤히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고.

“도시를 다루는 모습을 보면 현상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아니면 구조에 관한 비판이다. 현상과 구조를 연결하는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데, 잘 안 나온다. 나는 일방적인 예찬, 비판, 매도를 너무 싫어한다. 도시를 다룰 때는 비판하는 시각과 긍정하는 시각이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랑 비슷하다. 장점이나 단점만 있을 순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도시에 관한 콤플렉스가 있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콤플렉스를 인정하지 않으면 예찬하는 태도가 안 생긴다. 긍정하고 예찬하면서 동시에 문제를 피해 가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는 단정적인 이야기를 많이들 했는데, 난 동의하지 않는다.”

김 박사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도시 공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김 박사는 두 번째 콘셉트로 ‘권력과 권위’를 내세우며 청와대, 국회, 정부청사 등을 소재로 다뤘는데, ‘권력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유독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아마도 권력 공간이 그 도시를 대표하는 공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고, 권력 공간에 얽힌 스토리 자체가 흥미진진하기 때문일 테다.

“얼마 전에 ‘청와대’ 이야기가 카드 뉴스로 만들어졌더라. 정말이지 비서를 불렀는데 최소 10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 거리가 멀면 관계도 멀어진다. 청와대 공간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자주 소환되는 게 백악관이다. 백악관은 대통령 집무실과 모든 비서진, 프레스룸이 같은 건물에 모여 있다. 긴밀한 소통이 가능할 수밖에 없다. 백악관도 처음부터 지금 모습은 아니었다. 큰 화재 후 리모델링 비용을 아끼려고 흰색으로 건물 전체를 칠했고, ‘화이트 하우스’라는 이름을 얻은 후 외양은 지키고 전체 구성은 끊임없이 진화했다.”

 

“재개발 앞서 업자보다 사람들이 모여 고민해야”

김 박사는 여기저기 재개발로 인한 갈등이나 후유증에 대해 지적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도시 차원에서 아파트 단지가 일으키는 문제다. 사회 심리가 아니라 기능적인 측면만 따져보더라도 여러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재개발 구역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무슨 문제가 일어날까?

“첫째, 길이 없어진다. 정확히 말하면 길이 줄어든다. 동네를 실핏줄처럼 엮던 골목길들이 모두 단지 안에 포함되어 버리고 단지를 에워싸는 큰 도로만 생기는 것이다. 요즘은 통으로 지하주차장만 만드는 것이 대세라서 아예 아파트 단지 내에는 비상시 소방도로만 만들고 나머지는 다 보행로다. 이러다 보니 동네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길이 뚝 끊겨서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흔히 생긴다.”

김 박사는 아파트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의 도시에서는 주거 특성상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에 살지 않을 수 없는데, 건축 과정에서 너무 업자들에게 휘둘리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고 설명한다.

“사는 방법을 두고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데, 자기네들끼리 담을 쌓고 게이트를 만들고 오아시스 성채를 만들어버린다. 이건 모든 사람에게 문제가 되는 일이다. 단지형 아파트가 아니라, 길을 만드는 아파트, 가로형 아파트가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기도 시흥 태생인 김 박사는 이화여고를 거쳐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MIT에서 건축학 석사와 동 대학원 도시계획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건축사무소 ‘SF도시건축’을 운영하면서 주로 대단위 도시 환경공학에 관한 연구 및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행정신수도 기본계획(1979), 산본 신도시 도시설계(1989), 지하도시개발구상(1993), 부산 수영정보단지 마스터플랜(1996), 인사동길(2000) 등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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