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홍콩 덕에 기사회생한 차이잉원 대만 총통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07 16:00
  • 호수 1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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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 된 대만 총통 선거
독립 주장하는 현 총통 지지율 급등

#1. 2018년 11월24일 저녁 대만 통합지방선거 출구조사에서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은 참패가 예상됐다. 출구조사 직후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선거 패배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면서 당 주석직을 사직했다. 실제로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진 개표 결과 민진당은 역사적인 참패를 당했다. 22개 현·시장 자리 중 무려 15곳을 야당인 국민당에 내주었다. 민진당은 6개의 현·시장 자리를 얻는 데 그쳤다. 수도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 민진당 후보는 17.2%를 얻어 3위로 밀려났다. 따라서 작년 봄까지 차이 총통은 당내에서 차기 총통 후보 선출도 불투명했다.

#2. 2019년 12월29일 대만 TVBS방송은 총통 선거에 참여한 각 당 후보의 지지율을 발표했다.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는 45%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국민당 한궈위(韓國瑜) 후보가 29%로 그 뒤를 쫓았고, 쑹추위(宋楚瑜) 친민당 후보가 7%를 얻었다. 12월 들어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이 후보는 최고 56.5%에서 최저 43.1%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선두를 유지했다. 그에 반해 한 후보는 최고 31%에서 최저 14.4%로 30% 이상 치고 올라가지 못했다. 대만 언론은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1월11일에 치러질 총통 선거에서 차이 후보가 과반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12월24일 필자는 타이베이 시내에 있는 차이잉원 선거대책본부를 찾았다. 한창 바쁜 낮 시간이지만 선대본부는 긴장감이 없었다. 60대 노인부터 30대 초반 여성까지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찾아온 시민들을 제외하고 취재진은 보이지 않았다. 민진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선거에 대한 해외언론의 관심이 예전보다 못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오는 1월11일에 치러질 선거는 차기 총통과 입법원(국회) 의원을 뽑는 중요한 정치 이벤트다. 과거 대만은 선거 때마다 대규모 군중을 동원하는 유세가 펼쳐졌다. 도로 곳곳에서는 후보자들의 홍보 플래카드와 깃발, 벽보가 넘쳐났다.

대만 시내의 한 건물에 걸려 있는 민진당 입법의원 선거벽보 ⓒ 모종혁
대만 시내의 한 건물에 걸려 있는 민진당 입법의원 선거벽보 ⓒ 모종혁

홍콩 시위·경제 호조로 정국 반전 일어나

그러나 이번 선거는 좀처럼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타이베이 시민 량진청은 “작년 11월부터 차이 후보가 한 후보를 압도적인 차이로 앞서고 있어 시민들이 총통 선거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서 “대부분의 유권자가 찍을 후보를 이미 선택한 듯하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국민당의 입법원 의원 후보들 홍보물에는 한 후보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이력과 공약만을 앞세울 뿐이었다. 그에 반해 민진당 후보들은 차이 후보와 함께 찍은 사진을 전면에 배치했다. 이렇듯 대만 총통 선거가 심각할 정도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것은 중국의 공이 가장 크다.

중국은 차이 후보의 재선을 막기 위해 여러 조치를 내놓았다. 지난해 8월부터 47개 도시 주민의 개인 여행을 금지시켰다. 이로 인해 대만을 찾는 중국 여행객 수가 70만 명가량 감소했고, 10억 달러가 넘는 경제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금마장(金馬奬) 영화상에는 중국 영화와 영화인의 참가를 보이콧시켰다. 이뿐만 아니라 시상식 당일에 해협 건너편의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에서 금계장(金鷄奬) 시상식을 열었다. 누가 봐도 금마장에 대한 김빼기였다. 그와 반대로 더 많은 대만인들이 중국에서 일하도록 여러 당근책을 두 차례 내놓았다.

중국에 대한 대만인들의 반감은 극에 달한 상태다. 타이베이에서 만난 시민 왕징메이는 “비록 낮은 임금으로 인해 일부 젊은이들이 중국에서 일하기도 하지만 대만에 줄곧 압력을 넣고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는 중국에 대한 반감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이 홍콩 시위 사태다. 지난해 6월부터 대규모 시위가 반년 동안 지속되면서 대만인들은 중국이 통일을 위해 내세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갖게 됐다. 한궈위에게 지지율에서 줄곧 뒤졌던 차이잉원이 전세를 역전시킨 계기도 홍콩 시위였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경제가 호조를 보이면서 차이 후보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지난해 1분기만 해도 GDP 성장률은 1.84%에 불과해 경기 전망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2분기 2.4%, 3분기 2.91%로 경기가 되살아났다. 대만 경제부는 4분기도 3.04%의 증가율을 달성해 2019년 GDP 성장률이 2.72%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FDI)도 1월부터 11월까지 102억 달러를 달성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0%나 증가한 수치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중국에 진출했던 대만 기업들이 되돌아오는 리쇼어링이 일어난 데다, 외국 기술기업의 대만 투자가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한·일 갈등 따른 반사이익도

박철 KOTRA 타이베이 무역관장은 “차이잉원 총통이 집권 이래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리쇼어링 정책이 각종 지원책과 인센티브 등에 힘입어 효과를 보았다”며 “5G 시대가 열리면서 반도체와 ICT 부품에서 강점을 지닌 대만 기업들의 성장이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한·일 갈등까지 더해지면서 대만이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실제로 한국인과 일본인이 상대방 국가에 여행을 가려고 하지 않으면서, 대만을 찾는 양국 관광객이 늘어났다. 게다가 두 나라의 일부 ICT 기업들이 상대국 제품 대신 대만산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그와 반대로 한궈위 후보는 자중지란에 빠져 있다. 지난해 7월 국민당 총통 후보 경선 때 당내 경쟁자였던 궈타이밍(郭台銘) 전 훙하이정밀공업그룹 회장이 쑹추위 친민당 후보를 지원하고 나섰다. 궈 전 회장은 경선 직후 국민당을 탈당하고 직접 대선에 나설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출마를 포기한 뒤 12월 초에 돌연 쑹 후보와 친민당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이런 궈 전 회장의 행보는 경선 상대자였던 한 후보의 지지율 제고에 재를 뿌린 것과 다름없다. 여기에 쑹 후보는 과거 국민당 내에서 유력 정치인이었다. 따라서 지지층이 여러모로 한 후보와 겹친다.

한 후보의 업적 부족도 치명적이다. 한 후보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진당 텃밭이었던 가오슝(高雄) 시장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당선됐다. 그 뒤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고 국민당 대선후보까지 꿰찼다. 문제는 지난 1년여 동안 한 후보가 중앙정치에 전력투구하면서 가오슝에서 거둔 성과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지난해 7월부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후보가 총통 선거에만 매달릴 뿐 시정에 무관심하고 시민을 배반했다”며 비판했다. 그들은 한 후보의 시장 파면 서명을 추진했고, 12월21일에는 대규모 시위까지 벌였다. 대만은 주민소환법이 제정되어 선출직 공직자의 파면이 가능하다.

익명을 요구한 국립정치대학의 한 교수는 “총통 선거에서는 차이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고 입법원 선거도 민진당이 과반수 이상 의원을 당선시킬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는 “전체적인 상황이 차이 후보에게 유리하게 조성된 데다 경기도 호전되고 있어 연임 이후 국정 운영이 한결 순조로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을 견제하려는 중국의 적대 행위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대만 경제와 무역의 대중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따라서 차이 후보의 집권 2기가 순탄할지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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