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예술인들이여! 제발 안녕들 하시라!
  • 김정헌(화가, 4.16재단 이사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08 18:00
  • 호수 1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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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기가 왔다며 떠들썩했던 2000년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한 해 한 해 지나 벌써 20년이나 지났다. 그때 태어난 밀레니엄 베이비는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었을 것이다.

그 당시 문화예술인들이 ‘떼’로 금강산에 가서 밀레니엄 해맞이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칠십 중반을 바라보니 같이 갔던 일행들도 대부분 노년기에 접어들었을 것이다. 그때 같이 갔던 일행 중에 배우 문성근이 있었는데 버스로 돌아오던 도중에 그가 주위에 있던 문화예술인 가운데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포섭(?)해 인제인가 어딘가에서 내려 하룻밤 놀다 가자는 제안을 했다. 한 열 명가량이 내렸나? 하여 거나하게 취한 채로 여관방에서 다들 2차 자리를 하게 되었다. 그러자 문 배우가 본색을 드러냈다. “우리가 노무현을 밀어 대통령을 만들자”는 이야기였다.

다들 취중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그중에 나는 비교적 선배 격이라 나중에 결론 비슷하게 한 말 보탰다.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 바람을 좀 집어넣자. 그 방법은 인터넷 등 PC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내년에 있을 월드컵에 젊은이들이 열광할 텐데 그 기운을 끌어당기자.’

정말 바라던 대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됐다. 기적 같았다. 그와 더불어 월드컵에서는 히딩크라는 명장이 한국팀을 이끌고 4강까지 가는 신화를 만들었다.

그 이후에는 알다시피 ‘이명박근혜’를 거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다시 노무현의 비서실장을 했던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 임기 중반을 넘기고 있다. 그러나 촛불 정부인 문재인 정부는 아직까지 문화예술 정책에서 뭔가 의미 있는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겨우 전 정권 때 만들어진 ‘블랙리스트’ 처리에 어정쩡하게 매달려 있을 뿐이다.

2004년 노무현 정부 시절 이창동 장관에 의해 만들어진 ‘창의한국-21세기 새로운 문화의 비전’ 이후로 문화예술 정책은 15년여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문화예술의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제도와 그를 운영하는 사람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현재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해야 한다. 2004년 이후 정권이 서너 번 바뀌고 16년 세월이 지나 문화예술계의 지형과 생태계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 바뀐 문화예술계의 생태적 지형도를 세밀하게 따져보고 진단해야 한다. 이 바뀐 지형도에 따라 필요하면 새로운 문화예술 정책을 다시 짤 필요가 있다.

또 한 가지는 대통령이나 문화예술계 수장인 문화부 장관 등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깊숙한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 남북 정상회담 때 그림이나 음악을 동원해 분위기를 띄우는 이벤트성 행사도 필요해서 했겠지만 진정으로 문화예술계에 대한 이해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다른 경제, 정치, 남북 문제를 포함한 외교 분야에 밀린 현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겠지만 한 번도 문재인 대통령이 문화예술계에 대해 언급하거나 문화예술계 사람들을 만나는 걸 보지 못했다. ‘경청’을 잘한다는 문 대통령이 지금까지 문화예술계의 목소리를 경청한 적이 없어 나로서는 서운하기 그지없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20년이 흘렀다. 아직 문화예술계의 음지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 음지 속에서 9년 전 작가 최고은처럼 아사하는 문화예술인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금년엔 예술의 꽃만 바라보지 말고 문화예술의 토양을 굳건히 다지는 해가 되길 기대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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