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업, 올해도 ‘훨훨’ 날기 힘들다
  • 최창원 시사저널e 기자 (chwonn@sisajournal-e.com)
  • 승인 2020.01.09 11:00
  • 호수 1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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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6개 항공사, 지난해 1조원대 적자…올해 하반기 돼야 반등 가능할 듯

국내 항공업계가 말 그대로 바닥을 찍었다. 각 사의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상장 6개 항공사는 지난해 3분기까지 별도 재무제표 기준 총 1조192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비상장사인 이스타항공과 에어서울은 분기 실적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수백억원대 손실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벌어들인 돈이 없어 모아둔 돈으로 각종 비용을 처리했고 재무 상태는 엉망이 됐다. 위기를 버티지 못한 아시아나항공과 이스타항공은 매각 절차를 밟았다. 살아남은 곳들은 앞다퉈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문제는 올해 전망도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화물 부문에선 미·중 무역 갈등이 완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점이 긍정적이지만 실적 반등까진 앞으로도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여객 부문은 암담하다. 주요 수익성 노선인 일본 여객 수요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일본정부관광국이 지난달 발표한 외국인 여행자 통계(추계치)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한 달간 방일 한국인 수는 작년 동월(58만8213명) 대비 65.1% 급감한 20만5000명을 기록했다.

올해도 극적 반등 가능성 낮아

항공업계가 지난해 부진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항공업이 대외 변수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작년엔 일본 불매운동과 홍콩 시위, 미·중 무역 갈등과 같은 국가적 이슈부터 항공기 제작사 보잉의 안전 이슈 등 다양한 악재가 항공사의 발목을 잡았다. 여기에 꾸준한 원-달러 환율 상승 흐름도 항공사를 괴롭혔다. 항공사는 달러를 통해 항공유 및 각종 리스 비용을 지불한다. 달러 가치 상승 시 실질적인 원화 지불 비용이 커진다.

미·중 무역 갈등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화물 부문 실적에 직격탄이 됐다. 두 회사의 화물 부문 노선별 매출에서 미국과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넘어선다. 미·중 무역 갈등은 해당 노선 물동량 감소로 이어졌고 지난해 3분기 대한항공의 화물 부문 매출액은 1조9147억원으로 전해보다 11.5% 감소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전년 대비 10.3% 하락한 9509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올해도 대외 상황을 낙관할 수 없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가 재선을 위한 ‘중국 때리기’에 나설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중국이 확전을 꺼리면서 완화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지지자 결집을 위해 중국 때리기 카드를 꺼내들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한·일 관계 개선이 여객 수요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작년 12월24일 한·일 정상은 중국 청두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2018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 이후 15개월 만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이 같은 긍정적 흐름이 여객 수요 및 실적에 반영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일 관계 개선과는 별개로 ‘일본에 대한 여론’이 여객 수요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라면서 “여객 수요를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예상했다.

금융권 관계자들도 업계 상황과 지난해 실적 구조를 감안하면 단기간에 실적 반등을 기대하긴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항공업계는 지난해 초까지 저비용항공사(LCC)를 중심으로 실적 상승세를 그렸다. 국내 LCC 업계 1위인 제주항공은 지난해 1분기 별도 재무제표 기준 전년 대비 18% 증가한 42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577억원에 달한다. 김영호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본 보이콧 영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2019년 1분기 기록한 호실적이 기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고, 2분기는 전통적인 비수기임을 감안하면 실적 개선 가능성은 하반기가 돼야 윤곽이 잡힐 것”이라면서 “바닥이 끝났다는 기대는 시기상조”라고 전망했다.

여객 수요가 줄고 수익성이 급감하면서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던 항공사들은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곳은 매출액 기준 중·하위권 항공사들이다. 이들은 지방공항에서 발을 빼고 있다. 티웨이항공은 무안에서 출발하는 오이타, 기타큐슈 등 일본 노선을 정리한 데 이어 무안~제주 노선도 동계 스케줄 동안 비운항 조치했다. 티웨이항공 측은 “영업적 판단에 따른 비운항 조치”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대구공항 내 인력 재배치를 실시하며 철수를 암시한 에어부산은 대구공항 완전 철수를 두고 막바지 검토 중이다. 한때 대구에서 10개 노선을 운항했던 에어부산은 여객 감소 등으로 인해 대구공항에서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에어부산의 대구공항 적자는 200억원을 넘어선다.

 

몸집 줄이고 수익성 개선에 사활

대형항공사(FSC) 2곳은 희망퇴직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비용 절감 절차를 밟을 전망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국내 일반, 영업, 공항서비스직 중 근속 만 1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두 차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으로 낙점된 HDC현대산업개발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할 가능성도 남아 있어 내부적으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작년 12월27일 금호산업과 HDC현대산업개발은 각자 이사회를 열어 아시아나항공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는 안을 처리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1월 임원 직급 체계를 기존 6단계(사장·부사장·전무A·전무B·상무·상무보)에서 4단계(사장·부사장·전무·상무)로 축소했다. 108명에 달하던 임원 숫자는 인사 후 79명으로 줄었다. 동시에 2013년 이후 6년 만에 운항승무원과 기술·연구직 및 국외근무 직원 등 일부 직종을 제외한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사업 부문 구조조정 가능성도 남아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해 11월 뉴욕 기자간담회에서 “(어떤 사업이든) 이익이 안 나면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실적 개선 시점에 대해선 “내후년(2021년) 초에 턴어라운드할 것이라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올해 국내 항공업계의 비상(飛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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