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우 “의원 총사퇴? 오히려 국민들은 박수친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0.01.03 10:00
  • 호수 157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김영우 한국당 의원의 돌직구 “비례정당이라니, 지역구 253석은 포기했나”

요란한 투쟁의 끝은 뼈아픈 패배였다. 예산안 처리부터 선거법·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통과까지, 지난해 12월 한 달간 자유한국당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내리 3연패를 당했다. 한국당은 강한 반발의 뜻으로 ‘의원직 총사퇴’ 카드를 야심 차게 꺼내 들었다. 그런데 여당은 물론 한국당 내에서조차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사실상 20대 국회가 영업을 종료한 마당에, 아무 효과도 의미도 없다는 평가다. 본회의 표결 또는 국회의장의 승인 절차가 필요한 탓에 자력으로 직을 내려놓을 수도 없는 상태다. 결국 빈손으로 새해를 맞은 황교안 대표 등 한국당 지도부는 다시 장외를 택했다. 정부·여당의 ‘폭주’에 대한 심판을 다시 한번 호소해 보겠다는 의지다.

이러한 당의 결정에 도무지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는 의원이 있다. “비호감도 1위 정당 의원들의 총사퇴는 국민이 환영할 일”이라는 돌직구도 서슴없이 날린다. 작년 12월4일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3선의 김영우 한국당 의원이다. 김 의원은 투쟁 일변도인 당의 노선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온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2019년 마지막 날 국회에서 만난 김 의원은 20대 국회를 ‘최악의 막장 국회’라고 칭하며, 이에 한몫한 한국당에 대해 작심한 듯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대로라면 나라가 망한다면서 개혁도 통합도 소홀히 한 채 국회 로텐더홀에서 애국가만 부르는데, 나부터 공감이 되지 않더라.” 김 의원은 한국당이 살아날 무기는 총사퇴도 장외집회도 아닌 오직 ‘통합’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 시사저널 박은숙

한국당의 패착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8개월간의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황교안 대표를 중심으로 투쟁은 엄청나게 했다. 역대 당 대표 중 이렇게 짧은 기간에 삭발, 단식, 노숙까지 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이런 행보가 국민에게 어떻게 비쳤는가 봤을 때, 오히려 자기 정치를 하는 동떨어진 시민운동가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우리 당이 투쟁 과정에서 공감 능력이 부족했다는 게 실패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으리으리하게 만든 영화도 감정이입이 안 되면 망하는 것과 같은 거지.”

 

“인재 영입, 이미 민주당에 주도권 놓쳐”

황교안 대표에게 이런 얘기를 직접 해 본 적 있나. 

“두어 달 전에 황 대표와 독대를 했다. 한두 페이지로 내용을 정리해 가서는, 우리 당이 이젠 통합에 집중해야 하고, 공감 가는 인재 영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영입 1호로 박찬주 전 육군대장 같은 사람을 고르더라. 이거야말로 정말 공감 능력 제로인 인사 아닌가. 그렇게 국민 속에서 영웅을 찾아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 민주당은 그렇게 하고 있잖나. 인재 영입 부문에서도 우리 당은 이미 주도권을 놓쳐버렸다.”

의원직 총사퇴 가능성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아무리 이번에 극단적인 행태를 보인 문희상 국회의장이라도 100명이 넘는 의원의 사직서를 수리한다는 건 엄청난 부담일 거다. 무엇보다 임기 초반도 아니고 임기가 다 끝나는 마당에 국민이 얼마나 공감해 줄까. 총사퇴의 결기를 제대로 보이려면 공수처법 통과 직후에 바로 다 의원실 방 빼고 직원들 전부 출근시키지 말았어야지. 그리고 천막 쳐서 바로 나갔어야 한다. 내가 최근에 의원총회에서 로텐더홀에서만 농성하지 말고 나가자고 얘기하기도 했다. 근데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당이 ‘친(親)황 체제’로 굳어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당직 인선이 그동안 몇 차례 있었는데 실망스러웠다. ‘도로친박당’이 되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이전 국회에선 항상 초·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을 개혁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그조차 전혀 보이지 않는다. 초·재선들 모인다 해서 기대를 하고 보면 결국 ‘당 지도부에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얘기뿐이다. 이렇게 큰 정당에서 한목소리만 나오고 있다는 건 대단히 비정상적이다. 좀 다른 얘길 하면 내부 총질이라고 하니, 북한의 노동당과 다름없다.”

2019년 12월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집회현장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연설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2019년 12월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집회현장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연설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이미 우리는 밥그릇만 챙기는 ‘국민 밉상’ 돼”

김영우 의원은 의원직 총사퇴 결정을 비롯해 최근 한국당이 추진 중인 비례정당 창당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지금 우리 국민 정서는 국회의원들이 꼭 필요하냐는 말까지 하는 상황이다. 사실 선거법도 공수처도 일반 국민에게 그리 와 닿는 이슈는 아니다. 그런데 국회는 1년 내내 선거법·공수처 얘기만 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숫자 싸움만 했다. 우리는 이미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국민 밉상’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의원직을 사퇴한다? 오히려 박수 칠 일이다. 비례정당을 만들어 의석수를 늘린다? 더 한심하게 볼 것이다.”

비례정당 창당 후, 불출마 선언한 의원이나 향후 공천에서 컷오프된 이들의 당적을 옮길 거란 얘기도 나오는데.

“패잔병들이 가서 뭘 하겠나. 나도 생각 없다. 지도부에서 나 같은 사람을 믿지도 않을 거다. 가서 우리가 별도의 세를 만들면 어쩌려고. 아마 당적 옮기고 하는 과정에서 당내 갈등이 생길 거다. 우스운 건, 지금 수도권을 비롯해 253석 지역구 전략에 대해선 전혀 고민하지 않으면서 30석의 연동형 비례대표 의석만 신경 쓰고 있다는 거다. 비례대표만 갖고 선거 치를 건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수도권 의원으로서 답답함이 느껴진다.

“이제 국민이 우리 당에 감동할 수 있는 건 ‘통합’밖에 없다. 또 거리로 나간다고 국민이 우리 당을 새롭게 보겠나. 그냥 ‘얼마나 선거에서 이기고 싶으면…’ 이런 생각밖에 안 들지 않을까. 그저 태극기 집회 아류로 보일 뿐이다. 지금 집회가 과연 일반 시민 한 명이라도 내용이 궁금해 참여하고 충분히 감정이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진작 ‘이상한 나라의 집회’ ‘그들만의 집회’가 돼 버렸다.”

한 시간에 걸친 인터뷰 동안 김 의원의 입에서 가장 반복돼 나온 단어는 단연 ‘통합’이었다. 2017년 탄핵 정국 때 바른정당을 창당해 활동하다 같은 해 말 한국당에 복당한 그는 줄곧 유승민계와의 통합을 주장하며 ‘통합이 가장 효과적인 투쟁’이라고 말해 왔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 달리 보수 통합 논의는 소강상태를 맞은 지 오래다.

김 의원은 황교안·유승민 두 보수진영 수장에 대해 좀 더 책임 있는 자세를 거듭 요구했다. “황교안·유승민 둘 모두 결국 자기 자리 내려놓지 못하고, ‘나를 중심으로 모입시다’만 외치니 진행이 안 된다. 무슨 대단한 정치를 한다고 각자의 복심을 보내 대화하고 직접 나서진 않고, 마음이 아직 절박하지 않은 듯하다. 사실 공수처법이 통과된 어젯밤(12월30일)에라도 만났어야 한다. 일제시대 때도 좌우 합작을 했잖나. 아무리 성향이 달라도 이럴 땐 만나 얘길 해야지. 의원직 사퇴하고 밖으로 나갈 때가 아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