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자유한국당’ 미풍 아닌 태풍 될 수도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06 16:00
  • 호수 1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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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찬의 민심풍향계] 보수층, ‘비례자유한국당 창당은 불가피한 결정’ 인식 더 우세

2020년은 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는 해다. 올해 총선이 중요한 이유는 투표 결과에 따라 의회 지형이 달라진다는 점도 있지만, 차기 대선에 대한 영향력 때문이다.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진다면 더불어민주당의 재집권에 경고등이 켜진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고 여당 지지율도 지속적으로 자유한국당보다 우위에 있다. 기본적인 선거 환경만 놓고 보면 언뜻 유리해 보인다. 게다가 지난 연말 여의도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었던 패스트트랙 정국은 진보진영의 우세로 막을 내렸다. 한국당은 결사 반대 구호를 외쳤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포함된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황교안 대표가 단식까지 감행하며 저지하려고 했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마저 큰 물리적 충돌 없이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이제는 본격적인 총선 국면이다. 두 개의 중요한 법안을 통과시킨 범진보진영은 개혁을 더 가속화시킬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철저한 수사를 다짐했지만 새해를 맞이하기 직전 조국 전 장관을 불구속 기소하는 수준에 그쳤다. 자신만만한 검찰 수사를 강조했지만 민심의 무게추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주도할 검찰 개혁 쪽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기울어지는 듯했던 올해 총선 판세는 한국당이 위성정당인 ‘비례자유한국당’(이하 비례한국당) 카드를 꺼내들며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국민 여론이 위성정당의 출현에 매우 부정적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발표되고 있지만, 정작 투표 민심은 알 수 없다. 과연 한국당이 빼든 위성정당 카드는 극적인 반전의 승부수가 될 수 있을까. 비례한국당은 태풍일까, 아니면 시끌벅적하기만 한 미풍에 그칠까.

한국당 지지층에선 비례정당 찬성 의견 많아

먼저 선거 환경부터 살펴보자.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표심이 변하겠지만 정당 지지율을 기준으로 하면 범진보진영이 한발짝 앞서 가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갤럽이 자체 조사로 지난해 12월3~5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내일이 투표일이라면 어느 정당에 투표할지’ 물어보았다. 민주당에 투표하겠다는 의견이 38%, 한국당 26%, 정의당 13%, 바른미래당 7%, 민주평화당과 우리공화당 각각 1%로 나타났다. 박빙의 선거구에서 결정적인 표심으로 작동하는 중도층의 투표 의향 또한 전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치 그대로 풀이하면 민주당과 정의당의 지지율을 합하면 절반이 넘는다. 나머지 보수 성향의 정당 지지율을 모두 합하더라도 그에 미치지 못한다(그림①).

기본적인 선거 구도가 보수야당보다는 범진보진영에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그림이다. 이 구도에 선거법 개정안이 정의당에 더 많은 의석수가 돌아갈 수 있다는 전망을 더하면 보수야당에 큰 희망이 없어 보인다. 사실상 현재의 선거법 개정안 내용을 기초로 할 때 한국당이 절대 불리한 상황으로 인식된다면 다른 승부수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좋아서 빼드는 카드가 아니라 불가피하게 꺼내드는 카드가 비례정당, 즉 위성정당이 되는 셈이다.

두 번째 살펴보게 되는 변수는 위성정당에 대한 일반적인 여론이다. 대체적인 여론은 좋지 않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이해조차 매우 낮은 국민들이 또다시 국회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움직임에 후한 점수를 줄 리는 없기 때문이다. 리얼미터가 CBS의 의뢰를 받아 지난해 12월27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비례정당 창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민주당 지지층에서 압도적으로 반대 의견이 높게 나타났다.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보수층에서도 찬성 의견보다 반대 응답이 더 높은 수준이다. 예상했던 결과다.

그런데 한국당 지지층 응답 결과를 보면 해석은 달라진다. 위성정당인 비례정당 창당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어본 결과 거의 팽팽하게 나타났다. 세간의 비판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비례정당 창당에 대해 찬성 의견이 45.4%였고, 반대 응답은 43.9%로 나타났다(그림②). 산술적으로 압도적인 찬성 여론은 아니지만 팽팽한 수준으로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최근 정치권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비례정당 창당에 찬성하는 지지층들만이라도 정당투표에 참여하는 경우 비례한국당은 15% 내외의 득표를 한다는 의미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최대 수혜자가 뜬금없이 한국당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비례정당으로 급변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비례정당은 이번 선거에 미풍이 아니라 태풍이 된다는 이야기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오른쪽)와 심재철 원내대표가 2019년 12월20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오른쪽)와 심재철 원내대표가 2019년 12월20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개정 선거법, 위성정당 출현 요인 제거 못 해

가칭 비례한국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현실적으로 위성정당인 가칭 비례한국당의 출현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왜냐하면 진영 간 대결 구도 속에서 다수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핵심 지지층의 투표에 더 많은 기대를 걸기 때문이다. 한국리서치가 한국일보의 의뢰를 받아 지난해 12월29~30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실제 거론되고 있는 당명인 비례한국당 창당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지역이나 연령별로 분석할 때 한국당 강세 지역인 대구·경북에서 비례한국당에 대한 지지 의향은 압도적이지 않았다. 보수 성향이 강한 투표 연령대인 60세 이상에서조차 비례한국당에 대한 여론은 일방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국당 지지층에선 ‘위성정당인 비례한국당’을 창당하는 것은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의견이 지지층 10명 중 7명 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보수층에서 ‘비례한국당 창당이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인식이 더 우세한 것으로 나왔다(그림③). 그렇다면 현실적 표 계산을 해야 하는 당 지도부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여건에서 비례한국당에 거는 보수층의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데는 국회 힘겨루기 상황에서 한국당이 처음부터 선거법과 공수처 법안에 반대했던 명분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거의 해가 밝았다. 개정 선거법이 어느 정당에 유리할지, 어떤 정치세력에 조금이라도 더 유리할지 각 정당들은 국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저울질하고 있다. 개정 선거법은 협의 과정에서 이미 누더기가 되어 버렸지만 통과 후에도 위성정당 출현에 대한 위협 요인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저런 민심을 모아 분석해 보면 정치적으로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정당의 속성을 고려할 때 위성정당 창당은 시간문제다. 하다 하다 이제는 국회의원 선거가 자릿수 계산을 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선거제를 통과시키기 이전에 먼저 유권자를 생각했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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