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원 기업은행장 ‘첫 출근’ 무산…막아선 노조에 “난 낙하산 아냐”
  • 김재태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0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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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식도 무기한 연기…노조 측 “자진사퇴 안 하면 계속 저지 투쟁”
윤종원 청와대 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이 IBK기업은행장으로 취임하는 3일 오전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노조원들이 출근을 저지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윤종원 청와대 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이 IBK기업은행장으로 취임하는 3일 오전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노조원들이 출근을 저지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윤종원 신임 IBK기업은행장이 12월3일 노동조합 측의 반대에 부딪혀 첫 출근에 실패했다. 이날 오전에 열릴 예정이었던 '26대 기업은행장 취임식'은 무기한 연기됐다. 

윤 행장은 노조원들과 대치하던 중 '낙하산 인사'라는 규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노조 측은 자진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윤 행장은 이날 오전 8시28분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후문 쪽 주차장에 도착했다. 전국금융산업노조 기업은행지부는 이날 이른 아침부터 바리케이드로 정문을 봉쇄하고 후문에 노조원들을 배치해 출근 저지 투쟁을 준비했다. 

이들은 건물 안팎에서 '함량 미달 낙하산 행장을 반대한다' '공공기관이 청와대 수석 재취업 기관인가'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과 현수막을 펼치고 투쟁 구호를 외치며 윤 행장 출근 저지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윤 행장이 차에서 내려 후문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노조원들은 주차장에서 후문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모여 벽을 치고 윤 행장을 막아설 준비를 했다. 윤 행장이 차에서 내려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다가서자 노조원들은 투쟁가를 틀어놓고 "물러가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 등은 윤 행장과 마주선 채 "낙하산은 적폐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말했고 민주당은 낙하산을 독극물이라고 했다"면서 "(윤 행장을) 기업은행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 자진사퇴하고 물러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말했다. 

윤 행장이 "어떤 부분을 우려하시는 건지 제가 잘 듣고요" "노조 입장을 잘 알겠고요"라는 식으로 말을 이어가려 했으나 노조는 "얘기를 듣고 싶은 게 아니다. 자진사퇴하지 않으면 끝없는 투쟁을 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거듭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 

윤 행장은 이 과정에서 "(제게) 함량 미달, 낙하산이라고 말씀하셨잖느냐"고 되묻고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조 측이 "수석님(윤 행장)은 (기업은행장으로서) 열심히 한다는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하자 윤 행장은 "그 부분에 대한 평가는 다른 것 같다"고 반박했다. 

윤 행장은 노조 측이 "(윤 행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재차 강조하자 "또다시 오겠다. 추운데 고생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서 대기 중이던 차에 올라타고 자리를 떠났다. 윤 행장은 차로 돌아가는 길에 취재진으로부터 '노조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제가 계속 말씀을 잘 듣고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윤 행장의 향후 일정과 관련해 "아직 공식적으로는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윤 행장과 기업은행 임원들은 이르면 이날 중 기업은행 본점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비공개로 만나 현안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윤 행장은 지난 1월2일에 임명됐다.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인 윤 행장은 서울대 경제학 학사 및 서울대 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UCLA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해 재무부, 기획재정부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특명전권대사도 역임했다. 

기업은행의 행장 인선을 둘러싼 낙하산 논란은 지난 12월27일 전임 김도진 행장이 임기만료로 물러나기 전부터 불거졌다. 반장식 전 청와대 일자리수석 내정설이 일찌감치 나돌면서다. 조준희-권선주-김도진 행장 등 3연속 내부 출신 행장을 배출한 관례를 현 정권이 깬다는 비판과 맞물리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윤 행장이 임명됨으로써 갈등이 크게 폭발한 양상이다. 기업은행 노조는 윤 행장이 물러나지 않으면 4월 총선 때까지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고 동시에 한국노총 및 금융노조와 연대해 현 정부와의 정책연대 파기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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