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한‧미‧이스라엘 ‘일타삼피’ 전략, 이번에도 성공?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1.05 10: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태영호 전 북한공사 블로글 글에서 주장..."전파 방지는 유대계 노린 전략"
1월1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북한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주재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시사저널
1월1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북한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주재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시사저널

지난해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한노동당 제7기 5차 전원회의에 참석해 “대방(상대방)도 없는 공약에 우리가 더 이상 일방적으로 얽매여있을 근거가 없어졌으며 이것은 세계적인 핵군축과 전파방지를 위한 우리의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이 발언이 북한의 새로운 협상술이 될 거라는 전망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1월4일 자신의 SNS에 “김정은이 ‘핵 전파 방지’라고 하지 않고 그저 ‘전파 방지’라고 애매한 표현을 쓴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전파 방지에 더는 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은 30년 전 아버지 김정일이 썼던 것으로 북한이 막다른 골목에 빠졌을 때 쓰는 카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과거 핵협상과정에서 겪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관련 내용은 태 전 공사가 쓴 자서전 《3층 서기실의 암호》 ‘이스라엘과 스웨덴서 미사일 극비협상’(131~136페이지)에 자세히 나와 있다.

 

북, 30년 전 미사일 기술로 이스라엘 협박

1998년 8월31일 북한은 서방 세계에서 ‘대포동 1호’라고 명명한 ‘광명성 1호’를 발사해 전 세계에 자신들이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확보했음을 알렸다. 이란, 이집트, 시리아, 파키스탄, 리비아 등 미사일 기술 확보에 목말라 있던 중동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주문이 들어온 것은 당연했다. 이들 국가에 미사일 기술을 넘겨줬다면 당장은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겠지만, 당시 북한은 그러지 않고 교묘한 방법을 사용했다. 1994년 체결된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은 매년 미국으로부터 50만 톤의 중유를 받고 있었다. 이밖에도 미국 주도의 세계식량계획(WFP)으로부터 식량도 제공받고 있었다. 만약 북한이 이들 이슬람 국가에 미사일 기술을 이전하면 중유와 식량지원은 당장 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태 전 공사는 대포동 1호가 발사된 지 몇 달 후인 1999년 1월 스웨덴에서 이스라엘과 극비리에 만나 미사일 협상을 벌였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북한은 이스라엘에 “현금으로 10억 달러를 달라. 그러지 않으면 그 만큼의 돈을 받고 다른 나라에 기술을 넘기겠다”고 엄포를 놨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다른 나라는 이슬람 중동국가를 의미했다. 당시 협상에서 이스라엘은 북한에 “현금 지원은 불가능하나 물자로는 가능하다”며 “대신 명세서를 달라”고 했다. 태 전 공사는 글에서 “나는 10억 달러에 해당하는 식량을 받아내면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넘길 수 있을 것이므로 속으로 매우 기뻐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30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있다. 북한은 최근 우리 정부를 비핵화 협상에서 완전히 배제시킨 모습이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30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있다. 북한은 최근 우리 정부를 비핵화 협상에서 완전히 배제시킨 모습이다. ⓒ청와대 제공

그러나 평양의 수뇌부는 현금을 고집했다. 이후 ‘현금이냐 물자냐’를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 끝에 협상은 결렬됐다.

태 전 공사는 “그 후 북한은 남한의 김대중 정부로부터 10억 달러의 절반에 해당하는 돈을 받았으며 미국으로부터 중유와 식량도 계속 받아내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김대중 정권이 북한에 5억 달러를 건넬 때 미국 클린턴 행정부와 사전협의를 안했을 리 없는데 왜 미국 정부가 이것을 승인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대신 태 전 공사는 “미국은 김대중 정부가 북한에 5억 달러를 건네는 대가로 남북정상회담도 개최하고, 이슬람권에는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전파되지 않겠다는 담보를 받아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미사일 기술로 한반도‧중동 양 지역에서 자국에게 유리한 협상결과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지금 김정은은 이란 등 잠재적 고객들에게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을 전파할 수 있다는 신호를 미국과 이스라엘, 유대인 공동체에 보내 그들로부터 새로운 타협안을 이끌어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북한은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재개 노릴 것"

그렇다면 지금 북한이 원하는 바는 뭘까. 태 전 공사는 “30년 전 북한은 5억 달러를 받는데 성공했으나 이번에는 미국에게 현금 대신 금강산과 개성을 열어주고 남북경협을 시작하라는 승인을 한국에 내리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전원회의 발언에서 ‘핵 군축’을 언급하는 것은 “애초부터 비핵화가 아니라 핵군축 협상에 나서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태 전 공사의 전망대로라면 북한은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기존 핵보유국과 마찬가지로 핵무기 보유는 유지하되, 핵 자산만 일부감축하는 전략을 펼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