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빌라 전성시대’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12 10:00
  • 호수 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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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주택난 해소에 결정적 역할 한 다세대주택 역할 주목

최고층 건물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면 의외로 아파트가 적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강북 지역은 물론 고층 아파트로 빼곡하게 뒤덮여 있을 것 같은 강남 지역마저도 많은 곳이 아파트는 일부 지역에 집중돼 있다. 통계로 살펴보면 광주광역시는 전체 주택의 79%가 아파트인 데 비해 서울의 경우 58% 수준으로 낮은 편이다. 그럼 나머지 42%의 주택은 어떤 유형일까?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빌라’로 대표되는 다세대·다가구주택이다. 벽돌 외장, 반지하와 옥탑방, 옥외계단으로 대표되는 빌라는 아파트 그늘에 밀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지만 서울을 상징하는 주거공간이다. 이런 빌라들은 어떻게 등장하게 됐을까.

1980년대 후반 서울을 중심으로 도심 주택난이 심각해지면서 단독주택의 지하실은 물론 창고 등을 주거공간으로 개조해 임대하는 일이 많아졌다. 화장실을 비롯한 주거환경은 당연히 최악이었다. 불법 건축물이지만 현실적으로 단속할 수 없었던 정부는 1984년 건축법을 개정해 ‘다세대주택’이라는 새로운 범주의 주택을 등장시켰다. 당시 주택법 개정안에 따라 등장한 다세대주택은 지하공간을 활용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원래 지하실은 3분의 2 이상이 땅에 묻혀야 지하실로 인정돼 용적률을 계산할 때 제외됐는데, 이에 따라 지하실에 들어서는 주거공간은 채광과 통풍이 제대로 될 수 없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분의 1만 묻히면 지하실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에는 그전까지 허용되지 않던 부엌과 화장실 등도 설치하게 했다. 지금도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반지하’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또 하나의 변화는 ‘옥외계단’의 허용이었다. 원래 건물 외부에 별도의 계단을 설치하면 건축물 면적에 포함돼 당시 주택들은 1층에 거주하는 다른 집을 거쳐 2층이나 옥상으로 올라가거나, 불법적으로 철제 계단을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각 세대의 통행로 확보를 위해 다세대주택에서는 옥외계단을 건축물 면적에서 제외하도록 해 옥외계단을 통해 각 가구들은 별도의 분리된 통행로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주인집 눈치를 보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편리함과 프라이버시가 보장되기 시작한 셈이다.

도입된 지 35년이 넘은 다세대주택들은 재개발의 대상이 됐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지역 ⓒ 시사저널  임준선
도입된 지 35년이 넘은 다세대주택들은 재개발의 대상이 됐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지역 ⓒ 시사저널 임준선

서울이라는 도시 모습을 바꾼 빌라

이런 다세대주택을 많이 지어 주택난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세대주택은 북쪽 경계선만 건축물 높이의 절반에 해당하는 만큼 거리를 두되 나머지는 50cm 이상만 거리를 두면 되도록 규정을 완화했다. 이렇게 등장한 ‘빌라’들은 도시의 모습을 바꿔놓았다.

단독주택을 허물고 이곳에 다세대주택을 지으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서울 곳곳에서 단독주택을 철거하고 다세대주택을 짓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땅만 있으면 늘어난 가구만큼 전세를 놓아 건축비를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다세대주택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다세대주택 증가는 더 나은 주거공간의 핵심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분당과 일산 같은 1기 신도시가 1980년대 주택난 해소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다세대주택들이 더 큰 역할을 했다.

다세대주택이 허용된 1984년부터 다세대주택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같은 면적에 세대만 늘어나기 때문에 도시 공간이 과밀해지고, 관리 주체의 모호함에 따른 슬럼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실제 다세대주택이 들어서면서 도시 골목들은 이전의 여유로움 대신 숨 막힐 것 같은 빼곡함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승용차의 급속한 보급으로 인해 아이들이 뛰어놀던 골목과 이면도로들은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노후화는 빠르게 진행됐다. 다세대주택들이 밀집한 곳일수록 일조권을 포함한 생활 여건은 악화됐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아파트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과거 다양한 계층이 섞여 살던 모습은 90년대를 거치면서 점차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지역 및 주거 형태에 따른 소득격차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지자체들은 다세대주택 증가에 따른 생활 여건 악화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주차의 경우 일부 지역에서 공영주차장을 설치했으나 비용 부담으로 인해 그 규모는 미미했다. 대부분 도로를 주차장으로 활용했다. 지자체들은 단속이나 차고지 증명 등 억제책 대신 거주자우선주차라는 제도를 만들어 오히려 공공 도로를 개인이 합법적으로 점유할 수 있도록 했다.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보도도,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원도 존재하지 않고 빽빽하게 주택과 차량만 들어선 공간들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그렇게 늙어갔다.

도입된 지 35년이 넘은 다세대주택들은 재개발의 대상이 됐다. 노후된 다세대주택들이 밀집한 지역들은 재개발을 통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로 바뀌어 갔다. 전면 철거 후 재개발은 그 과정에서의 폭력성으로 인해 비판을 받아왔지만 사실 이런 방식이 아니고는 다세대주택 밀집지역의 거주환경을 개선할 방법이 없었다.

개발 여건이 되는 곳만 묶어 재개발을 진행함에 따라 도로 등 기반시설은 계속 부족했고, 기대했던 주거환경 개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개발지역들을 대규모로 묶고, 지자체가 도로를 포함한 기반시설에 일정 부분 투자하는 ‘뉴타운’ 개념이 도입되면서 다세대주택들은 급속히 사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뉴타운은 지지부진하게 됐고, 재개발지역 해제가 이어졌다. 이런 곳에는 더 높은 용적률의 도시형 생활주택 등이 들어섰고, 재개발은 불가능하게 됐다.

 

빌라, 아파트 대체재 되면 주택시장 안정화

서울 주택의 40% 이상을 차지하지만 어떠한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는 다세대주택들은 여러 어려움에 놓여 있다. 주택관리비 징수 및 공동 수선 문제 등 갈등과 분쟁이 발생할 경우 제대로 처리할 수 없으며, 1층을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필로티 방식의 다세대주택이 늘어나면서 주거환경은 더욱 삭막해지고 위험해지고 있다.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은 어쩌면 다세대주택에 대한 기피심리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열악한 주거환경, 오르지 않는 가격 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아파트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지만 아파트 공급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수요자가 이끌고 있는 서울 주택 가격 상승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세대주택이 아파트의 대체재가 될 수 있도록 주거환경 여건을 개선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다세대주택을 통해 부엌과 화장실을 갖게 된 지 30년이 지났다. 이제 다시 한번 주거환경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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