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글로브에서 빛난 《기생충》, 이제 오스카로!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11 14:00
  • 호수 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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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역사에 큰 획…작품상과 감독상 수상한 《1917》도 주목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영화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지난해 5월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후에도 연일 최초의 기록을 경신 중이다. 지난 1월5일 미국 LA에서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외국어영화상 수상이라는 값진 기록이 추가됐다. 후보 지명도, 수상도 한국영화로서는 최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ollywood Foreign Press Association·HFPA)에서 주관한다. 보통 이 시상식의 후보작과 수상 결과로 이후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OSCAR, 오스카)의 양상을 예측하기에, 흔히 ‘아카데미 전초전’으로 불린다. 실제로 매년 후보와 수상 내역 등이 다수 겹치기도 한다. 《기생충》은 현지시간으로 오는 2월9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까.

“1인치 정도 되는 그 장벽(자막)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영화(cinema)라는 언어입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 트로피를 안은 봉준호 감독은 이런 수상 소감을 남겼다. 자막이 있는 외국어영화에 배타적인 미국 관객들을 향한 위트 어린 발언이다. 이는 앞서 화제가 됐던 감독의 인터뷰 발언을 떠올리게 하는 소감이기도 했다.

1월5일(현지시간)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대한민국 최초로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 CJ엔터테인먼트
1월5일(현지시간)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대한민국 최초로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 CJ엔터테인먼트

미국 사로잡은 ‘글로벌’ 《기생충》

봉 감독은 지난해 10월 북미 매체 ‘벌처’와 가진 인터뷰에서 “오스카는 국제영화제가 아니다. 매우 지역적이다(The Oscars are not 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hey’re very local)”라는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간 한국영화가 왜 한 번도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로 오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상하긴 하지만 별일도 아니다”는 감독의 이 같은 반응은 트위터 등 북미 SNS에서도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기생충》의 수상은 사전 예측 결과대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올해 외국어영화상 후보는 72회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인 앤 글로리》 등 총 다섯 편의 작품이 경합을 벌였다. 앞서 지난 1월5일 열린 전미비평가협회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작품상과 각본상을 받으며 수상에 청신호가 켜진 상황이었다. 이 영화가 전 세계 영화제와 시상식으로부터 받은 상은 50여 개에 달한다. 감독상과 각본상 후보까지 총 세 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기생충》은 당초 각본상 수상까지 유력하게 점쳐졌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감독상과 각본상은 각각 《1917》 샘 멘데스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가 차지했다.

평단의 호평만 이끌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북미 3개 스크린에서 첫 공개된 《기생충》은 점차 스크린을 확대해 6주 차에는 620여 개 스크린을 열었다. 1월8일까지 북미에서 벌어들인 극장 수입은 총 2380만 달러. 당초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인 Neon의 예상치를 웃도는 성적이다. 월드와이드 수입은 1억29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역대 북미 개봉 한국영화 중 최고 기록이며, 지난해 북미에서 개봉한 외국어영화 중 최고 기록이다.

Neon 측은 《기생충》의 북미 흥행 요인으로 “코미디, 비극, 액션 등 다양한 영역을 다룸으로써 모든 관객들이 즐길 수 있게 하는 영화”라는 분석을 내놨다. 자본주의를 꼬집는 영화 속 메시지도 관객들과 통했다. “국경을 넘어 보편적으로 소구되는 드문 경우”(가디언), “사회적 의식과 재미가 공존하는 작품”(뉴욕타임스) 등의 평이 이를 대변한다. 봉 감독은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 계급 문제를 담았고,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미국에서 (흥행 성공은)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밝혔다. 봉준호 감독의 팬덤 역시 인기의 큰 축이다. 북미 SNS를 중심으로 ‘Bonghive’라는 해시태그까지 만들어졌다. 벌집(hive)의 벌떼처럼 강렬한 지지를 뜻하는 말로, 초기 팬덤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북미 개봉 후 급부상한 《1917》 눈길

《기생충》의 질주는 이제 아카데미 시상식을 정조준하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발표한 9개 부문 예비 후보에 따르면 《기생충》은 최우수 국제영화상, 주제가상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최종 후보작 발표는 오는 2월13일이다. 이보다 앞서 2월2일 영국에서 열리는 영국영화TV예술아카데미(BAFTA), 일명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기생충》은 작품상과 감독상 등을 포함해 총 4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앞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가 이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국영화의 새 역사를 써내려가는 《기생충》이 과연 ‘로컬’ 오스카 트로피까지 거머쥘 수 있을까. 결과는 곧 공개된다.

골든글로브 시상식 이후 전 세계의 이목을 끈 작품은 샘 멘데스 감독의 신작 《1917》이다. 드라마 부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모든 통신망이 파괴된 상황에서 영국군 병사 스코필드(조지 맥케이)와 블레이크(딘-찰스 채프먼)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전장의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이야기다. 이들은 영국군 부대 수장 매켄지 중령(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장군의 공격 중지 명령을 전해야 한다.

《1917》은 북미에서 지난해 12월25일 개봉한 이후 전미비평가협회 선정 ‘올해의 영화 10’ 중 한 편으로 선정되는 등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각 매체는 앞다퉈 아카데미 시상식의 여러 주요 부문을 휩쓸 작품 0순위로 예측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오는 2월 개봉 예정이다.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가 예측대로 무난하게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가운데,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은 《주디》의 르네 젤위거에게 돌아가 눈길을 끌었다. 《오즈의 마법사》(1939) 도로시 역으로 유명한 스타 주디 갈랜드(1922~1969)의 삶을 다룬 영화다. 젤위거는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스타이자 할리우드 시스템의 희생양이었던 주디 갈랜드의 말년을 연기한다. 그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쥔 것은 제60회 시상식에서 《시카고》(2002)로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후 17년 만이다. 이 작품 역시 2월에 국내 개봉한다.

각본상과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스칼렛 요한슨)에서도 유력한 수상 후보로 꼽혔던 《결혼이야기》는 변호사를 연기했던 로라 던에게 돌아간 여우조연상 트로피 수상에 그쳤다. 《아이리시맨》의 알 파치노와 조 페시, 《두 교황》의 안소니 홉킨스 등 치열한 후보군으로 화제를 모았던 남우조연상은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의 브래드 피트가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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